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출입국 등의 허술한 대응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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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체류위해 지문등록 하는 외국인 사진ⓒ뉴시스


[투데이코리아=서소영 기자] 중국에서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명수배된 인물이 한국에 들어와 손쉽게 귀화한 뒤 범죄행각을 벌여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단속 책임을 맡은 법무부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의 허술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26일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조선족 L(30)씨는 2003년 6월 중국 산시성 시안시 모 안마시술소에서 패싸움을 벌이던 중 맥주병으로 상대방을 내리쳐 숨지게 한 뒤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중국 공안의 3년여에 걸친 추적에 불안감을 느낀 L씨는 도피를 결심, 2006년 5월께 한국행 배에 올랐다. 한국행을 택한 것은 15년전 한국 남성과 재혼해 귀화한 어머니 때문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L씨는 중국 내 브로커로부터 넘겨받은 김모씨 명의 가짜여권을 제시했다. 김씨의 인적사항과 친지방문 이유까지 몽땅 외운 L씨는 비자발급 심사와 공항 검색을 무사히 통과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신분세탁이 이뤄졌다.

L씨가 2007년 9월께 유전자분석 감정서를 비롯해 신원진술서, 귀화허가신청서, 귀화진술서, 중국거민신분증 등 가짜 서류를 법무부 귀화신청서류에 끼워 넣어 제출했지만 법무부는 별다른 제재 없이 귀화를 허가했다.

특히 귀화진술서에 '이미 귀화한 어머니가 그리워 귀화를 결심하게 됐다'는 거짓말을 적어 넣었지만 담당자들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L씨는 법무부가 간단한 서류를 접수받은 뒤 5~10분간 짧은 인터뷰만 거치면 귀화를 허가한다는 점을 노렸다. 위조된 서류를 제출해도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도 악용했다.

귀화 후 L씨는 국내에서 공사장 이권 사업에 개입해 중국인 20여명과 함께 폭력을 행사하는가하면 자신의 차를 들이받은 운전자를 야구방망이로 때리기까지 했다. 국내 전과만 6건에 달했다.

L씨가 주류도매업을 하며 범행을 거듭하던 중 경찰은 중국 공안으로부터 L씨에 대한 자료를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L씨는 지난 20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친구집에서 덜미를 잡혔다.

현재 경찰은 L씨에 대해 공전자기록불실기재 혐의를 적용해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L씨가 위조여권으로 입국한 뒤 호적을 취득하고 특별한 직업 없이 전전했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나 사법기관에 의해 한번도 단속되지 않았다"며 "대담하게 신분을 세탁한 중국인 살인범이 한국을 도피처로 삼고 있음에도 관련기관은 이를 발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비슷한 유형의 중국 출신 수배자들이 국내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는 첩보를 바탕으로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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