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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2일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 열린 '2011 레전드 리매치' 에서 경남고 허구연 감독(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고인의 모습.

[투데이코리아=송인석 기자] 고(故)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가 배출한 최고의 별 중 한 명이다.

최 전 감독은 아마추어 때부터 명성을 떨쳤다.

경남고등학교 출신인 최 전 감독은 2학년 때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이어진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와의 경기에서도 8회까지 상대 타선을 꽁꽁 묶어 17이닝 연속 노히트 노런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최 전 감독은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인 1981년 미국프로야구(MLB)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을 체결했지만 병역 문제에 발목이 잡혀 꿈을 접었다.

한국의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우승 멤버로 활약한 최 전 감독은 이듬해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며 신화를 써내려갔다.

프로 두 번째 시즌인 1984년이 압권이었다. 최 전 감독은 27승13패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의 성적을 올리며 팀을 후기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해 롯데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는 최 전 감독을 위한 무대였다. 최 전 감독은 1,3,5,6,7차전에 나와 혼자서 4승을 책임지는 기적 같은 행보로 롯데에 사상 첫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다. 최우수선수(MVP)는 당연히 최 전 감독의 몫이었다.

150㎞에 육박하는 빠른 직구와 낙차 큰 커브로 승승장구하던 최 전 감독은 1989년 선수협의회 결성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삼성에 보복성 트레이드됐다. 트레이드 상대는 현 넥센 히어로즈 감독인 김시진이었다.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온 몸을 받쳤던 롯데와의 작별은 큰 충격을 가져다줬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혹사를 당해 이미 몸 상태가 망가진 최 전 감독은 1990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방송 출연 등으로 야구계를 잠시 떠나있던 최 전 감독은 2001년 한화 이글스 투수 코치로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했다.

최고 투수의 지도자 생활은 기대와는 달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투수 코치로 한 시즌을 보내지 못한 최 전 감독은 4년 뒤인 2005년부터 한화 투수 코치로 재기해 2006년에는 2군 감독으로 보직을 옮겼다.

하지만 2007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자연스레 그라운드와 멀어진 최 전 감독은 최근 병세가 악화돼 경기 일산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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