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팽창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1929년 대공황을 거치면서 제시된 처방이었다. 당시 다우존스 지수가 90% 정도 하락하여 주가는 10분의 1 수준이 되고 실업률이 25%까지 치솟는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경제에 개입하는 새로운 처방전이 제시된 것이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합세하면서 제시된 이 처방전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수정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움직임으로 정리가 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이 경제의 총수요항목을 구성하는 주요한 구성요소라고 할 때 극심한 불황이 오면 소비 투자 순수출이 모두 하락하면서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물론 이 때 총수요가 급격히 하락하면 가격변수가 조정되면서 물가가 하락하고 하락한 물가로 인해 수요가 창출되는 수도 있지만 이러한 가격조정메커니즘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케인즈에 의해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격변수는 올라갈 때는 잘 올라가지만 떨어질 때는 잘 안떨어지는 하방경직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돈을 찍어내고 재정적자를 내면서 정부지출을 늘이는 수량조정으로 가야만 위기가 극복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고 결국 이러한 적극적 정부개입정책이 일반화 되면서 경제는 다시 회복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회복이 진행되다가 곧 이어 터진 2차대전이 엄청난 전쟁특수를 야기하면서 미국경제의 회복은 가속화 되었고, 미국은 전시 하에서 연간 재정적자규모가 GDP의 30%에 달할 정도로 지출을 늘렸고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경제를 회복시키는 상황이 도래되었다.

재정적자를 수반하는 케인즈적 처방은 결국 부작용을 몰고 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세계 각국은 즉시 케인즈적 처방전을 도입하였고 재정적자를 기록하면서 지출을 늘리고 양적 완화를 통해 돈을 찍어내는 식의 팽창적 정책으로 전환하였고 위기는 조기에 극복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처방전이 초기에 효과가 있는 듯 보이더니 곧이어 엄청난 부작용을 몰고 왔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 세계 경제의 체질이 바뀌어 버린 것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대공황 이후 현재까지 선진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들이 재정적자를 무서워하지 않고 남발하면서 국가부채규모를 엄청나게 늘였다는 점이다. 불황 때 재정적자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나면 빚이 늘어나는데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호황 때 세금을 더 걷어서 빚을 갚지 않고 복지 재정 등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충당하느라 돈을 쓰면서 빚을 줄이지를 못하니 한번 쌓인 빚은 계속 유지가 되다가 불황이 오면 재정적자를 기록하면서 빚이 더 증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금융시장의 발달도 일부 요인을 제공하였다. 시장중심 금융 하에서 펀드투자 등이 활성화되면서 정부발행 국채는 초우량상품으로 취급되었고 국채가 금융시장에서 너무도 쉽게 소화되다보니 정부는 빚이 늘어나는 부분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 버렸다. 그러나 빚이 늘어나다보면 결국 문제가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글로벌 금융위기 하에서 정부가 빚을 늘이면서 경기부양을 하다가 남유럽 국가들에 있어서 국가부채에 대한 경고와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국채가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러한 인식이 세계 경제로 확산되면서 이제 글로벌 금융위기는 글로벌 국가채무 위기라는 초유의 국면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빚 무서운 줄 모르고 써대다가 결국 한순간에 폭삭하는 소리가 나는 모습을 보며 가계와 기업만이 아니라 정부도 이제는 빚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돈이 풀리면서 물가까지 폭등하고 있고 시위와 폭동이 선진국에서 나타날 정도가 되어버린 것을 보며 이제 케인즈적 처방이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균형재정의 원칙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정책이 수행되어야

이제 경제정책을 실행함에 있어서 재정정책의 역할은 상당 부분 제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위기가 와도 함부로 적자를 내서는 안되며 정부가 100을 걷으면 100만큼만 지출해야한다는 평범한 균형재정의 원칙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정책이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무분별한 적자가 나타난다면 이는 금융시장에서 즉시 응징을 당할 것이며 적자가 일정 범위를 벗어나거나 하는 경우 지체 없이 문제제기와 시정조치가 가해질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제 정부정책은 금융통화정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면에서 상당한 제약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의 두 팔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한쪽 팔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사용해야한다고 할 때 정부정책 자체의 한계성이 상당 부분 가시화 되는 것이며 이러다보면 금융통화정책 자체도 그만큼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정부정책의 역할과 범위에 제한이 오고 있는 만큼 민간 경제의 역할 증대가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도래하고 있다. 케인즈적 처방전이 극심한 부작용을 초래하면서 폐기수순을 밟고 있다고 할 때 그 대안은 무엇인지, 나아가 민간부문의 역할이 어떤 식으로 증대되고 제고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문제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짚어보아야 할 필요가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www.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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