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워싱턴 포스트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동아시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이 중국과 있을지도 모를 마찰에도 불구하고 중동으로부터 아시아로 시선을 돌릴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일정한 주기를 두고 개입주의와 고립주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해왔다. 고립주의는 국내경제가 침체할수록 현저해졌고, 개입주의는 장기적인 국가이익이 침해 받는다는 위기의식이 있을 때 대두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미국은 중동 시민혁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 패권주의의 일방적인 군사적 진출을 방임하다시피 해왔다. 중국과 전략적 제휴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가?
그 결과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황해의 이어도를 거쳐 류큐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전 방위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은 대청(淸)제국과 대당(唐)제국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장기적인 이익에 결코 이로울 수 없다. 아시아 각국의 영토주권과 안보적, 경제적 이익과도 분명히 충돌한다.
미국은 이제 아시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으로 돌아서야 한다. 아시아 각국도 중화 팽창주의에 대한 공동의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야 한다. 중국을 적대할 필요는 없지만, 중국의 자의성과 오만에 대한 우려를 공유할 필요는 있다. 여기엔 러시아, 인도, 베트남도 포함될 수 있다.
한국에 대해 중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더 나을 것도, 더 좋을 것도 없는 두 팽창주의 국가였다. 그럼에도 반일주의는 강한 데 비해 중국에 대한 경계심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임진왜란 때도 중국은 한국을 일본과 더불어 나누어 가지려고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중국은 한국에 대해 비우호적이다. 미국이 전작권을 이양하는 시점을 계기로 중국은 황해에 대한 제해권부터 본격적으로 장악하려 할 것이다.
한국경제는 이미 중국에 볼모로 잡힌 상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신까지 잡혀선 안 된다. 중국의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는 틈만 났다 하면 한국에 대한 중국정부의 대국주의적 속내를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논조로 전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조야(朝野)는 너무나 무감각하다.
한국은 물론 작은 나라다. 작은 나라로서의 현명한 ‘광해군 외교’가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선린우호국이라고 처음부터 안일하게 전제하는 것은 위험한 환상일수도 있다. 오늘의 중국은 군사강대국일 뿐, 도의적 문명국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패도(覇道) 국가에 대해서는 그 위협을 받는 작은 나라들의 협력적 자위(自衛) 외교가 필요하다. 미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동의 관심이 요구되는 이유다. (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