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ㆍ미 FTA가 1000만 서울시민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ㆍ미 FTA 반대 의견서를 외교통상부와 행정안전부에 제출하였다. 반대 의견서에 포함된 내용 중에 하나는 한ㆍ미 FTA가 발효되면 미국형 기업형 수퍼마켓의 무차별 한국시장 진입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한ㆍ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에서는 한ㆍ미 FTA가 비준되면 소상공인 및 동네 상점의 폐업과 비정규직 양산이 우려되고, 공공요금 인상과 건강보험 부실화로 인해 서민들과 직장인들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ㆍ미 FTA가 발효되면 정말로 서민경제가 어려워질까.

우리나라 서민경제의 변수는 한ㆍ미 FTA가 아닌 서비스업의 구조적 취약성

사실 우리나라의 서민경제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변수는 한ㆍ미 FTA가 아니라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지속되어온 서비스업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2009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고용의 67%와 부가가치 비중의 약 60%는 서비스업에서 담당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과 부가가치율은 현저히 낮다. OECD 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은 약 23위 정도이다. 이러한 서비스업의 부진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계속된 만성질환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제조업 부문과는 달리 서비스업에서는 시장 및 고용 구조가 장기간에 걸쳐서 변화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생산성과 경쟁력 제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우리나라 국민총생산의 대략 60%를 감당하는 서비스업이 지금처럼 지식기반이 낮고 노동집약적인 전통적 서비스업에 정체된다면 향후 우리 경제의 잠재적 성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서비스업이 구조적으로 취약한 이유는 제조업 중심의 산업정책과 서비스 산업의 과도한 규제, 서비스기업의 영세성, 그리고 대외개방 및 경쟁 부족 때문이다.1)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제조업 중심의 산업정책과 서비스산업의 과도한 규제가 서비스업을 구조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었다. 1990년대 이후 우리기업의 기술진보와 생산성 향상을 장려하기 위해 제조업 중심 산업정책이 실행되었다. 반면에 서비스산업에서는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각종 규제와 차별적 대우가 늘어났다.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 부문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노동집약적 산업부문에서 퇴출된 인력들은 지식기반이 상대적으로 낮은 유통서비스업과 음식ㆍ숙박업 등 개인서비스업으로 흡수되었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자영업자 중심의 생계형 서비스업이 확대되었다. 제조업에 비해서 서비스업 부문에서 고용이 증가하였다. 문제는 서비스업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았고 노동생산성은 오히려 저하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서비스기업의 영세성 때문이다. 서비스업 중에서 서민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분은 도ㆍ소매업과 음식ㆍ숙박업이다. 2007년 현재 서울시의 사업체는 약 73만개이다. 그 중에서 도ㆍ소매업 사업체와 음식 및 숙박업체는 각각 약 21만개와 11만개이다. 도ㆍ소매업과 음식 및 숙박업을 합하면 서울시 전체 기업 수 중에서 약 45%에 이른다. 또한 2009년 한국의 종사자규모별 서비스업체 비중을 살펴보면 5인 미만의 서비스업체가 전체 서비스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88%이다. 유통업 및 개인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대략 열에 아홉은 영세자영업자라는 말이다.

동네마트, 정육점, 채소가계, 음식점, 통닭집, 호프집을 운영하는 영세자영업자들이 휴ㆍ폐업을 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전통적인 생계형 서비스업에 나타나는 낮은 생산성 때문이다. 자영업을 시작하려면 일단 자본금이 필요하다. 자금조달은 은행에서 가계부채 명목으로 대출을 받아서 해결한다. 판매할 물건들을 도매로 사와서 소매로 판다. 매매차익을 통해서 수익을 얻는다.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판매수입이 없다. 그렇지만 비용은 계속 나간다. 상점을 운영하기 위해서 대여한 생산설비에 대한 이자와 임대료를 갚을 수 없게 된다. 적자가 발생하고 부채가 누적된다.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할 수 없게 되고 휴ㆍ폐업한다. 실제로 2004년에서 2009년 사이 도ㆍ소매업체와 숙박 및 음식점업체의 휴ㆍ폐업 사업체 수는 각각 대략 연평균 15만개와 12만개였다.2) 이와 같이 자영업체의 영세성은 서비스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셋째, 대외개방 및 경쟁 부족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의료, 보건, 교육과 같은 사회서비스 부문과 음식ㆍ숙박, 문화ㆍ오락과 같은 개인서비스 부분은 대외개방도가 낮고, 진입 장벽이 높고 각종 규제와 차별적 대우가 많다. 그래서 개인서비스와 사회서비스 부문은 노동생산성과 부가가치율도 낮다. 이에 반해 도ㆍ소매업이 속한 유통서비스는 이미 1996년에 우루과이라운드에 따른 WTO 체제의 출범으로 유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었다. 유통시장 개방 이후 우리나라의 유통산업은 그 구조와 생산성에 있어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급격히 변화하였다.3) 실제로 2000년에서 2006년 사이에 서비스업 전체의 노동생산성 증가와 부가가치증가율은 대외개방이 제한된 사업서비스, 사회서비스, 개인서비스 등 다른 서비스업종들 보다 유통서비스업에서 훨씬 높았다.4)

한ㆍ미 FTA는 서비스산업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시발점

한ㆍ미 FTA가 발효되면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은 우리 기업과 중소상인들의 성장 잠재력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한ㆍ미 FTA가 발효된다고 해서 해외 대형 유통업체가 무차별적으로 국내 소상공인들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시장개방과 무역자유화가 서비스기업의 생산성 제고에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예는 월마트와 까르프의 국내진출 실폐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세계적인 유통업체인 미국의 월마트와 프랑스의 까르푸는 국내에 이미 진출하였다가 현지적응에 실패하고 철수하였다. 우리 소비자의 선호와 매장 진열방식과 입지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 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 할인점들은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유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세계 굴지의 할인마트들과 경쟁에서 이겼다.

향후 서비스업이 선진화되지 못하고 현 상태로 정체된다면 우리나라 서민경제에 심각한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서비스업 부문의 각종 규제와 차별적 대우를 없애고 서비스기업들이 경쟁을 통해 혁신과 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서비스업에 만연한 각종 관세 장벽, 투자 장벽 등을 없애야 한다. 서비스업종의 해외시장개방을 장려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서비스산업은 구조적인 개혁과 혁신이 필요한 상태이다. 한ㆍ미 FTA의 비준과 발효는 서민경제를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민경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서비스업의 저열한 생산성 제고에 가장 필요한 경쟁을 가져올 것이다. 또한 한ㆍ미 FTA로 인해서 서비스교역이 확대되면 지식기반이 높은 서비스업종은 대미 진출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고 청년들에게는 해외고용의 기회도 열릴 수 있다. 미국 내 기업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글로벌 공급 체인을 활용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ㆍ미 FTA로 인해서 열리는 새로운 생산여건과 환경은 우리나라 서비스기업들이 비교우위가 나타나는 부분을 선택해서 집중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한ㆍ미 FTA야말로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www.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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