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jpg

[투데이코리아=임요산 칼럼]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전 의원은 책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작심하고 씹었다.

박근혜 신랄 비판 책 출간

“박 전 대표는 ‘제가 꼭 말을 해야 아시나요’라고 한다. 선문답하듯 한마디씩 던지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박근혜는 늘 짧게 답한다. 국민들은 처음에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쳤다. 어찌 보면 말 배우는 어린이들이 흔히 쓰는 ‘베이비 토크’와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한나라당 안팎을 통틀어 이처럼 강도 높은 박근혜 비판은 없을 것이다. 비판이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전 의원의 감정이 섞인 박근혜 평가는 인신공격이나 다름없다.

“저렇게까지 대통령이 되고 싶을까 싶을 정도로 권력의지는 대단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권력이란 매우 자연스럽고 몸에 맞는 맞춤옷 같은 것.”
“박근혜에게 청와대는 '나의 집'이었고, 대통령은 '가업(家業)'이었다.”
“인문학적인 콘텐츠가 부족했다.”

정적(政敵)에 대해서도 차마 하기 어려운 노골적인 말들이다. 욕설 없는 욕이다. 전 의원의 의지는 분명하게 읽힌다. 이번 총선 공천에서 나를 탈락시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예비 선전포고로 들린다.

전 의원은 2004년 박근혜 당 대표 시절 대변인으로 영입되어 박 전 대표의 혀가 되었고, 비례대표 의원직을 얻었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을 향해 독설을 쏟아내던 혀가 지금은 정반대로 방향을 바꾸었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이 상황을 대변한다.

‘모 아니면 도’, 공천 노린 도박?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전 의원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두 사람은 갈라섰지만 결별 원인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갈등은 전 의원이 2006년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직에 도전하면서 싹텄다. 전 의원은 여성 몫으로 배당되는 최고위원 자리를 얻으라는 친박의 중론을 거스르고 득표순에 의한 최고위원이 되려고 뛰었다. 이 때문에 친박 표가 분산되어 친박 몫 최고위원 자리 하나가 줄게 되었다. 이 일 이전에도 박 대표의 신임이 이혜훈, 한선교 의원 등 새 측근에게로 옮겨갔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해 11월 CBS는 “전여옥 의원이 박근혜 진영에서 밀려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즉각 전 의원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다음날 “객관적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일방적인 평가나 인격을 훼손할 수 있는 심정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이 있었던 점을 인정한다”며 사과했다. 전 의원은 여기에 그치에 않고 명예훼손 소송을 냈으나 이듬해 3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결정이 났다.

그 후 세상이 아는 대로 전 의원은 경선 막바지 국면에서 이명박 후보 쪽으로 넘어갔다. 전 의원은 이번 책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에 대해 “나라를 위해서 그녀가 과연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미 정해졌다. ‘No’였다.”라고 적었다.
한술 더 떠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는 안 되는 후보”라고까지 폄하했다. 물론 이 평가는 올해 대선 국면에서도 유효할 것이다. 전 의원은 책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이 나라 첫 여성 대통령이 되는 것이 과연 이 시대에 맞는 시대정신인가”라고 묻고 있다.

‘최강 독설가’ 대선에 영향 미칠까
옛말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전 의원의 박근혜 비판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1년8개월 동안 대변인으로서 가까운 거리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던 만큼 소소하지만 박 위원장의 이미지를 깎기에는 충분한 소재를 많이 갖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책에 나오는 이런 대목들이다.

“당 사람들이 대변인은 대표와 늘 차를 함께 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그런가 보다 하면서 박 대표의 승용차에 탔다. 그런데 그날로 비서관이 내게 말했다. ‘딴 차 타고 따라오시라’고. 나는 그때 알았다. 그녀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2005년 대구 행사에서 박 대표 바로 뒷줄에 앉아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김태환, 이해봉 의원이 내게 말했다. ‘아니 전 대변인, 뭐하고 있나? 대표님 머리 씌워드려야지.’ 순간 나는 당황했다. …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자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박 대표는 한마디도, 미동도 없었다.”

비대위 체제에서 전 의원이 지역구 공천을 받을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돈봉투 전당대회’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몽준 전 대표가 큰 힘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전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면 박 위원장을 더 증오할 수 있는 명분을 잡게 된다.

전 의원이 2007년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탈락하자 이회창 캠프로 가 MB를 공격한 이상돈 현 한나라당 비대위원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전 의원의 입담은 그와 비교 되지 않을 정도로 극강(極强)하다. 최강의 저격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박 위원장, 그리고 비대위가 고민좀 하게 되었다. 죽여도, 살려도 골칫거리니.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