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주년] ② 김상곤 한신대 교수 인터뷰

올해로 6회를 맞은 '2007 한국사회포럼'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금년이 87년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일까. 그 열기만큼 전환시대를 맞는 우리사회도 새로운 희망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 있다.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열린 '한국사회포럼'에서 김상곤 교수는 “'87년 체제'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07년 체제'를 대중적으로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는 지난 16일 서울 용산에 위치한 한국 사이버 노동대학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07년 체제'는 '87년 체제'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공공성'을 확보한 실질적 민주주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러한 변화를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끌어야 한다”며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의 세력화는 '진행중'이라고 했다.

최근 이랜드 노조 파업 사태에서 보듯,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사회의 주요 갈등구조로 자리 잡았다.

현재 비정규 노동센터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 교수는 “구조개혁을 가장 절실히 원하는 비정규 노동자가 바로 '07체제'의 주인공”이라며, 노동운동이 '생존권'을 넘어선 '자유권' 투쟁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2007 한국사회포럼'이 막을 내렸다. 우리사회에서 한국사회포럼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87항쟁 이후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분화 ․ 발전 됐다. 이제는 서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 당시 교수노조 중심으로 이런 필요성에 공감하고 2002년 3월 1차 한국사회포럼을 열게 됐다.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어떻게 자기 역할을 하면서 서로 연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장이 바로 한국사회포럼이다.

특히 전망과 비전을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2002년 대표적인 발전노조 파업이 있었다. 당시 전력산업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해 노조가 파업을 했다. 당시 시민운동진영과 노조 간에 첨예한 논쟁이 있었다. 환경단체 쪽은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이용하는 전력산업 자체가 반환경적이라며 오히려 경쟁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쪽이었고, 노조는 민영화를 하면 관련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파괴된다며 반대 입장을 폈다. 그 해 한국사회포럼에서 바로 이 문제를 다뤘다. 양측이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 결국 이해의 지점을 찾았다.

-오늘날 시민운동 진영과 민중운동 진영의 분화가 심화되면서 서로 연대가 더욱 어려워 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 시민운동 진영은 점차 민중적 문제를 배제하고, 노동민중운동은 시민운동이 너무 계량화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때때로 사회적 이슈를 중심으로 연대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우리사회가 점차 보수화 되면서 정부가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경향이 심해졌다. 이때 시민운동 진영은 노동운동 탄압이 '생존권' 뿐만 아니라 '자유권'까지 제한하려는 의도라고 판단하고 공동 대응에 나서게 된 것이다.

특히, 애초 시민운동 진영의 관심사항이 아니었던 '양극화' 문제도 주택, 부동산, 교육 분야에서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강화되고, 개혁적 시민단체와 노동민중 단체가 공동으로 이 문제를 연구하게 됐다.

-올해 87년 민주항쟁 2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20년간의 민주주의를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정치 ․ 사회 체제가 형성됐고, 이를 통상 '87체제'라고 부른다. 이는 절차적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절차적 민주주의는 발전했지만 후자는 그렇지 못했다. 구체적인 '구조적 권력'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당시 공동으로 지배 권력을 형성했던 군부, 관료, 언론, 사법 세력 중 '군부'만 제외됐을 뿐이다. 오히려 경제(재벌) 권력은 승승장구 해 왔다. 결국 실질적 민주주의는 확보하지 못했다. 덧붙이자면 절차적 민주주의도 그 자체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완성'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가보안법과 노동관계법에 여전히 독소조항이 남아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우리사회가 '87체제'를 넘어서 '07년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이미 '87체제'는 '절차적 민주주의'라고 규정됐다. 지난 20년이 '무익' 했다는 게 아니라 역사발전을 위해 87년 체제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새롭게 '07년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07년 체제'는 그에 걸맞은 '상(象)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또한 누가 중심이 되어 이러한 동력을 만들 것인지가 문제다. '07 체제'는 민주적 구조개혁과 '공공적 민생민주'를 두 개의 큰 기둥으로 삼아야 한다.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우리사회 전반적인 지배 권력의 틀걸이를 재편하는 작업이다. '공공적 민생민주'는 실제 삶 속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방법이다.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이룩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공성'을 기본 가치로 삼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07년 체제'의 주체는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돼야 한다. 이들은 삶 속에서 구조개혁을 가장 절실히 원하는 사람들이다. 최근 이랜드 사태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동안 비정규 노동자들이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이들이 서서히 조직화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대한민국은 800만 명의 비정규 노동자가 있는 나라다.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거다.

-얼마 전부터 진보 학계에서는 '진보의 위기'를 논하기 시작했다. 진보진영이 위기라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작년부터 '위기'라는 얘기가 나왔다. 실제 위기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그동안 우리사회의 진보에 대해 국민들이 가졌던 신뢰가 사라졌다. 정당선호도와 관련한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3분의 1은 여전히 진보적 성향을 가진 유권자다. 그러나 진보에 대한 신뢰도는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진보진영은 87년 체제를 계기로 진전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데 게을렀다. 둘째, 진보진영 내부에서 정파적 싸움에 몰두하면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셋째, 진보진여의 일부는 정치권력에 직접 개입하기도 하고, 그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이 바로 그러한 사례다.

-올해는 대선의 해다. 보수 진영은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민주주의' 보다 '경제'에 더 큰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잘먹고 잘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경제와 산업 정책 전반이 '신자유주의' 쪽으로 기울면서 모든 사람이 잘 먹고 잘 살 수 없게 됐다. 20대 80의 심각한 '격차사회'가 된 것이다. 국민들은 현재 개혁적 정치그룹과 보수의 대표인 한나라당 중에 '누가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느냐'를 두고 저울질을 하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민주주의가 퇴보한다고 보는가.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한나라당의 집권과 상관없이 지금의 정치 ․ 사회 정책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특히 한미 FTA를 계기로 'FTA 경제사회 체제'가 형성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회운동도 나름대로 주체적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미래연대 등 진보적 시민사회 세력이 정치권과 연대를 넘어 정치권으로 적극적으로 진입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난 전부터 시민운동 세력도 기존 보수 정당의 '수혈자'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정치세력화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다만 시민운동의 주장이 얼마나 정책화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자칫 기성정치 세력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정책과 아이디어를 '수혈' 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

-20년 후의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금년부터라도 '07년 체제'를 형성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그에 따라 20년 후의 민주주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 '신자유주의'와 'FTA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20년 후의 민주주의는 지금 수준에 머물 것이다. 긍정적으로 볼때, 전반적인 생산력은 발전하지만 그 혜택을 골고루 나누는 '진보적 민주주의' 사회가 될 것이다.

※ 김상곤 교수는?
한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전국 교수노동조합 위원장
(전태일을 따르는) 한국 사이버 노동대학 총장
한국 비정규 노동센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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