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계발, 스킨십 일석이조....전문가+친근이미지 목표

천정배 의원(전 법무부 장관)이 '강연 정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장관 시절이나 참여정부 초기의 학자풍이던 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타협이 없는 원칙론자 이미지에 언론 노출이나 대중적 접촉을 별로 즐기지 않던 그로서는 부쩍 사람들 앞에 나서는 셈이다.

물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은 정치인에겐 좋은 현상이자 가장 중대한 덕목이다. 하지만 그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 왜 하필이면 강연정치냐는 소리도 있다.

사실 '강연 정치'라는 것은 우리 정치에서는 낮설다. 지지율 향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도 많다.

최근 강연 정치에 나섰다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한 대표적 케이스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정 전 총장은 강연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한 30군데 돌면 어렵잖게 지지율이 5%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 봤다는 것이다. 5%를 일단 넘기면 그 다음은 수월하다는 것이 여의도의 정설. 이런 5% 넘기기 방안으로 강연을 주무기로 내놨다는 것은 대선 가도의 절대치를 강연에 걸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러나 4월 동아일보 조사에서 강연에 열올렸던 정 전 총장은 지지율 0.5%로 처참히 무너졌다. 그리고 곧 정가를 떠났다.

그런 모습을 익히 알고 있는 천 의원이 강연정치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래서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천 의원은 과연 무슨 생각인 것일까?

◆단순 강연이 아닌 비전 제시형으로,정책 전문가로 위상 강화

강연형 정치하면 재미없다는 편견(?)을 가진 이가 의외로 많다. 의미없이 나열형 말하기로 간다는 고정관념이 있고 내용이 지루하고 시의성이 없었던 관례 때문이다.

천 의원은 이 부분을 과감히 개혁하기로 마음먹고 강연 내지 행사지원을 하고 있다.우선 철저히 대중들의 눈길을 끌 만한 이슈나 논란거리가 되는 문제들을 들고 나오고 있다. 지난 봄에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반FTA 토론회는 천 의원이 사실상 뒤에서 민 행사다. 여기에 여름 들어서 본인이 직접 주연으로 나서는 각종 강연을 줄지어 기획하면서 본격적인 강연정치를 개시했다. 21일로 이미 희망정치 강연은 2회째를 맞이했고, 앞으로도 연이어 강연을 계속할 계획이다.

이슈가 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현재 정가에서 논란이 될 만한 부분에 거침없는 언사를 내놓고 있다. 21일 강연 내용은 "부패 가득한 토건 국가로는 경제 성장을 못 이룬다"는 일갈로 요약된다. 이는 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정면으로 노리는 발언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천 의원의 기존 스타일대로 논평의 방식으로 공격했다면 상당히 논란이 됐을지 모를 문제다. 하지만 정책 토론회라는 '거름망'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순화된 표현과 논리적 배경을 갖추고 '송출'되고 있다.

즉, 원칙론적,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천 의원의 단점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적절하게 설명이 따라붙을 수 밖에 없는 강연의 형태로 커버하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강연 내용이 '빛 좋은 개살구'인 것도 아니다. 이미 천 의원은 '민생정치를 연구하는 의원 모임'의 중요인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스터디 그룹으로까지 불리는 민생모에서 탄탄하게 논리구성을 해온 지난 세월이 대선 가도에서 '에너지원'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슈에 대한 적절한 선점과 정책 전문성 어필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같이 만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기의 강연 정치의 단점을 극복하면서도 천 의원의 고유 색깔이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이슈 메이커 문국현과 합동, 흥행 요소 강화

여기서 천 의원은 중대한 흥행 요소를 하나 더 넣고 있다. 바로 범여권의 뜨거운 감자 문국현 유한킴벌리 회장과 손을 잡은 것이다. 이미 지난 2월부터 범여권 대선주자로 진출한다 안 한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문 회장은 이제 민주신당 컷오프 불참선언으로 다시금 주목을 끌고있다. 즉 범여권이 아무도 끌어들이지 못한 독불장군 문국현 회장을 천 의원이 강연에 파트너로 끌어들여 시리즈로 강연을 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둘 사이의 끈끈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궁금해하는 기자의 질문에 천 의원의 의원실에서는 이 대목에 대해 "문 회장과 천 의원은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다녀올 정도"라며 친밀도를 확인해 줬다.당분간 둘 사이의 협력 구도가 깨질 가능성은 약하다는 얘기로 연결되는 요소다.

문 회장이 안고 있는 시민사회의 지지라는 요소를 합동작전으로 천 의원이 어느 정도 공유 내지는 흡수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보인다.

◆스킨십을 강화해라

이렇게 강연을 활성화해도 일반 대중과 맞댈 수 없는 사각지대는 있게 마련이다. 이런 부분은 어떻게 커버할까? 그 답은 부지런한 지방순회다.

천 의원의 어느 주변 인사는 대선 출마 선언 직전에 "천 의원이 대중 연설에 약해 걱정"이라는 우려를 털어놓은 바 있다. 이런 단점은 하루 아침에 극복되는 게 아니라는 게 천 의원 주변의 고민거리였던 셈이다.

결국 연습게임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부분에서 답으로 나온 게 지방순회라는 방식이다. 이는 또 범여권이 민주신당으로 (일단은) 통합되어 나가는 시기인 점과도 맞물려 더 필요하게 됐다. 천 의원으로서는 대선 주자로서 대중 앞에 서야 하는 장기과제를 잠시 미뤄놓고 당 출범이라는 작은 주제를 놓고 지방에서 먼저 연습을 해 보는 셈이다.

혹시 잘 하지 못하더라도 부담이 없고, 더욱이 지방을 돌며 널리 스킨십을 한다는 장점까지 어느 하나 천 의원에게는 버릴 요소가 없는 호재다. 이런 기회를 천 의원과 주변에서는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천 의원실에 확인한 결과, "공식 일정표에 반영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는 정도로 빽빽하게 일정을 소화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 얼굴 알리기에 나서도 있다.

◆컷오프까지는 아직 여유, 타후보 때리기 대신 느긋한 행보

물론 천 의원으로서도 아직 본격적으로 탄력이 붙지 않은 지지율을 보면서 지방 일정에 각종 강연, 행사를 소화하는 게 마냥 속편하지만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범여권 대통합이 아직 오리무중인 상황이고, 더욱이 컷오프는 9월 중에나 가능하다. 그나마 할지 말지 회의적인 시각까지 나오고 있는 터이다.

이러니 다소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라도, 스킨십 강화에 차라리 시간을 투입하자는 정책은 그래서 유효해 보인다. 불분명한 상황에 범여권의 모든 대선예비주자를 '잠재적인 적'으로 놓고 한나라당식으로 '무한 검증공방'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인식 하에 천 의원은 타후보 공격은 지양하고 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 쪽으로 필요 이상 386 지지론이 불거지자 "386 패거리 정치"라고 일갈, 우상호 의원을 제외한 386들의 손 캠프 합류를 막은 게 거의 유일한 타후보 비방(?)일 정도다.

결국 천 의원의 강연정치,지방순회 행보는 범여권 대선 후보 예비경선, 이른바 컷오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가을바람이 날 무렵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컷오프에서 천 의원이 부지런히 화장(메이크업)해 온 '정책전문가+친근이미지'가 본격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다른 범여권 정치인들이 한나라당 주자 때리기나 손학규 끌어 내리기 외에 별다른 '자기 계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대비되어 돋보이는 현상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투자가 성공한다면, 천 의원은 강연정치로 재미를 본 첫 정치사례로 한국정치사에 기록될 법 하다. 과연 천 의원의 색다른 시도가 가깝게는 컷오프 국면, 멀리는 12월 대선국면에서 어떤 폭발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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