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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최근 치솟고 있는 기름값이 과도하게 높은 수준이라며 L당 1,883원이 적정한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국제 휘발유 가격과 환율, 적정마진을 모두 감안하여 전국 평균 가격을 계산한 것이라고 한다. 이 기준에 비교하면 적어도 L당 50원 가량은 더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인 것 같다.

정부의 고위관리가 공식 석상에서 발표한 자료이니 신뢰할 만한 분석일 것이다. 게다가 장관이 회계사라고 공언하며 적정가격을 산출한 것이니, 얼마나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끝에 발표한 자료이겠는가.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 이 기준에 따라 전국의 주유소가 기름값을 제발 내려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주유소도 적정마진을 벌게 될 것이고, 소비자도 바가지 쓸 일이 없으니 얼마나 사회적 후생이 높아지겠는가.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주유소의 기름값뿐만 아니라 다른 생필품의 가격도 차라리 정부가 적정가격을 계산해 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한다면 비싼 가격 여부에 대한 논쟁이 사라지지 않겠는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가 제시한 적정가격을 위반할 때 상당한 벌칙까지 부과한다면 물가가 안정되고, 나라경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정부가 적정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

최근 정부가 적정가격을 제시하며 직접적인 가격규제를 시도하는 배경에는 아마도 이런 환상이나 착각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일견 매우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정책처럼 보인다. 강력한 정부의 공권력이 뒷받침되어 쉽게 목표를 달성할 좋은 정책처럼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항상 적정가격을 제시하며 물가를 규제하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연 그 적정가격이 얼마나 적정하겠는가. 우선 L당 1,883원이 7월 둘째 주일에는 매우 정확한 적정가격이라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다음 주일의 적정가격은 어떻게 되겠는가? 국제유가는 수시로 변하고, 정유사의 도입조건도 각양각색이고, 환율 역시 지속적으로 변동한다. 설령 정부가 이런 자료를 파악한다 해도 각 주유소의 사정은 천차만별이다. 위치에 따라 임대료가 다르고, 유류의 공급가격도 기름의 운송비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다. 주유소와 정유사의 계약조건에 따라 공급가격도 동일하다는 보장이 없다.

하다못해 종업원의 급여조건에 따라서도 가격은 달라질 수 있다. 설립 당시의 자본조달 여건에 따라 적정한 마진도 주유소마다 (혹은 정유사마다)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런 모든 여건이 반영된 적정가격을 정부가 매주 계산해야만 하는데,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더 엄격히 말한다면 매일매일 고시가격처럼 정부가 적정가격을 발표해야 한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거의 타당성이 없는 얘기다.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수만 개의 주유소마다 다른 여러 조건들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이런 일이 지속된다면 정부는 당장 별도 기구를 만들자고 할 것이다. 모든 생필품 가격도 그런 방식으로 계산하려면 상당히 방대한 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관료조직은 비대화되고 그 조직에서조차 효율적인 가격 계산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로 가기 마련이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정부가 큰 조직을 만들어 물가를 관리하고, 더 크게는 나라경제의 모든 부문을 이런 방식으로 운용하면 되지 않겠는가. 역시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지상 목표로 삼고 용기를 내어 과감히 시도해 본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물가는 수많은 당사자들이 시장에서 거래하면서 형성되는 것

이것은 최근 휘발유의 적정가격을 발표한 정부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그 계산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정리해 본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가 바로 1930년대 경제학계를 휩쓸었던 계산논쟁(calculation debate)이다. 시장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경제학자들은 그러한 적정가격을 정부가 계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고 비용과 가격의 관계를 설정하여 정부의 고시가격으로 거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이론적으로 너무나 명확하고, 바람직한 제도처럼 보였다.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가장 근간이 되었던 논리의 하나였다.

계산논쟁의 승패는 당시로서는 겨루기 힘든 것처럼 보였다. 정부의 계산이 완벽하다면 시장에 의한 가격결정보다도 훨씬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당대의 최고 경제학자 하이에크의 계산논쟁에 대한 답변은 매우 단순했다. “만약 정부가 천재라면…” 모든 재화의 정보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감안할 수 있다면 시장보다 정부가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정부는 누구인가? 누가 움직이는가? 만약 천재들의 집단이라면 계산논쟁은 정부의 승리가 될 것이다. 그 해답은 역사에서 이미 증명되지 않았는가. 일시적인 가격규제는 항상 부작용을 불러오고, 장기적으로 계단식으로 물가를 상승시키거나 오히려 공급을 부족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스스로 천재집단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정부는 물가규제에서 지금 너무 멀리 가고 있다. 주유소의 기름값은 물론 대학의 등록금, 통신요금 등 수많은 품목에 깊게 개입하여 적정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 정부가 관리하는 공기업 부문은 오히려 원가 이하로 묶어 과소비를 부추기고, 민간부문의 물가는 전방위로 억누르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소수의 천재가 물가를 안정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가는 수없이 많은 당사자들이 시장에서 거래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 거래과정을 경쟁화하고, 수급이 원활하도록 유도하며, 적정한 금융 재정정책을 실시하는 게 최선의 대책일 따름이다.(www.keri.org)

정갑영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jeongk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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