갈길 먼 野통합, 정파등록제 러브콜에 의문표만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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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박한결 기자] 내년 총·대선을 앞두고 야권에선 통합과 연대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정당들은 통합진보정당 실현을 위한 논의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에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당내 야권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인영 최고위원이 ‘정파등록제’를 제시한 것이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제 정당은 통합의 대의와 원칙에 따라 하나의 정당으로 결집하되 당 내부에서는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 등을 보장받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당은 정파등록제, 정파명부식 투표제 등 당내 정파와 세력의 정체성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방안을 놓고 토론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만약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이를 받아들여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의 통합 정당이 탄생할 경우 당내에는 민주파, 민노파, 진보파, 참여파 등의 이름을 내건 정파간 합의체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게 된다.

기존의 정당개념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정파 활동은 당헌·당규에 의해 공식적으로 보장받으며 각종 선거 후보나 주요 당직 선출도 정파명부식 투표제에 따라 정파별 득표 비율로 정한다. 또 합의에 따라 국고보조금도 정파별로 나눠 가질 수 있고 한 정당 내에서 여러 교섭단체로도 등록할 수 있다.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노동자당(PT)’ 벤치마킹?

원래 ‘정파등록제‘는 진보정당에서 소수 정파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던 개념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선거를 앞두고 제안한 것처럼 지금은 전략의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정파등록제가 실현된 사례는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1979년 창당한 브라질 노동자당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2008년 지금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함께 하던 시절 현재의 진보신당을 이루고 있는 민중민주 계열 인사들이 도입을 요구한 사례가 있다.

민주, 왜 정파등록제 제안했을까

그렇다면 민주당이 왜 정파등록제를 제안하게 됐을까. 우선, 내년 4월 총선에서 야권 통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각 당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 정파 등록을 하게 되면 총선에서 지역구, 비례대표 등을 두고 교통정리가 더욱 쉬워지게 된다.

야권연대의 성공작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지난해 6.2 지방선거의 경우 연대에 참여한 정당들이 나눠먹을 자리가 그나마 많이 있었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권이 통합이 아닌 연대를 할 경우 공천 배분 등을 두고 조율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민주당의 위기감이 더욱 고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나라당이 지난 4일 전당대회를 통해 홍준표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민주당내에선 총선 위기감이 새롭게 고개를 들고 있다. 당초 내년 총선에선 정권 심판론이 작용, 야권에 유리한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흘렀지만 지금은 민주당내에서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위기감을 건드는 사례는 과거 15대 총선이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인물 교체라는 카드로 참패가 예상됐던 15대 총선에서 승리를 거뒀었다. 이는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는 민주당의 입장에선 두려움의 사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11월에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통합을 위해서는 10월까지 통합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민주당이 느끼는 시간의 촉박함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냉랭한 반응…“민주당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처럼 민주당이 정파등록제를 제안했지만 야3당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우선, 민노, 진보신당, 참여당내에선 민주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야3당이 한창 통합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민주당의 제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현재 민노, 진보신당 등의 통합에 국민참여당이 함께하는 문제를 두고 각 당 내부에선 찬반논의가 뜨겁다. 민주당의 ‘정파등록제’ 제안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각 당 홈페이지에선 당원들의 ‘정파등록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각 정당 지도부에선 민주당의 제안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상당했다. 민주당이 ‘통합’ 제스처만 취한 뒤 결국 발빼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 합의문까지 작성되었지만 민주당 최고위에서 폐기되어 전국적인 야권연대가 성사되지 못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며 “민주당은 야권연대 기초부터 착실히 쌓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민노당의 한 관계자 역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거 선거 때마다 나왔던 사례를 봐라. 재보선 때도 단일화 논의를 먼저 나서서 하더니 결국 파기한 경우도 있었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진보신당 역시 “노선이 근본적으로 다른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서는 도입하기 힘든 개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수개월전부터 (통합) 이야기를 해왔음에도 논의가 한걸음도 진전되지 않았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면서 “함께 힘을 모으고자하는 다른 주체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눈을 맞춰서 먼저 대화해야 할 것”이라며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또 “아직도 논의가 다 잘된 것은 아니지만 야3당 사이에 (통합) 논의가 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노력했는지 (민주당은) 헤아려 보기를 바란다”며 “아직 참여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대화를 나눈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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