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최소, 바람 최대’ 노리고 시기 저울질…법륜, 시골의사 등 주변도 몸조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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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주간의 미국 일정을 마치고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투데이코리아=임요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때를 놓치고 있는 건가. 여야 모두에서 터진 ‘돈봉투’ 사건은 구태 정치에 넌더리내는 국민에게 안철수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안 원장은 이와 관련해 아무런 메시지를 남기지 못했다. 대신 연초부터 정치 참여와 대선 출마를 놓고 언론과 ‘스무고개’식 문답놀이를 반복했다. 최근에는 “신문을 보니까 다들 마음대로 웅성웅성하고 있는데, 나중에 지나면 뒤통수 안 맞은 적 있느냐”는 말로 언론보도를 비판했다. 언론과의 싸움은 풋내기 정치인들이 저지르는 실수다. 안 원장의 정치적 소양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열정, 고민” 등 모호한 화법으로 불씨 살려

안 원장은 1월 8일부터 2주간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 등을 만났다. 안 원장은 지난해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주식의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발표 당시에도 1500억 원대의 거액이었지만 그 후 주가가 급등해 3000억 원대로 커졌다. 그의 기부는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재단을 운영하는 빌 게이츠와의 만남은 안 원장의 자선재단 구상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안 원장은 출국장에서 정치 참여 시기와 방법을 묻는 기자들에게 “열정을 갖고 계속 어려운 일을 이겨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해석하기 어려운 대답이다. 그는 한술 더 떠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대선 출마 질문에 대해 “세월은 흐를 것”이라고 답했다.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가 안철수 화법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호한 답변을 놓고 이런저런 해석이 분출하자 안 원장은 ‘웅성웅성’, ‘뒤통수’ 등 그답지 않게 거친 언어로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따져보면 ‘웅성웅성’의 원인을 만든 사람은 모호한 화법으로 불씨를 살려가고 있는 안 원장 자신 아닌가.

‘검증 최소, 바람 최대’ 노리고 시기 저울질

안 원장이 여의도 아파트를 처분하고 주식을 기부한 행위는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신변 정리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잘 갖고 있던 집과 주식을 갑자기 털어버리게 된 것은 지난해 서울시장 출마 소동과 연관 짓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안 원장은 서울시장 출마를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했지만 그 소동이 계기가 되어 대권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당연히 따르는 통과의례로서 일부 언론이 그의 신상 털기에 들어갔다. 그 결과 드러난 다주택과 주식 등 그의 재산은 국민감정에 결코 흔쾌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법륜, 시골의사 등 주변도 몸조심 중

안 원장의 동지라는 승려 법륜과 ‘시골의사’ 박경철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법륜은 승려라 하나 조계종에 승적이 없고, 그의 친형은 남민전 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다. 법륜과의 관계는 안 원장을 이념적으로 불투명한 인물로 보이게 할 수 있다. 박경철은 원래 작전세력에 의한 허위 정보가 난무해 복마전과 다름없다는 주식사이트에서 ‘시골의사’란 필명을 날린 사람이다. 두 사람이 올해 해외에 장기체류할 계획인 것도 안 원장과 그 주변에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조직 없으면 시골 표 얻기 어려워

안 원장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더라도 여기에는 거품이 있다. 바람은 대도시에서나 통하지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가 고착된 소도시와 시골 지역에서는 불기 어렵다. 역대 대선에서는 유력한 정당 조직을 업지 않고 무소속이나 신생 정당의 후보로 나와서 성공한 경우는 없었다. 그렇다고 안 원장이 특정 정당에 합류한다면 기존 정치권을 뒤엎을 정치적 메시아가 되기를 바라는 국민일반의 기대와 배치된다. 안 원장의 모호한 화법과 ‘열정을 가진 고민’은 치밀한 전략이라기보다는 현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고육책으로 보인다.

그가 귀국길에서 “올해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올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건 주어지는 거지 내가 시기를 정하거나 택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은 솔직한 심경일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그에게 유리하게 흐르지만은 않는다. 그를 영입하려고 애쓰던 민주당은 민주통합당으로 변신한 뒤 정당지지도에서 한나라당을 크게 앞질렀다. 여기에 자만해 “안철수 없이도 대선에 이길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안 원장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했을 때처럼 지지편지를 들고 와야 된다는 모욕적인 말까지 나왔다.

그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소임을 다하면 저 같은 사람까지 정치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당이 과연 ‘소임’을 다 할 것 같은가? 안 원장이 ‘열정을 가진 고민’을 접겠다고 말할 때까지 그의 대선 출마는 예정된 일로 봐야 할 것이다. 아마도 4월 총선에서 패한 당이 그를 간절히 찾을 것이고 그 때가 ‘흐르는 세월’을 잡을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를 넘긴다면 대선 후보 등록이 임박한 시점에서의 선택이 남게 된다. 검증은 최소화 하면서 바람은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이다. 그러나 대개의 인간사가 그렇듯 그의 대권 공식도 착착 맞아 떨어지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결국에는 최종 국면에서 한나라당이냐, 민주당이냐, 아니면 주저앉느냐의 선택이 안 원장의 현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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