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前 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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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지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배수진을 친 장수의 비장함 같은 것이 배어난다. 한나라당 작자들이 “그러다가 보선(補選)에서 시장직을 민주당에 빼앗길라” 어쩌고 하며 만류했다지만, 그 따위 졸장부적인 언설에 휘둘려선 안 되었을 것이다.

그 동안 좌파는 투표 불참을 선동했고, 한나라당 유승민 같은 친구는 공공연하게 오 시장의 주민투표 결단을 배척했다. 이런 안팎의 포위망 속에서 오 시장은 대선 출마도 내전지고 시장직도 내놓겠다고 했다. 그 만큼 그는 좌파와 한나라당 포퓰리즘에 맞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몸을 던지는 처신으로 일관했다.

이런 처신은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에게서는 한 번 찾아보고 죽으려 해도 없는 자질이다. 현(現) 집권 세력은 정당한 싸움조차 회피하는 겁쟁이, 연명을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까지도 헌 신짝처럼 내팽개치는 기회주의자들, 센(좌파) 놈에게는 깨갱깽이요 약한(우파) 놈에게는 무시 일변도, 매사 요리 조리 눈치나 보는 얌체들이다. 오세훈 시장은 이런 한나라당에게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오 시장은 “인생은 길고 정권은 짧다”는 철칙에 비추어, 눈앞의 시장직이나 당장의 대권도전을 내던진 오늘의 결단이 긴 눈으로 본 승부에서는 결코 손(損)이 아님을 확신해도 좋을 것이다. 참다운 정치인이란 어떤 사람인인가? 그는 정치업자 아닌 장수(將帥)여야 한다. 장수란 어떤 사람인가? 죽음을 끼고 살아야 할 사람이다. 매순간 죽음을 각오하고 싸움에 임해야 할 사람이다.

사화(士禍)를 당하고 사약(賜藥)을 받으면서도 고고하게 원칙을 지킨 옛 선비들, 그리고 백의종군의 수모를 당하면서도 충절을 지킨 충무공의 모습이 참 정치 리더의 모델이어야 한다. 그대로는 못하더라도 그 모델을 먼발치로나마 끊임없이 따라가고 싶어 하는 마음의 지향만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은 그 정반대편에 있다.

오세훈 시장은 투표결과에 따라서는 시장직을 떠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그는 오늘의 한나라당적인 비굴의 정치인상(像)을 묵사발 낸 통쾌한 거역자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그 거역은 그를 보수정계의 한 촉망받는 기수(旗手)로 떠올릴 것이다. 아니, 이미 떠올렸다. 그는 죽음으로써 살았다. 오세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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