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

2006년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여 2007년 4월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FTA 반대 세력이 줄기차게 제기해 온 문제 중의 하나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로 알려져 있는 투자자 대 정부 간 분쟁해결절차이다. 당시 한미 FTA 반대 세력은 ISD로 인해 우리나라의 공공정책이 무력화된다며 지금과 비슷한 괴담들을 이야기했고, 노무현 정부는 이에 대해 ISD는 우리나라가 체결한 거의 모든 투자협정에서 규정하고 있음을 주지시켰다. 또한 당시 체결된 한미 FTA 협정문에서 ISD 절차의 투명성을 강화하였고, 문제가 될 수 있는 '간접수용’에 대한 규정에서 공공복지 목적을 위한 비차별적인 정부의 행위는 간접수용이 아님을 명확히 하였다.

한미 FTA에 관한 한 노무현 정부와 현 정부의 차별성은 거의 없다. 현 정부에서 미국 정부의 요구로 행한 추가협의에서 자동차 관세 철폐 시기가 조금 늦춰졌을 뿐이다. 이에 대해 자동차 업계나 자동차산업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훼손되었다며 반발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오히려 한미 FTA의 체결을 환영하고 나섰다.

한미 FTA에만 ISD가 있나?

그렇다면 야당과 반대 세력의 주장대로 ISD라는 독소조항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한미 FTA는 비준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이 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ISD가 한미 FTA에만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체결, 발효한 대부분의 FTA에 ISD 규정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가 맺은 투자협정 중 4개를 제외한 81개의 투자협정에서 ISD를 규정하고 있다. ISD 규정이 없는 FTA로 한EU FTA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EU 회원국들과 개별적으로 투자협정을 체결하였고 여기에서 ISD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ISD는 한미 FTA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ISD 때문에 한미 FTA가 비준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공공정책 무력화 주장은 사실무근

그렇다 하더라도 ISD가 우리나라의 공공정책을 무력화시키는 독소조항이기 때문에 이를 제외해야만 한미 FTA를 비준할 수 있다는 주장은 타당한가?

ISD(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란 문자 그대로 투자자 대 정부 간 분쟁해결절차를 규정한 것이다. ISD 규정에 근거하여 투자자는 투자국 정부가 투자협정을 위배하여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경우 투자국 정부를 국제중재기구에 제소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제중재기구에 제소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투자국 정부의 투자협정 위배 여부이다. 국제중재는 정부 정책의 공공성 차원에서의 타당성 여부를 심판하지도 않고 공공정책의 중요성과 투자자 권리의 중요성을 서로 비교하여 심판 과정에서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분쟁의 사안이 된 조치가 투자협정의 내용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대해서 법리적 판단을 할 뿐이다. 따라서 ISD와 공공정책은 원칙적으로 관련이 없다.

한미 FTA에서 공공정책 보호 강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ISD와 공공정책을 관련짓는 대표적인 이유는 소위 '간접 수용’을 이유로 투자자가 투자국 정부를 제소하여 이것이 국제중재기구에서 받아들여질 경우 공공정책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논리이다. 간접 수용이란 국가가 투자의 직접적인 소유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조치이다. 따라서 공공성을 목적으로 한 정부의 정책이 간접 수용의 결과를 초래해 투자자가 정부를 국제기구에 제소해 승소하면 공공정책이 무력화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의 건강, 안전, 환경 등 공공 후생의 목적을 위한 비차별적 정책이 간접 수용에 해당하지 않음은 모든 투자협정에서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한미 FTA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더해 한미 FTA에서는 조세 및 부동산가격 정책도 간접 수용에 해당하지 않음을 명시하고 있다. ISD가 공공정책을 무력화시킨다는 주장은 간접 수용의 경우에도 성립하지 않는다.

ISD는 분쟁해결절차에 대한 규정

FTA와 투자협정은 공공성의 추구라는 정부의 목적을 당연히 존중하고 다만 이것이 내국민 대우 등 외국인투자자에 대한 비차별, 투자자산에 대한 적절한 보호 등 협정 내용과 충돌하지 않고 충분히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협정 내용을 준수하는 것은 체결국 정부의 의무이며 국제중재는 체결국 정부가 이러한 의무를 준수했는가에 대해 판단할 뿐이다. ISD는 이런 절차를 규정한 것이다. 이런 ISD가 왜 한미 FTA 비준을 못하는 이유가 되는가?(www.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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