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시인 장진성의 통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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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한반도는 국토의 분단만이 아니라 빈부로 갈라진 분단이기도 하다. 남한은 세계12위 선진국인 반면 북한은 세계 최빈국으로 말이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한의 GDP수준이 남한보다 상당히 높았다. 그 이유는 8.15 해방 전 식민지 지배와 동북침략을 위해 일제의 산업시설이 대부분 북한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금, 석탄, 광물 등 지하자원이 매우 풍부했고, 가장 중요하게는 냉전시대 덕분이었다.

독점적인 미국 달러의 자본시장과 달리 소련을 종주국으로 하는 사회주의 동구권은 물물교환 형태의 무역이 자유로웠던 것이다, 그러나 남한은 대부분 벌방지대여서 낙후한 농업국이었고, 지하자원도 없었다. 더욱이 중국이나, 구소련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북한과 달리 남한은 동, 서, 남해로 둘러싸인 섬나라나 마찬가지였다. 하여 1970년대 초반까지는 북한이 고려연방제 전략으로 흡수통일을 꾀할 만큼 남한에 비해 경제가 앞서있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상황이 역전 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체제 장기집권으로 민족발전을 주도한 반면 김일성은 자기 개인을 위한 장기독재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일의 세습정치가 시작되면서 북한경제는 급속도로 추락하게 된다. 김정일은 이윤 추구를 위한 자본 유통이 아니라 자기의 세습권력을 굳히기 위해 소모성 동상이나 혁명 전적지, 사적지들을 만드는데 국고를 탕진한다.

무엇보다도 1970년대부터 1호 계획제도가 신설된 것이 국가계획경제 붕괴의 주요 발단이 되었다. 1호 계획이란 신격화 차원에서 수령이 임의로 갔다 쓸 수 있는 별도의 경제계획을 뜻한다. 예컨대 김일성이 어느 건설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자동차 몇 대를 주라고 말하면, 국가 유일 경제 계획에 의해 이루어지던 생산과 공급의 균형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전국의 공장마다 인민경제와 별도로 수령교시 집행을 위한 1호 계획을 추가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령 신격화의 나라인 탓에 그 소규모 1호 계획이 국가계획보다 더 위에 놓이게 됐다. 결국 한 나라 안에 두 개의 경제, 즉 수령경제와 인민경제가 따로따로 운영되게 되었고, 그 과정에 사회주의 계획경제 순환구조가 완전히 깨지게 된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이념국가인 북한은 당이 절대 권력이기 때문에 1970년대 말부터 인민경제를 초월한 당 경제가 머리를 쳐들게 된다. 인민 경제가 국내 경제라면 당 경제는 대외경제라고 볼 수 있다.

당 경제에는 39호실과 38호실이 있는데 39호실은 북한과 외교관계에 있는 나라들과의 무역을 담당하는 부서이고 38호실은 비외교 국가와의 무역거래를 통해 외화벌이를 하는 부서이다. 오늘날 남북경협을 당 38호실이 주도하는 이유도 남한이 북한과 비 외교관계에 있는 적대국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시장이 활성화 될 때에는 39호실은 김일성 비자금 금고였고, 38호실은 김정일의 것이었다.

이렇게 1호 경제에 이어 당 경제, 그리고 군수산업인 제2경제까지 우선되면서 국가내각경제는 자연히 최하위로 밀리게 됐다, 더욱이 사회주의 동구권 붕괴와 함께 계획경제의 목적과 명분마저 실종되면서 북한은 ‘자력갱생’이라는 최후를 맞게 된다. 북한 경제가 붕괴된 또 다른 원인은 경제의 구조문제를 넘어 김씨 부자의 무능력과 부패 때문이었다.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남한에 뒤지기 시작했던 북한 경제를 그나마 버티게 했던 기본 동력은 물물교환이 가능한 사회주의 시장이었다. 그러나 그 사회주의시장이 붕괴될 무렵인 1989년 북한은 서울의 88올림픽에 도전한다며 평양에서 세계13차 청년학생 축전을 벌이게 된다. 이렇게 중국 같은 큰 나라도 기피하는 이 세계축제를 신격화 선전을 위해 무리하게 추진함으로서 이미 사회주의 시장을 잃어버린 내각경제의 마지막 원천을 완전히 고갈시키게 된다.

그것을 더욱 가속화시킨 요인이 바로 외화 바꾼 돈표였다. 북한은 89평양축제를 위해 10억 달러 규모로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 경공업부장 산하에 통일발전은행을 신설하고, 북한 최초로 세계 신용 거래권도 획득하게 된다. 사실 그 10억 달러 중 6억달러는 일본 조총련 신용조합에서 '만경봉호'로 실어 나른 불법외화였다.

김정일은 그 돈으로 89평양축제용 외화바꾼돈표를 찍게 했는데 그 이유는 적국인 미국의 달러가 주체이념의 북한에서 함부로 유통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북한 주민들이 축제기간 비싼 외화로 수입한 외국 상품들을 국내 원화로 사지 못하도록 차단하기 위한 화폐 차별화였다. 그래서 달러도, 원화도 아닌 중간단계의 화폐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북한 원화에 외화 바꾼 돈표라는 글자만 추가된 허술한 도안이어서 가짜화폐가 발생하면서 새 화폐를 다시 만들어 발행하는 이중지출을 하게 된다. 이렇듯 초기에 벌써 많은 외화를 낭비하게 된 89평양축제는 빚진 잔치로, 88서울올림픽은 돈 버는 잔치로, 끝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축제 이후 남은 외화 바꾼 돈표마저 그동안 김정일의 선물정치로 간부들에게 마구 남발되어 심각한 인플레를 초래하게 된다.

하여 달러와 외화 바꾼 돈표 환율이 초기에는 1대 1이던 것이 1996년경엔 6,000대 1로 벌어지다 못해 나중엔 휴지조각이 된다. 결국 김정일을 믿고 6억달러를 북한으로 밀 반출시켰던 조총련 신용조합은 일본 경찰의 조사와 함께 재산차압에 들어가게 되고, '만경봉호'는 입항금지조치 된다. 한때 북한의 돈줄이라고까지 했던 조총련은 동경에 있는 주요 건물들까지 팔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된다. 김정일의 무능독재가 바다 건너 일본 교포들의 경제까지도 무너뜨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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