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안 2.1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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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가 끝난 후 맞이한 10월의 증권시장은 시퍼렇습니다. 바닥이 보이지 않습니다. 환율은 드디어 1,200원/1달러를 넘나들기 시작했고 9월의 소비자 물가도 여전히 목표치를 넘는 4.3%라고 합니다.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분석과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시원한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 가운데 은행들의 '묻지마 돈벌이'가 사상 최대 성과를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는 기사가 눈에 띕니다. 또 최근 금융 수장은 간부회의에서 "일련의 시장안정 조치로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정비돼 가는 느낌"이라며 "다음 단계로 우리가 더 관심을 기울일 부분은 신협과 새마을금고"라고 말했다는 얘기도 들려옵니다. 동네마다 이번엔 새마을금고와 신협 앞에서 밤을 지세는 분들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저축은행이 다 망가져서 또 다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쏟아 부어야 할 판인데, 불을 꺼야 하는 사람이 "불이야!" 외치고 있는 꼴입니다.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부어 겨우 살려놓은 은행들의 성과는 외국인 주주들에 대한 고율배당, 그리고 숱한 저임금의 창구직원을 거느리고 일하는 일부 정규직들만의 고임금으로 돌아갈 뿐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또 한번 분노가 치밉니다.
서민금융기관이라는 저축은행이 어느 날 갑자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목됨과 동시에 영업이 정지되었고, 순식간에 서민들은 길에 내몰렸습니다. 예금을 찾기 위해 길바닥에 이불을 깔고 숱한 밤을 지세우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저축은행 사태의 본질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IMF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부실화된 저축은행은 정부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새로운 주인을 찾았습니다. 공적자금은 물론 국민의 세금입니다. 관리주체인 공적자금관리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저축은행이 제대로 경영되고 있는지 관리 책임이 있습니다. 설립목적부터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은 은행에 접근하기 어려운 서민들을 위해 소액 저축과 대출을 하는 기관이므로 이에 대한 관리는 더욱 면밀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적자금이 투입된 저축은행의 주인을 찾아주는 과정에서 감독당국은 인수의사가 있는 대주주의 적격성 심사를 소홀히 했고, 저축은행을 통해 머니 게임을 하려는 부적격 대주주에게 저축은행을 내주었습니다. 나아가 그들의 경영 성과와 경영행태도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중 **1저축은행, **2저축은행 등의 이름이 들립니다. 왜 단일 주주에게 2개, 많게는 4개의 저축은행이 있는 것일까요? 이는 부실화된 저축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후 주인을 찾아주는 과정에서 일어났습니다. 예금보험공사의 저축은행계정은 이미 고갈된 상태라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공적자금을 더 조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공적자금을 만들 자신이 없자 기존의 저축은행에게 인수 의사를 추진했고, 이런 저축은행을 인수할 유인을 만들기 위해 감독당국과 예보는 이들 저축은행에 특혜를 주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대가로 저축은행의 영업권역을 넓혀준다거나, 인수된 저축은행의 합병을 통한 경영정상화가 아닌 2개, 3개의 저축은행으로 법인을 유지하는 것을 용인한 것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예금보호한도의 확대와 동일인 여신한도 확대입니다.

저축은행의 예금자 보호한도는 은행과 동일하게 1인당 5,000만원(원리금)입니다. 이는 어느 저축은행이라도 예금자가 5000만원 한도에서 예금하면 정부(예금보험공사)에서 원리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것인데 2개의 법인으로 유지한다면 결국 이것은 1억원까지 예금을 보호해 주게 됩니다. 금융기관의 핵심인 전산장비를 같이 이용하고 여신심사를 한 곳에서 하면서 영업점의 상호가 1,2로 다르다고 예금자 보호한도를 확대시킨 것이지요. 이런 저축은행이 부실화되면 그 부담은 당연히 국민에게 돌아옵니다. 그것도 2배로 말이지요. 이런 행태를 감독해야 하는 감독/정책당국이 이를 조장해놓고 이제 와서 "일련의 시장안정 조치로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정비돼 가고 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예금과 대출 양면에 있어 감독기관이 가장 중요하달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은 결과, 오늘날 저축은행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사실 저축은행은 예금보호한도가 있어 예금을 늘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제공함과 동시에 예금보호한도가 있으니 부실한 저축은행일수록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기 전에 특판 금리로 금리를 올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금리를 조금만 올려도 자금을 조달하기 쉬우니까 말이지요.

과연 우리의 감독당국은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감독기관과 저축은행의 대주주 및 경영진이 서로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지 않고 쉽게 나라 돈을 빼먹고 임시방편으로 그 때를 넘기려고 한 것이 저축은행 문제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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