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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이나영 기자]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펄펄 날던, 1990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 경기 62점을 몰아쳤던 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흰머리에 배도 좀 나왔다.

슛은 잘 안 날아가고, 공은 자꾸 놓치고, 상대는 따라가지 못했다. 무득점 굴욕까지 당했다. '농구대통령', '농구 9단'이라고 불리는 한국 농구의 대명사 허재(47) KCC 감독 이야기다.

허 감독은 1990년대 중반 농구대잔치 최고 빅카드로 꼽혔던 기아자동차와 연세대의 대결을 재연한 이벤트에서 강동희 동부 감독, 김유택 중앙대 감독과 '허·동·택 트리오'를 다시 결성했지만 세월의 흐름을 막지 못했다.

3점슛은 안 날아갔고 황금콤비였던 강동희, 김유택의 패스도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역에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상대 우지원을 따라다니기는 매우 힘겨웠다. 결국 경기 중반에 기아자동차에서 함께 했던 후배 김영만(40)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벤치에 앉았다.

허 감독은 샤워를 마치고 체육관을 빠져나가며 "나 완전히 맛 갔어"라며 웃었다. 함께 뛴 동료들도 허 감독을 비난(?)했다.

기아자동차~대표팀에서 한솥밥을 오래 먹어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 수 있다는 강 감독은 "오늘같이 경기하면 허·동·택에서 빼 버려야지"라면서 "정말 힘들긴 힘들었다"며 예전 같지 않음을 전했다.

허 감독과 강 감독은 농구계의 소문난 주당이다. 현역시절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강 감독은 '전날 음주를 했느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며 "리듬이 끊어지면 안 된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꾸준해야 한다"면서 음주 사실을 시인했다. 땀도 비 오듯이 흘렸다.

허 감독도 전날 가볍게 한 잔을 했다. 허 감독은 당초 올스타전 기간에 미국 출장이 계획돼 있었다. 그러나 레전드 올스타로 뽑아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함께 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바꿔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하루 전날에 전격적으로 합류했다.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그때처럼 술 마시고 뛴 허재, 강동희. 이래서 레전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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