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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임요산 칼럼] 태산이 흔들렸는데 쥐 한 마리만 지나갔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일으킨 소동을 보니 떠오르는 옛말이다.

‘골수 좌파’ 박원순 정체 간파 못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누가 적합한지를 묻는 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서 36.7%를 얻은 안철수는 사라지고 5%짜리 박원순이 남았다. 서울시장 출마를 두고 둘은 우정 어린(?) 만남 끝에 안철수가 양보하기로 했다. 좌파 진영이 환호했다.

원래 안철수 출마설이 나오자 가장 크게 놀란 것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개표를 무산시켜 오세훈 서울시장을 사퇴시킨 여세를 몰아 서울시장 자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

서울시장을 떼어 놓은 당상으로 보고 천정배 김한길 추미애 한명숙 등이 자천타천 거론됐다. 그러나 안철수의 등장으로 이들은 단번에 ‘올 킬’(All Kill)됐고, 서울시장 자리는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이때 나타난 게 박원순이다. 박원순은 ‘우정과 의리라는 끈’으로 안철수를 눌러 앉혔고 민주당은 기사회생했다.

안철수와의 담판이 끝나자마자 박원순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에 야권 통합후보가 되기 위해 타진했다. 박원순에게 안철수는 서울시장을 향한 도정에서 첫번째 장애물에 불과했다.

야권통합후보 불쏘시개 역할만

정치란 이런 것이다. 안철수만 피에로가 됐다. 박원순은 안철수를 불쏘시개로 삼아 지지율을 가파르게 끌어올렸다. 이제 민주당의 양보를 받든지, 아니면 민주당에 영입되든지 해서 야권통합후보로서 서울시장을 노릴 수 있는 결정적인 고지에 서게 됐다.

안철수는 자신의 양보를 우정을 위해 희생했다고 말했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어정쩡한 이념을 가진 그가 골수 좌파 박원순에 당한 것이다.

박원순은 인권변호사 활동으로 이름을 쌓았고 2000년 총선 때 낙선운동을 주도해 정치적 관심을 드러냈다. 그후 아름다운 가게와 희망제작소를 운영해 좌파 시민운동권의 스타가 된 인물이다. 특히 언론계 젊은 기자들의 지지를 든든한 자산으로 삼고 있다. 한마디로 쓰고 있는 ‘탈(마스크)’이 좋다.

그러나 아름다운가게를 운영하면서 인턴사원을 무임금 착취하고, 가게 인테리어를 부인에게 맡겨 사적 이익을 취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노조가 생기면 아름다운 가게는 끝”이라고 협박하는 반노조, 반민주적 행태를 보였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면 이같은 의혹 등 그의 어두운 부분도 틀림없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안철수는 박원순을 “한국 사회의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며 “이번이 한국 사회가 하늘로부터 받은 그 분의 재능을 활용할 유일한 시기”라고 말했다. 참으로 순진하다. 사람 보는 눈이 없다.

‘멘토 윤여준’ 부정은 인간적 미숙

안철수는 박원순과의 관계뿐 아니라 가족의 반대도 마음을 돌린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는 나이 오십 다 된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안철수란 사람의 인간적 미숙을 드러낸다. 그런 문제는 출마설을 흘리기 전에 정리했어야 한다.

언론에는 크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안철수는 좌파로부터 맹공격을 매우 괴로워했다. 한나라당 출신 윤여준이 그의 멘토라는 보도가 나가자 인터넷과 트위터에 안철수를 비난하는 글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윤여준이 전두환 정권에서도 일했다는 지적은 특히나 뼈아팠을 것이다.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찬사만 들었지 이런 매는 처음 맞아보는 안철수는 급기야 윤여준이 자신의 멘토가 아니라고 부정했다.

“윤여준이 내 멘토라면 김제동, 김여진도 멘토이고, 그런 멘토는 한 300명쯤 있다”고 말했다. 몇 달 동안이라도 자신을 후원해 준 사람을 이런 식으로 부정한 것은 그가 인간적으로나, 인간관계에서 성숙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맷집으로 어찌 정치를 하겠다는 건가.

대선 나오려면 제대로 준비해야

그는 또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한나라당을 “응징”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대중을 선동할 때나 쓰는 응징이란 말도 정치 신인으로서는 온당하지 않을 뿐더러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응징해야 할 일로 보는 그의 머릿속 또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안철수가 국민의 폭발적 기대를 모은 것은 세상을 이념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으로 나눈다는, 그의 건전한 ‘상식’ 때문이었다. 그가 한국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건드린 것은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준비가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허술함만 드러낸다면 우리 사회는 좋은 인물 하나를 잃는 게 된다. 서울시장 선거이건 대통령선거이건 제대로 준비하고 말을 꺼내야 한다. 지금 나라가 처한 상황은 또 다시 아마추어에게 정권을 맡길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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