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올해 코스피 주가가 2,400선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원ㆍ달러 환율은 연말에 1050원 밑으로 간다는 예측이 대세였다. 그러나 최근 코스피 주가는 1,700선이 무너졌다. 원ㆍ달러 환율은 1,200원을 육박하여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 당시의 수준에 가깝다. 국가부도위험을 반영하는 신융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년 4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각종 국내금융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권에 이미 진입했다. 이러다 제2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당한지 불과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왜 세계경제는 대형 금융위기 가능성에 직면한 것일까?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야하는 것인가?

민스키 모멘트, 금융위기가 시작되는 시점

하이먼 민스키는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경기변동에 따른 신용공급순환을 주목한다. 호황기에 개인과 기업들은 상환능력을 넘어선 대규모의 현금을 운용하게 된다. 호황 국면에서 신용 팽창이 성장의 연료를 공급하는데 은행을 통해 부채의 규모가 급속히 확대된다. 경기확장이 지속되며 주식과 부동산가격은 계속 오르면서 거품이 낀다. 이것이 반복되다보면 어느 순간 균형 수준을 넘어선다. 그러면 이에 불안함을 느낀 은행은 신용한도를 좁힌다. 경기지표둔화, 대형금융사고, 국제유가 급등 등 경제불안 신호들이 나타나면 은행들은 대출관리에 더욱 민감해진다. 그러다 시장이 갑작스럽게 경색되면 단기적인 유동성위기에 처한 가계나 기업이 파산하고 만다. 수많은 경제주체들이 과도한 부채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충격이 방아쇠가 되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순간, 이것이 바로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다.

금융회사들이 호황기에 수익성제고를 위해 신용확대(레버리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화근이 된다. 신용확대를 통해 자산규모를 최대한 키워 경쟁심화에 따른 수익률 하락에 대응하는 것이다. 수익률이 동일하다면 덩치가 클수록 절대 이윤액수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과도한 신용확대는 자산거품을 일으키고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 견디지 못해 폭발한다. 이것은 ‘민스키 모멘트’의 또 다른 모습이다.

리먼 사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문제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계약금을 안내도 집값의 100%를 넘게 빌려 주었다. 저금리의 유동성을 믿은 데다 서브프라임 등급은 부실위험이 있어 대출금리가 더 높아 큰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증권화되고 부실폭탄이 박힌 채 전 세계 금융시장에 팔려나갔다. 오르던 집값이 갑자기 하락하고 차입자들이 부채상환능력이 없는 것이 드러났다. 은행들이 신용축소에 들어가자 빚을 갚기 위한 차입자들의 디레버리지(부채축소)에 불을 당기면서 자산거품이 붕괴되었다.

리먼 사태의 경우 미국 투자은행의 레버리지(차입자본/자기자본)가 무려 28배나 되었고 부채비율만 24대 1이었다. 대형은행에 대한 신뢰가 어느 순간 무너지면서 주가는 급락했고, 디레버리지에 필요한 자산 가치는 급락하면서 금융회사의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대규모 손실을 입은 금융회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전 세계적인 신용경색으로 이어졌다. 선진국 금융회사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신흥국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면서 신흥국의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은 급등했다. 미국 금융회사의 부실규모는 약 1조 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의 5대 투자은행에 속하는 베어스턴스, 리먼 브라더스, 메릴린치 등이 민스키 모멘트의 폭격을 당해 파산했다.

세계경제 침체를 국가재정으로 푼 것이 유럽 재정위기의 시작

리먼 사태로 인한 신용경색이 세계경제의 침체를 불러오자 위기를 느낀 주요국들은 국제공조를 모색했다. 미국 등 주요국은 저금리와 돈을 푸는 양적완화정책을 통한 유동성 확대에 나섰고 재정지출 확대로 구제금융을 시행하며 경기를 부양하기로 했다. 일단 민간의 부실을 국가재정으로 메우기로 한 것이다. 이 덕분에 2009년 이후 세계경제는 점차 회복되기 시작하여 지난해에는 5.1%나 성장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 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면서 재정수지가 빠르게 악화되었다. 과도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비율 등으로 주요 선진국들이 이를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었다. 2009년 말 그리스를 시작으로 유럽 재정위기가 시작된 배경이다.

그리스는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한 후 싼 금리의 유로화가 유입되자 정부와 가계는 돈을 흥청망청 썼다. 임금이 오르고 집값에 거품이 커졌다. 정부 몸집이 커지고 포퓰리즘 복지정책이 난무해 국가부채가 급증했다. 세금으로 모자라니 국채를 남발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집값 거품이 꺼지면서 그리스 경제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경기침체로 세수는 줄어드는데 방만한 공공부문과 복지혜택을 유지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더 늘려 재정이 빠르게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3,000억 유로 정도의 국가부채가 있는데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152%나 되며 자력으로 갚을 길이 없다. 이대로 가면 그리스발 민스키 모멘트의 도래가 불을 보듯 훤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디폴트는 유로존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게 된다. 그리스 국채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대국들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대형은행들도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된다. 자칫 유로존 해체를 몰 수 있는 그리스의 디폴트를 일단 막기로 유로존 국가들은 결정했다.

그리스는 지난해 5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첫 유럽 국가로 전락해 1100억 유로를 지원받기로 했다. 이중에서 지금까지 650억 유로가 지급됐다. 나머지 돈 가운데 다음 달에 주기로 한 6차 지원금 80억 유로가 지원되지 않으면 그리스는 부도가능성이 높아진다.

최근 그리스의 디폴트 우려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것은 6차 지원금의 이행여부가 불투명하였기 때문이다. IMF, EU, 유럽중앙은행(ECB) 등 ‘트로이카’ 실사단이 실사해보니 그리스 정부가 구제금융 조건으로 제시한 재정긴축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아 6차 지원금 지급이 어렵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그리스 디폴트 가능성의 불똥은 이탈리아로 튀었다. 이탈리아 재정적자 규모는 지난해 GDP의 4.6%로 다른 PIGS 국가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하지만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20%이고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정부부채만 1200억 유로로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보다 두 배나 많다. 5년 안에 갚아야 할 정부 빚은 무려 9000억 유로다. 그리스의 위기가 고조되자 이탈리아의 국채금리가 급등하여 앞으로 국채를 발행해 나라 빚을 갚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이다. 급기야 9월 20일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었다. 유로존 내 세 번째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의 재정위기가 현실화되면 유로존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그리스의 디폴트 우려, 이탈리아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위기국의 채권을 많이 들고 있는 유럽계 은행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프랑스 2ㆍ3위 은행들과 이탈리아 7개 은행의 신용등급이 잇달아 하향 조정되었다. 게다가 유럽 재정위기가 미국경기에 악재로 작용하면서 그 영향권 아래 있는 미국 3대 은행의 신용등급도 하향 조정되어 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IMF는 유로 위기 때문에 역내 은행이 입을 타격의 규모가 3000억 유로(약 482조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유럽 각국은 사실상 디폴트 판정을 받은 그리스의 충격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

이런 가운데 그리스 디폴트, 이탈리아의 구제금융 신청, 프랑스 대형은행의 파산 중 하나라도 현실화되면 세계 금융시장은 리먼 사태 이후 또 다시 민스키 모멘트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셋 중 하나라도 터지면 유럽의 위기가 유동성부족 사태를 넘어가 은행위기 혹은 신용경색으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주요국 은행들의 그리스 채권 보유규모는 프랑스 567억 달러, 독일 340억 달러, 영국 1,412억 달러에 달한다.

그리스는 현재 시장에서는 사실상 디폴트 판정을 받았다. 그리스의 1년 만기 국채금리가 연 100%, 2년짜리가 60%를 넘는 것은 사실상 상환불능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6차 지원은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가 부동산세 20억 달러 신설을 발표한데 이어 공무원 감원 및 임금삭감 등 추가적인 긴축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EU와 IMF는 그리스가 긴축프로그램을 수정할 충분한 시간을 주는 선에서 타협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그리스가 디폴트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내년에도 경기가 침체되는 속에서 재정수지 개선이 가능할지 의문인데다 국가부채 비율이 너무 높아 내후년부터 돌아올 국채를 상환할 여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은 이미 그리스를 살릴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그 충격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화벽 마련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스 국가부채의 50% 탕감과 유로존 잔류를 전제로 한 그리스의 질서 있는 디폴트가 유력한 방안 중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스 국채로 손실을 입을 은행들을 구제할 유동성 공급과 자본투입도 이루어 질 것이다. 그리스 위기의 이탈리아, 스페인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대폭 확충도 추진될 것이다.

유럽이 그리스의 질서 있는 디폴트로 가닥을 잡게 되면 제2리먼 사태와 같은 민스키 모멘트가 재현될 가능성은 줄어들 수 있다. ECB가 유로존 국채매입과 단기 달러 유동성 지원에 나서고 미연준(FRB), 영란은행(BOE) 등과 달러 스왑을 무제한 재개한다고 발표한 것도 민스키 모멘트의 도래를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국내 반대여론을 수습하여 EFSF의 대폭 확충이 이루어진다면 이탈리아, 스페인으로의 위기 확산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다.

한국도 유럽발 민스키 모멘트의 재현 가능성에 대비하여야

그러나 유럽발 민스키 모멘트의 재현 가능성은 줄어들더라도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미칠 파장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리스, 이탈리아의 성장률 전망이 하향 조정되고 있어 실물경제 위축과 재정악화의 악순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리스의 질서 있는 디폴트에 대한 원활한 국제공조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시장의 불확실성이 다소 완화되면서 실물경제의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입장이 다르고 ECB의 통화신용정책을 둘러싼 유로존 국가들의 견해차도 상당한데다 유럽의 재정이 통합되어 있지 않아, EFSF 대폭 확충을 낙관하기도 쉽지 않다. 위기국가들의 재정개혁은 정치적 갈등을 수반하게 되어 해결이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게다가 성장동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조정과 경쟁력 있는 산업을 키우는데도 수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유럽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시도과정에서 상당한 우려곡절이 예상되며 그로 인해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불리한 여건을 조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유럽계 은행들이 대출을 회수할 가능성이 상당기간 상존할 수 있는 것이 큰 부담이다. 국내은행들의 자본을 더 확충하여 재무건전성을 개선하고 외환방어벽을 더 견고하게 쌓아야 한다. 환율은 급변동을 막는 미세조정은 하되 일정 목표대를 지키기 위한 무리한 개입은 피해야한다.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을 규제하는 것은 IMF도 양해한 사안이다. 기존의 선물환포지션 한도 강화, 외환건전성 부담금 부과, 외국인채권투자과세 등의 방안 외에 G20 차원에서 과도한 자본유출입을 억제하는 다양한 방안마련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물가가 불안하나 경기가 불확실한 만큼 당분간 금리ㆍ재정정책은 중립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경제의 저성장이 장기화되어 수출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다. 수출동력이 약화되더라도 내수활성화를 도모할 신성장동력 확충이 필요하다. 위기가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재정건전성을 높여 위기대응능력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한 자신감을 가지고 유럽발 민스키 모멘트의 재현 가능성에 대비하면 현재의 위기를 극복 못할 리 없다.(www.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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