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자유기업원장

장하준의 주장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민족성에 관한 논리다. 부지런함, 정직함 같은 민족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부지런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일본 국민도, 독일 국민도 한 때는 게으른 민족이었다. 그들이 부지런하고 규율 있는 민족으로 바뀐 것을 보면 민족성이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장하준 교수는 주장한다.

필자도 장하준 교수의 이 견해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만만디라고만 알려져 있던 중국인들이 이제 콰이콰이(快快)를 외친다. 느긋하기만한 인도 사람들이 미국에 가면 아주 부지런해진다.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그의 결론이다. 필자는 민족성이란 가변적이기 때문에 나라가 발전하려면 부지런함을 장려하고 보상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하준의 결론은 묘하다. 민족성이 바뀌는 것이긴 하지만 부지런해서 부자가 되기보다, 부자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부지런해진다는 것이 장하준의 결론이다.

“어떤 나라가 ´근면하고´ ´규율이 잘 선´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설명이다.”(주1)

“국민이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게으른 것이다.”(주2)

근면에 관한 기존의 상식은 부지런해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하준은 그 인과관계를 뒤집는다. 부지런해서 부자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자나라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부지런해진다는 것이다.

그의 글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이런 식의 가치 뒤집기가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사례들이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근면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일본도, 독일도 모두 부자 나라 아닌가. 그러니 부자나라가 되면 국민도 부지런해진다는 그의 주장이 현실적인 설명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주장에 대한 증명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더 찾아봐야 할 증거는 부지런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자가 된 나라의 국민들이 부지런해지는가이다.

만약 부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부지런해지지 않는 나라가 많다면 그의 주장은 틀렸다고 봐야 한다. 둘째는 가난한 나라라도 부지런해져서 부자가 될 수 있는가를 확인하면 된다. 그것이 맞다면 장하준의 견해보다는 전통적인 견해가 맞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 프로젝트에서 이와 관련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완전하게나마 살펴본 몇 나라들의 사례들은 장하준의 주장이 틀릴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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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우루의 대표 산물인 인산염 채광 현장. 나우루는 섬 전체에 풍부하게 산재한
인산염으로 한때 국민소득 세계 2위의 부자나라였다. 인터넷 화면 캡처.

지상낙원이었던 나우루 공화국, 부지런해졌나?

나우루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이다. 1960년대부터 거의 30여년간 나우루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하나였다. 1975년 당시 이 나라의 국민소득은 5만불 사우디 아라비아에 이허 세계 2위였다.

한국은 1977년이 되어서야 비로서 국민소득 1000불을 달성했으니 나우루가 얼마나 부자 나라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엄두를 내기 힘든 이탈리아제 페라리 스포츠카(요즈음의 시가 3억5천만원에서 4억원)가 그 당시에 이미 작은 섬 나우루에 여러 대 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 나라의 부유함은 인산염 때문이었다. 바다새의 똥이 굳어져 형성된 바위 덩어리는 그 자체로 훌륭한 비료의 원료였다. 섬 자체가 돈 덩어리였다. 민주주의 국가인 이 나라는 공기업이 벌어들인 인산염 판매 수입을 국민들에게 비교적 고르게 나눠줬고, 그것으로 국민들은 부유함을 누릴 수 있었다. 만약 부자 나라가 될수록 국민들이 부지런해진다면 이 나라는 그 몇 십 년 동안 엄청난 국민성의 변화를 겪었어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80년대 말부터 인산염이 고갈되기 시작하자 이 나라 사람들의 소득도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지금 나우루의 소득에 대한 공식통계도 변변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20여년간 고소득을 누렸지만 소득을 유지하거나 또는 늘릴 만한 생존능력을 배양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노력을 안했다고 볼 수는 없다. 아이들은 모두 호주의 기숙학교에 보내어 좋은 교육을 받게 했다. 또 인산염이 고갈될 것에 대비해서 따로 돈을 떼어 여러 가지의 투자를 해 두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국민들의 태도와 경쟁력을 배양해주지는 못했다.

부유해진다고 해서 국민성이 부지런해지는 것이 아님은 중동의 국가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중동에 흘러드는 오일달러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그러다 보니 이 동네의 나라들은 부자들이다. 1인당 국민소득을 따지면 UAE는 1위, 카타르는 2위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역시 부유한 국가다. 왕족들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도 복지혜택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게 부자가 된지 40년이 다 되어간다.

만약 부유하면 부지런해진다는 장하준 교수의 말이 맞다면 중동 사람들은 상당히 부지런해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도 '인샬라’ 한 마디로 묵인되는 관행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라고 한다. 그들의 태도와 사고방식이 변하지 않았음은 이 나라들이 제대로 된 기업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외국인들을 불러서 막대한 시설들을 짓기는 하지만 자체의 브랜드를 가진 회사를 만들어낼 정도로 창의력과 근면함과 인내심을 갖추지는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주장과는 반대로 부지런해져야 부자가 되는 사례는 우리 자신의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기타부기>에서 <잘 살아보세>로…한국, 부지런해져서 부자 됐다

한국 사람은 정말 부지런하다. 다른 어느 나라에 갖다 놓아도 한국인은 부지런함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최소한 한국 안에서는 그것이 1960년대 이후의 현상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분은 드물다. 사실 1960년대 이전의 한국인은 그리 부지런하지 않았다. 노래 한 곡이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대변해준다. 1956년생인 필자의 또래이거나 그보다 위인 분들은 <기타부기>라는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기타부기
(1957년, 노래 윤일로, 작사 작곡: 이재현)

1.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
피었다가 시들으면 다시 못 필 내 청춘
마시고 또 마시어 취하고 또 취해서
이 밤이 새기 전에 춤을 춥시다
부기부기 부기우기 부기부기 부기우기
기타부기~

2.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
한번 가면 다시 못 올 허무한 내 청춘
마시고 또 마시어 취하고 또 취해서
이 밤이 새기 전에 춤을 춥시다
부기부기 부기우기 부기부기 부기우기
기타부기~

흥겹게 들리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매우 퇴폐적이다. 젊을 때 일을 해도 모자랄 판에 밤새 마시고 놀자고 권하고 있으니 말이다. 팔자타령과 세상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을 늘 입에 달고 살던 한국인들의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 노래 뿐이 아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노나니, 화무 십일홍이요 달도 차며는 기우나니 인생은 일장춘몽이요 아니 놀지는 못 하리라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라는 노래 가락 역시 염세적인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

사실 게으름은 훨씬 이전부터 한국인의 특성이었다. 지금부터 120년 전,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스 비숍 여사는 1894년부터 3년간 구한말의 한반도를 샅샅이 훑은 후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그는 부산으로 들어와서 한반도 전역을 돌아 시베리아까지를 훑고 다녔다. 한강변의 어느 마을을 돌아본 후 남긴 기록이다.

“그들은 게을러 보인다.”(주3)

그러다가 한반도를 벗어나 시베리아 프리모르스크의 조선인 정착촌을 방문한 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은 남긴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한국인들을 세계에서 제일 열등한 민족이 아닌가 의심한 적이 있고, 그들의 상황을 가망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곳 프리모르스크에서 (중략) 한국인들은 번창하는 부농이 되었고 근면하고 훌륭한 행실을 하고 우수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로 변해갔다.”(주4)

같은 사람들이라도 어떤 제도적 상황에 놓이는가에 따라 성품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관찰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한반도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무척 게을렀던 것 같다.

그런 사회 분위기는 1960년대에 들어와서 확연히 바뀐다. 노래로 따지자면 “이 밤이 새기전에 춤을 춥시다”가 아니라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로 바뀌는 것이다.

잘 살아보세
(1962년, 한운사 작사 / 김희조 작곡)

1.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금수나강산 어여쁜 나라 한마음으로 가꿔가며
알뜰한 살림 재미도 절로 부귀영화 우리 것이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잘살아보세

2. 일을 해 보세 일을 해 보세 우리도 한번 일을 해 보세
태양너머에 잘 사는 나라 하루아침에 이루어졌나
티끌도 모아 태산이라면 우리의 피땀 아낄까보냐
일을 해 보세 일을 해 보세 우리도 한번 일을 해 보세
일을 해 보세

3. 뛰어가 보세 뛰어가 보세 우리도 한번 뛰어가 보세
굳게 닫혔던 나라의 창문 세계를 향해 활짝 열어
좋은 일일랑 모조리 배워 뒤질까보냐 뛰어가 보세
뛰어가 보세 뛰어가 보세 우리도 한번 뛰어가 보세
뛰어가 보세

이 노래의 가사는 1962년 한운사 선생이 박정희 혁명정부의 요청을 받고 썼다고 한다. 이 노래는 관의 통제를 받던 방송들을 통해서 '보급되었고’ 당시를 살던 사람들은 누구나 이 노래가 풍기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근면, 절약, 저축, 개방, 긍정적인 태도 등이 강요되었던 것이다.

장하준 교수가 '문화혁명’이라고 부르는 일이 한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수출주도형 개방경제로의 전환과 더불어 (강요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근면성이 경제성장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잘살았기 때문에 근면해진 것이 아니라 근면해졌기 때문에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것이 우리 자신의 경험을 더 잘 설명한다.

이데올로기적 설득과 제도적 장치

이데올로기적 설득이나 강제적인 동원체제가 지속력을 가지려면 자발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제도와 결합되어야 한다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에 동의한다. 남북한 사이의 차이가 그것을 알려준다.

'문화혁명’만으로 따지자면 북한이 우리보다 한 수 위였다. 우리의 새마을운동이 1974년부터인데 비해 북한은 이미 1956년에 천리마운동에 착수한다. <잘살아보세>라는 노래와 새마을운동과 마찬가지로 천리마운동도 '하늘에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한국인들을 일으켜 세워 일터로 나가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천리마운동도 처음에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북한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황금시대는 천리마운동의 열기로 만들어졌다.

사상무장으로만 일관했던 북한의 천리마운동의 효과는 10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반면 박정희가 주도한 남한에서의 '문화혁명’의 효과는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고 이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마저 칭찬할 정도로 근면해졌다. 그렇게 된 데에는 근면함에 대한 보상이 상당한 작용을 했다. 민간에서는 회사에 기여한 만큼 받아간다는 원칙이 분명히 작동을 했다. 수출에 대한 지원금은 수출실적이 많은 기업들에게 더 많은 것이 돌아가는 구조였다.

새마을 운동에 대한 지원 역시 근면함을 보상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실적이 좋은 마을에 더 많은 시멘트와 자재가 지원되었으니 말이다. 김일성의 천리마운동은 사상무장만으로 근면을 장려했던 반면 박정희는 사상무장과 더불어 근면함에 대한 물질적 보상체계가 작동하게 함으로써 한국인의 근면성을 길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사람들이 근면해지기 시작하면 소득도 늘기 시작한다. 게으르던 국민이 근면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부지런함에 대한 보상이 생겨나면서부터다. 대부분의 전통사회 또는 원시사회에서는 개인이 부지런하게 돈을 벌어도 자기 것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권력자들의 착취가 가장 큰 이유지만, 혈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강한 재분배의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 압력들이 약해지고, 노력의 결과를 온전히 자기가 취할 수 있다는 것이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보장되면서부터 사람들은 물질적 성취를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근면해지는 과정이다. 근면해지기의 시작은 사상적인 설득이 맡을 수 있지만, 물질적인 보상체계와 결합할 때에만 근면함이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처럼 이데올로기적 설득과 더불어 제도적 장치가 결합될 때 근면성 같은 덕목이 형성될 수 있다는 장하준 교수의 논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제도적 장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한다. 장하준 교수는 일본을 예로 들면서, 일본 사람들의 여러 가지 장점들이 1960년대 종신고용제가 정착된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나는 이것이 잘못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덕목이든 그것을 장려하는 제도적 장치 하에서 강화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개인이 어떤 노력을 하든 평생 보장해주겠다는 종신고용제는 근면성을 장려하는 장치가 될 수 없다.

1920년대 생인 나의 부친은 돈을 벌기 위해 10대를 일본에서 생활하셨다. 그 때 느끼셨던 일본인들의 사고방식 생활 태도 등에 대해서 내게 말씀해주신 적이 여러 번 있다. 그것이 바로 부지런함, 정직함, 협동심, 전체를 위한 희생... 그런 것들이었다. 한 개인의 소감이니 만큼 체계적인 증거로 내세울 수는 없지만 최소한 1960년대 이후의 종신고용제 때문에 일본인들의 그런 특성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근면할수록 더 돈을 벌게 되는 제도적 장치가 작동할 때 사람들은 더욱 근면해지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로 인해 경제성장은 촉진된다. 반면 근면해봤자 그 결실이 자기에게 오지 않거나 또는 오히려 손해로 돌아온다면 사람들은 근면을 버리고 나태함을 택한다.

스웨덴 복지제체의 아버지격인 군나르 미르달은 스웨덴 사람들의 청교도적 근로윤리가 굳건하다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막상 1970년대 이후 20년간 철저한 복지정책이 시행되자 많은 스웨덴의 근로자들이 출근하기 싫어 병가를 낼 정도로 근면성을 상실했다. 국민성이 가변적이라는 장하준 교수의 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근면한 국민성을 원한다면 복지체제가 아니라 자유시장경제가 정답이다.(www.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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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쁜 사마리아인 p. 300.
2. 나쁜 사마리아인, p. 3
3.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인화 역),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도서출판 살림, 1994, p. 101.
4.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인화 역),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도서출판 살림, 1994,p.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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