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경진 광주지검 형사 제3부장검사

중국인은 무술영화에 환호하는가?

▲김경진 검사

20년전 홍콩영화가 한참 유행일 때 그 중 상당수가 무협영화였다. 최근 중국 본토에서 제작된 영화의 상당수도 무협영화이다.

용호문, 신용문객잔, 칠검, 영웅, 의천도룡기, 쿵푸 허슬, 천룡팔부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무협영화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며, 이소룡, 이연걸과 같은 세계적 배우들이 탄생하기도 하였고, 황비홍이나 방세옥과 같은 주인공들이 실존 인물인 것처럼 느껴지게도 한다.

그 뿐인가 학창시절 시험 직전에 출간된 무협소설 속편은 우리를 얼마나 괴롭게 했던가.

중국 하남성 숭산에 가면 소림사(少林寺)가 있다. 달마대사를 통해 서방 인도로부터 동방 중국으로 불법(佛法)이 전파된 아주 중요한 불교사적지이다. 달마대사가 십년 면벽수도를 통해 견성성불의 과정을 체험적으로 보여주고, 혜가 대사에게 부처님의 의발을 전한 불교의 성지 중 성지이다.

그런데 정작 소림사에 가보면 달마대사의 흔적 대신, 수련생이 수만명에 달하는 소림사 부속 무술학원과 이들의 무술 쇼를 만나게 된다. 왜 중국인들로 하여금 이렇게 무술에 열중하게 만들었을 까. 종교성지 마저 무술 수련관으로 바뀌게 된 것은 무슨 연유일까.

중국은 영토가 유달리 넓다. 말 그대로 광활(廣闊)하다. 남한 영토의 약 100배에 달한다. 땅이 넓다보니 사람도 많다. 지금의 중국인구를 약15억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확한 통계가 아니라 추정이다. 워낙 덩치가 크다보니 국가에서 정확한 통계작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땅이 워낙 넓고 인구가 많다보니 역사적으로 살인을 당해도, 강도를 당해도 범인이 멀리 도망가 버리면 국가에서 범인을 잡아 주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시골오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국가권력으로부터 보호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 각자가 자기 실력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생존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또한 대부분의 무협영화 스토리가 그렇듯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간 원수를 찾아 복수를 하려면 스스로 무술의 고수가 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형법적으로 보면 공권력에 의한 처벌보다 사력구제와 정당방위가 횡횡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무술이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기 되고, 본능적으로 무술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래서 안개비연가와 같이 애정 드라마에도, 부드럽게 사랑을 속삭이던 주인공들이 어느 순간에 2-3미터를 뛰어올라 시비를 거는 깡패들과 무술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거부감 없이 튀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문화, 생활의 측면 뿐만 아니라 국가 운영의 관점에서도 넓은 국토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적은 국토에 사는 우리로서는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대국을 부러워하지만, 중국을 보면 그같은 부러움이 반드시 옳지는 않은 것 같다. 국토가 넓기 때문에 많은 천연자원을 보유하는 이점도 있지만, 반면 일사불란하고 효율적인 정책수립 및 집행에 어렵게 된다.

국토가 넓으니, 국가 발전계획을 수립 집행하는 데 고려해야할 변수가 많고, 또한 어떠한 국가시책을 수립해도 지방 하부조직까지 정책 내용 및 의지가 전달되어 실제 집행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지방관리들은 “상부에서 정책이 있으면, 하부에는 대책이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지방정부 간부의 뇌물수수가 밝혀지면 가차 없이 사형을 시켜버리는데, 이는 부패방지 차원도 있지만 지방정권에 대한 군기잡기라는 목적도 있다.

또한 영토가 넓은 다민족(多民族)국가 이다 보니 각 지역의 독립운동(獨立運動)으로 인한 중국의 국가분열을 방지하는 것이 중국지도부의 최고의 고민거리 중 하나이다.

티벳, 신강(新彊), 내몽고 등 청(淸) 이후에 중국령으로 흡수된 지역이 현 국토의 1/3 정도 되는데, 이 지역의 원주민들은 인종적으로도 한족이 아니기 때문에 반 중국 독립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어, 중국 지도부에서는 어떻게든 이 문제가 돌출되지 않게 현 영토를 보존할 까가 국가운영의 중요 포인트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소수민족 언어 말살, 한족(漢族) 집단이주,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이 문제를 돌출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중국 내에서는 절대로 특정 소수민족만의, 특정 지역 출신만의 공식 모임, 운동회를 허용하지 않는다. 독립운동을 극히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소련연방의 해체과정을 직접 목격한 이후에는 더더욱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분열가능성 때문에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전전 긍긍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90년대 우리 관광객들은 심양 공항에서 내려 백두산까지 버스를 대절해서 가면서 버스에 “만주 고토 수복”이라는 플랑카드를 크게 붙이고 다녔으니, 이것이 중국 공산당을 자극해서 동북공정을 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작은 국가가 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북유럽 국가들이다. 중소국인 이 나라들은 세계 최고의 1인당 국민소득을 자랑하고 있다. 1위 룩셈부루그 65,000달러, 2위 노르웨이 6만 달러, 3위 스위스, 5위 덴마크 47,000달러, 6위 아이슬란드 46,000달러, 9위 스웨덴 41,000달러, 10위 아일랜드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도시국가인 상가포르와 홍콩이 27,000달러 내외로 우리보다 높다. 국가가 적다는 것은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가 비교적 쉽고, 효율적으로 국가발전 계획수립과 집행이 가능해진다. 좁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잘 알다보니 단정하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어 자연스럽게 신뢰사회가 정착될 수 있게 된다.

인류의 미래가 과거처럼 전쟁과 약탈을 기반으로 한 생산시스템이 아닌 한, 적은국가가 효율적이고 아름다운 국가가 될 것이다. 남북통일의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대한민국의 국력이 급격하게 커나가고 있고, 발해와 고구려의 웅대했던 역사드라마들이 안방극장에 자주 등장하는 이 즈음, 국민모두가 “크고 웅장한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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