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내분이 점입가경이다.

지지자들은 자신이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가에 따라 완전히 갈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당수 한나라당 지지층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치인이 한나라당 대선 주자로 정해지면 투표를 포기하거나 차라리 범여권을 찍을 것'이라는 농담 같은 분석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14일 대구합동연설회가 열린 대구 실내체육관 앞마당에서는 행사 직후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양쪽 후보 지지자들이 서로 풍악을 울리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쯤에서 그치면 흥겨운 '축제 마당'이었으련만, 서로 경쟁적으로 구호를 외치다가 시비가 붙어 밀고 당기는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육두문자를 날리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더욱이 일부 지지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수가 되는 후보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명박 캠프의 선거유세용 버스가 빠져나가는 길을 막고 '검찰은 도곡동 땅의혹을 수사하라'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무리도 있었다. "사기꾼 물러가라", "후보를 사퇴하라"는 구호는 점잖은 편이고 욕설을 하며 철천지 원수 대하듯 하는 지지자들도 섞여 있었다.


일반 당원이나 지지자들은 혹시 군중심리에서 그랬다 치자. 그렇다고 염창동 중앙당사에 자리한 거물 정치인들이라고 해서 이런 갑남을녀들이 감정적으로 상대 캠프가 망하길 바라며 '저주의 굿판'을 펴는 것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다. 여기저기서 죽고살기로 싸움판을 조성하고 있다.

"도곡동 땅 사건 수사 결과를 빨리 밝히라"고 '박근혜 라인' 국회의원들이 대검찰청을 항의 방문하더니, 13일 오후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자 이번엔 이명박 캠프에 가까운 의원들이 대검 앞에서 철야 농성을 했다. '정치공작'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14일에는 홍사덕 박근혜 캠프 선대위원장이 "이명박 전 시장은 예비후보직을 사퇴하라"고 주장하고, 같은 날 대구 합동연설회에서 이 전 시장이 "수많은 공격을 받아왔지만 끄떡없다"며 "정치인들이 이래선(네거티브 공세) 안 된다"고 자신에 대한 공세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등 하루종일 땅 논쟁이 그치질 않았다.

그렇다고 이전엔 사이좋게 지낸 것도 아니다. 그 동안 양 캠프는 서로 네거티브 공세니, 의혹덩어리니 하면서 신경전을 교환해 왔다. 봄철 이래 서로 막말이 오가다가 급기야 고소고발이 남발됐다. 스스로들 평가하기에도 범여권과 싸우는 것보다도 더 치열하게 싸웠다.

물론 박관용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장의 말처럼 "같은 당에 국민 지지율 1,2등 후보가 같이 있다 보니 그런 것"이기도 하고, 그야말로 청와대 주인이 되느냐 마느냐가 달린 문제이니 상대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눈엣가시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저 자를 눌러야 내가 올라간다는 '제로섬' 게임의 특성이 작동한 탓도 있다. 사실 정치란 원래 2등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긴 하다.

그러나 아무리 제로섬 게임의 대선정국이라 해도, 이것은 도가 지나쳤다. 서로 고소고발전으로 치닫고 결국은 검찰을 안방에 불러들였다.막말로 "저쪽 캠프 놈들 말하는 게 맘에 안 든다, 잡아가라", "그쪽 캠프 주인장이 투기꾼 아니냐, 잡아다 수사해 달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내년 봄 총선 전에 한나라당이 쪼개질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당 내부에서 스스로 하는 것은 이렇게 고소고발전으로 서로 으르렁거리고, 상대편 후보 버스를 향해 야유와 욕설을 퍼붓는 형편에서는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진 주자가 당을 뛰쳐 나가진 않더라도, 당에 남아 '대선후보 흔들기'를 할 것이란 끔찍한 시나리오도 각 언론사들이 보도하고 있다(이러려먼 차라리 나가는 게 백배 낫다). 이 또한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상황이 하도 참혹하다 보니 이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에 "말이 되네"라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을 한나라당은 스스로 조성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이번 19일 경선과 20일 전당대회를 마치고 한나라당은 스스로 점검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 이번 2007 대선 승리라는 단지적 과제를 위한 집안 단속이 아니라, 대체 앞으로도 정치를 할 것인지, 이런 '정신 세계'로 2008년 18대 총선과 이후 정치도 할 것인지하는 장기적 관점에서 진로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 내에서 서로 '저주의 굿판'을 벌여놓고 치성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 같은 당사를 쓰는 것도, 정권 창출과 국정 운영 운운하며 '정당'이라는 탈을 쓰고 있는 자체가 모순이다.

그러니 한나라당은 20일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대대적인 내부 반성과 치유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과 대오각성에는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가 가장 앞장서야 할 것이다. 결자해지라 했다. 두 후보야 서로 쌓인 것도 많고 억울한 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게 두 사람으로부터 말미암은 게 아닌가.

그러니 당 내 곳곳에 차려진 '저주의 굿판'을 치우는 일에도 두 사람이 가장 먼저 나서야 할 것이다. 대선 주자가 되는가 못 되는가는 물론 개인적으로 큰 문제다. 하지만, 자신들의 싸움이 제대로 격조높에 유지되지 못하고 노름판만도 못하게 된 책임은 더 큰 문제이고, 죄악이다. 각자 자기 지지자들을 돌아보고, 왜 순박한 갑남을녀 당원들이 같은 당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저주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고민하고, 이들의 상처난 마음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19일 대결에서 진 후보는 괜히 전당대회 끝나고 경선결과에 불복하는 법적 절차를 강구한다든지, 당을 깨고 나갈 방법을 연구하거나, 혹은 자신을 떨어뜨린 후보를 옆에서 '흔들' 궁리를 할 게 아니다. 이긴 후보라고, 저쪽에 줄 선 자들을 죽일 궁리를 할 것도 아니다.

둘이 힘을 합쳐 한나라당 내부를 돌면서, 당심을 해치고 한국 정치 문화를 갉아먹는 '저주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그게 우선이고, 대선주자급 인사다운 행동이다.

임혜현/투데이코리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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