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명지대학교 교수 경제학

조동근.jpg내년 총선을 겨냥한 여야의 선심성 예산 증액으로 2012년 재정기본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2013년 균형재정 달성을 목표로 2012년 예산안을 보수적으로 편성했다.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2012년 총지출은 2011년 대비 5.5% 증가한 326.1조원, 총수입은 2011년 대비 9.5% 증가한 344.1조원으로 잡았다. 재정건전성 지표인 '관리대상 재정수지’도 2011년 절대액 기준으로 25조 적자와 GDP대비 마이너스 2%에서, 2012년에는 14.3조원 적자와 GDP 대비 마이너스 1%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균형재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2011년의 남유럽 글로벌 재정위기는 말 그대로 방만한 재정운영이 가져온 재앙이다. 경기침체에 따른 '시장소득의 부족’을 복지지출로 메꾸려 한 것이 화근이었다. 경기도 부양시키지 못하고 국가부채만 쌓여, 재정정책을 구사할 여지가 사라진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나라가 1997의 IMF외환위기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장을 나름대로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지출을 늘릴 수 있을 만큼 '재정여력’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재정건전성은 예비 비상식량에 비견될 수 있다. 한편 2012년의 보수적 재정운영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차원에서의 적자재정 운영(GDP 대비 관리대상재정수지 마이너스 5%)에 대한 '출구전략’(exit strategy)의 성격을 띠고 있다.

상임위의 선심예산 경쟁적으로 끼워 넣기

국회 15개 상임위원회가 2012년 정부 예산안 예비심사에서 모두 11조4923억원의 예산을 증액한 것으로 11월 21일 집계됐다. 당초 8조원으로 추산되던 증액규모가 11조원을 넘은 것은 예산 외에 정부기금에서 보이지 않게 늘린 액수가 3조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번 증액 규모는 지난해 12개 상임위 예비심사 때 증액된 3조3420억원의 3.4배에 달한다. 이는 과거 '10년간’ 최대의 증액인 것이다.

이 같은 경쟁적 증액은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간에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한·미FTA 처리 이후 막힌 여야 관계의 물꼬를 예산을 통해 풀고자 한다. 따라서 민주당의 복지 예산 증액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 핑계를 댈 필요도 없이, 한나라당도 이미 복지경쟁에 뛰어든 지 오래다. 복지예산 증액을 통해 청와대와 정책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는 기류가 한나라당에 형성되어 있다.

한나라당의 예산을 통한 국면 전환 시도는 지난달 초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에서 본격화됐다. “정책노선 변경과 그에 따른 예산 반영”이 쇄신과 개혁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취업활동수당 신설, 근로장려세제(EITC) 강화, 대학등록금 및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 등의 예산증액을 강조했다. '민본21’을 비롯한 쇄신파가 복지예산 증액에 공감을 표하고, 홍준표 대표도 '준(準)수정예산’에 버금가는 민생예산을 강조하면서 홍대표, 친박계, 쇄신파 3자가 사실상 민생예산 증액 연합전선을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한·미 FTA 발효에 따른 취약산업 보호 명목으로 추가적인 예산증액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보육예산과 지역예산 등이 추가적으로 더해질 수도 있다

선심성 예산 증액 막을 장치 마련해야

2012년 분야별 재원배분을 보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보건·복지·노동부문이다. 전체 지출예산 326.1조원 대비 28.2%인 92조원이 배정되어 있다. 전년대비 증가율도 6.4%로 총예산 증가율인 5.5%보다 높다. 교육부문 예산은 45.1조원이며 전체 예산의 13.8%를 차지하고 있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22.6조원으로 전년(24.4조원) 대비 유일하게 7.3% '감소’하였다. 보건·복지·노동 부문의 총지출예산이 교육과 국방 지출예산의 합보다 크고 사회간접자본 예산이 감소되었다는 점에서, 2012년 예산은 '복지’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건·복지·노동 예산 이외에 '교육부문과 문화·체육 ·관광부문’을 포함할 경우 '광의’의 복지관련 예산은 지출예산의 43.4%를 차지한다.

상임위의 요구대로 12조원을 증액하려면 그 만큼 다른 예산을 삭감하거나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전자는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세금을 더 걷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당장 세제(稅制)를 개편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조달할 가능성이 높다. 적자재정 편성은 재정건전성을 포기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무분별하게 예산을 증액하는 것을 막으려면, 미국·유럽의 의회처럼 각 상임위별 증액 한도를 미리 정해주는 '예산 상한제(budget ceiling)’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증액 한도를 초과하면 다른 사업에서 감액해 재원을 마련하는 '총액자율 배분제’ 원칙을 정착시켜야 한다. 또한 예산이 증액된 경우, 그 증액이 타당했음을 '사후적으로’ 성과 관리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www.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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