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우리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소극장 보유 관공서 도움 절실

장애인연극.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생소한 단어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조금씩 자리잡아 가는 것 같다며 흡족해하는 좌동엽 대표(38,남). 그를 통해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장애인들의 삶의 지혜와 혜안을 배워보고, 비장애인에만 한정됐었던 영역을 넓혀 다각도의 삶의 철학에 귀기울여 보자.

[투데이코리아=장혜윤 기자] 장애와 비장애의 선을 그어 굳이 확연히 구분할 필요는 없다. 사실 장애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에 한정되지 않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장애는 신체적 장애뿐만 아니라 마음의 장애까지 포괄하는 주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유형, 무형의 난관을 겪고 있고, 장애는 다른 말로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뜻하는 은유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염원만으로 해결 안 되는 왜곡된 현실을 처음 접한 게 시발점입니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의 장애인극단‘판’에서 대표직에 재임하고 있는 좌동엽대표의 말이다. 좌대표는 한신대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20년간 장애인들과 함께 했다. '진정한 장애인의 모습을 사회와 소통시키고 싶다.'는 고민 끝에 문화라는 통로를 찾은 그는 지금도 그들이 공연 후 느끼는 성취감에 보람을 느끼며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좌 대표는 1998년 '에바다 사건'때부터 본격적으로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사람들의 마음만으로 해결 안 되는 사회의 유착관계와 복지시설의 비리, 모순된 언행을 처음 접하게 되었었고, 그것을 계기로 에바다 사건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보통 지자체가 복지시설과 유착관계가 있을시 시설을 비호하면 문제가 발생해도 요지부동하는데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구제 신청을 가능케하는 행정처분 마련에 일조했어요. 아직 미비한 점도 있지만 보건복지부 장관이 시설을 폐쇄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겨서 현장정리가 가능했던 점이 소득이라면 소득입니다.”

그는 그 후에도 '에바다 복지회'사무국장을 6개월 정도 역임했었고, ‘시민연대회의’에 이어 노들 야학의 교사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연극동아리를 전담하게 되었고 이것을 시초로 2008년 지금의 장애인극단‘판’을 창단하게 되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인 관련 문화교육단체가 전무한 상태라 힘든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420pan. 장애인의 날, 장애인의 문화장판이라는 뜻이에요.”

장애인극단판의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420pan.or.kr'이다. '420pan'의 뜻에 대해서 물어보았더니 장애인의 날이 4월 20일이며, '판'은 장판에서 따왔다고 대답했다. 장판은 이쪽 세계에서 공간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람들, 일 등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다.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다만 다양하게 태어났을 뿐이죠."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구별하는 것은 사회적 구별일 뿐이에요. 이들은 다양하게 태어났을 뿐인데 사회에서 장애라고 부릅니다. 이들 역시 독립적인 주체이자 한 인간으로서 바라봐야 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 이전에 모두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통합적 관점이 필요한 것이죠.”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과 시혜가 아닌 상황 적절한 배려라고 그는 거듭 강조한다. 장애인을 고려해야 될 상황, 그렇지 않은 상황 모두 필요한 데 쉽게 상처받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된다고. 장애인들 사이에서 경증장애인은 비장애인취급 받을 정도로 중증장애인과 차이가 크다. 경증장애인은 기존에도 문화 활동을 누릴 수 있었으나 중증장애인은 그럴 수 없었기에 극단은 중증장애인 중심으로 기획됐다고 설명한다.

“중증장애인에게 연극이란..자신감과 희망 안겨준 치료제이자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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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일반인들이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변하는 부분이 많다고 한다. 장애인을 만나는 것에 대한 편견은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접근의‘진정성’이며 노들야학, 극단, 비마이너활동을 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진실된 장애인의 모습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언론활동과 문화작업 통해서 실제와 인식 사이의 간극을 좁힐 목적이었다고.

“이론적으로 ‘사람은 평등하다, 똑같다’고 말로만 읊조리는 것보단 실천에 옮기고 싶었습니다.”학창시절 그는, 히틀러 정권하에서의 사회 불의를 부정하는 반나치스 운동을 펼치다 처형된 ‘디트리히 본회퍼’를 존경했다고 한다. 실천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지향한 것이다.

이에 힘입어 그는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극단을 실제로 창단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수업시간 1~2년간이나 만성우울증에 걸렸던 중증장애인들이 눈에 띄게 밝게 변화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감정이 전이되는 것 같아 감동받았었고 그것이 자극제가 되어 2005년도부터 연극반을 주체적으로 맡게 되었다. 그 당시 17명의 중증장애인이 뮤지컬공연을 했었는데 호평과 함께 극단창단제의를 받아 지금의 극단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장애인문화단체로서는 최초의 사회적 기업이다.

“처음엔 잘 안들리던 중증장애인의 목소리가 어느순간 들리게 됐을 때... 가슴이 뭉클”

관람객들 같은 경우 처음엔 장애인 그리고 아는 분 위주였으나 이제는 비장애인과 모르는 분들도 많이 와주신다고 한다. 신기한 점은 악평이 없다는 것. 처음 볼 때는 재미여부를 떠나서 신기하게 바라보는 데 자꾸 볼수록 작품성이 중요해져 여러 본 사람들의 평을 더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아마츄어 수준이었으나 작년에는 그 수준 이상의 호평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는데 그건 바로 중증장애인의 안 들리던 목소리가 어느 순간 귀에 들리게 되는 장면. 그 순간이 감격스러웠다고 한 관객이 후기를 귀띔했다.

1년 남짓의 대장정 통해 한 편의 연극완성,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극이 완성되어도...‘공연할 곳’이 없다는 겁니다.“
‘장애인극단’이란 이유로 빈번한 대관신청 거절. 심사기준 알 길 없어.

한 편의 극을 기획하고 완성하는 데까지 비장애인의 그것보다 훨씬 긴 1년여의 시간이 걸리지만 장애인들의 참여율이나 의지는 매우 좋은 편이라고 한다. 중도탈락자가 없다는 점 또한 그들이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하지만 운영하는 데 가장 힘든 점은 공연장소가 없다는 것.

기존 문화예술계에서는 장애인극은 실험주의극이라는 취급을 해 대관신청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공연장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가능한 곳은 관공서에서 운영하는 소극장 정도. 하지만 그 곳에서도 작품성이나 인지도를 요구해 선정되기는 힘든 형편이다. “공익성 갖췄어도 작품성 이유로 낙방시키는데 심사기준을 모르니 맞출 수도 없는 실정이고 심사기준 공개를 요청해도 내부지침상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니 난감합니다.”

장애인연극의 경우 제일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접근성’이다. 이런 장애인 접근성을 갖춰놓은 공연장은 가뜩이나 많지 않은데 공연심사기준이 까다롭고 막연해 공연장소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

또한 고전극 같은 경우 중증장애인이 대사면에서 소화하기 힘들어 많은 수정이 요구되기에 ‘창작극’이 대부분인데 주최측에서는 고전극을 고집하는 상황. 이렇듯 공연장소로 선정되기까지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공연할 장소가 없으면 그들의 1년 여간의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다.

그나마 예전에는 연습할 장소도 마땅치 않아서 옮겨다니는 일도 고생이었으나 지금은 조그마한 연습장이라도 마련해 상황이 조금 나아져 다행이라며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장애는 업보가 아닙니다. 그들은 벌 받지도 않았고, 장애를 전염시키지도 않아요.”

유럽의 경우, 옛 건물에는 손을 안대는 관례가 있어 건물에 장애인 접근성이 떨어진다.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시설환경은 좋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동양사상들 특히 유교와 불교의 윤회와 업보 사상에 대한 잘못된 민간 해석이 장애인 관련 인식을 절망적으로 만들어요. 종교에서 근본적으로 장애인을 차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석과정에서 ‘장애인 차별논리’로 둔갑하게 된 것이죠. 과거에도 장애인의 수는 현재와 비슷했을텐데 유교가 자리잡고 있던 시절 장애인들을 나병환자취급을 한다든가 아니면 집안의 흉, 신의 징벌로 여겨 집 밖으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사회와 격리시켰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단 생각밖에 안들어요. 그들은 벌받지도 않았고, 병을 전염시키지도 않는 데 말입니다.”며 쓴소리를 했다.

심지어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까지 장애를 자신들의 책임으로 여겨 차별을 정당화하는 경우도 있으니 잘못된 사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아울러 네팔이나 남미같이 우리보다 잘 살지 못하는 나라에서도 장애인지도자가 나올 정도로 편견이 없는 데 그보다 물질적으로 더 발달된 우리나라가 사회적 벽이 더 높아 정신적 수준은 물질의 그것만큼 선진화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또한 그가 장애인단체에서 20년 동안이나 있었지만 이제야 깨닫는 무의식적인 편견도 있었음을 고백했다.

"한 발로 다가서서 하는 프로포즈... 상상해본적 있으신가요?!"
장애인만 갖고 있는 다양성으로 문화의 새 길 개척.

누구나 똑같은 사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장애인도 할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좌대표의 바람이다. “문화는 비교적 단기간 내에 시작부터 완성까지 이룰 수 있고, 타고난 재능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장애인이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유일한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접해봐서 가능성도 보았구요.”한 번은 무대에서 중증장애인이 프로포즈하는 씬에서 대본에도 없었는데 한 발로 다가서서 프로포즈를 하더라. 프로포즈의 다른 모습이랄까? 그 장면을 통해 장애인만 할 수 있는 연기나 삶의 방식 등을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비장애인들은 프로포즈를 할 때 이벤트라던가 뭐 그런 것들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죠. 중증장애인이라서 자기들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경쟁력이자 자산이라고 생각했습니다.”며 좌대표는 다양성을 찾는 작업에 좀 더 몰두할 각오를 밝혔다.

“작은 관심으로 그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어요.”

장애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조금만이라도 개선될 수 있다면 공연환경도 더 좋아지고 공연장 구할 수 있는 길도 더 넓어질 거라고 그는 말한다. 또한 이 안에서도 무궁한 문화활동이 일어나니 기존 연극계에서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전한다. 태초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는 데 조금의 관심과 따뜻한 격려, 기대가 있다면 그들은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1.jpg끝으로 공개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에 출연해 1차 오디션에 통과한 시각장애인 ‘정명수’씨를 보셨냐는 질문에 그는 보지는 못했지만, 성공했다면 그 뒤에는 피눈물 나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대답하며 반가워했다. 출발자체가 다르고 제공된 과정이 다르고 사람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진정한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장애인이라고 가점을 주는 것은 장애인들 스스로가 더욱 용납할 수 없으며 다만 악조건과 환경을 존중해주고 그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게 평등이라는 설명이다.

중증장애인이 공연무대에 서려면 비장애인들과는 달리 활동보조자들, 즉 크루(crew)들이 필요하다. 신체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만큼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이 추가되는 게 당연하다. 모단체가 노들장애인센터라 처음 극단 창단할 때는 모단체의 도움을 받았었고 지금은 자립할 정도의 수준은 됐지만 아직도 적자상태. 그 적자를 좌대표가 사비로 메울 만큼 그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다.

지금 장애인극단‘판’의 후원단체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유일하다. 큰 보탬은 아니더라도 먹거리나 응원의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도 그들에게는 소중하다.

우리에게 연극이란 일상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의 해소장일 수도, 현실에서 갖지 못한 이상향의 대리만족 매개체일 수도 있다. 규격에 갇히기 싫어하는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생각의 규격에서는 헤어나오지 못하는 지식인들에게 이 연극을 추천한다. 비록 명작도 아니고 화려한 모습도 아니지만 그들의 아우성은 우리 삶의 성찰을 가져온다. 판에 박힌 듯 시계추처럼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세상에, 마음과 지혜로 연기하는 그들의 발상이 헤라클레이토스의 망치가 되어 우리를 두들길 날도 머지않았다.[문의 02-745-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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