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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영 작가


[투데이코리아=임요산] 책 한 권이 있다. ‘문학과 혁명’.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저작이다. 1989년 한글 번역본이 나왔다. 책은 일찍 절판되었지만 번역자 두 명 중 한 명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소설가로 성장했다. 공지영이다.

일반적으로 번역은 원저서에 대해 번역자가 공감했기 때문에 이뤄진다. 공지영이 1963년생이라 하니 25,6세 때 트로츠키의 문학론에 경도되었던 모양이다. 트로츠키는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하고 멕시코로 망명했다가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되었다. 혁명의 재능 못지않게 문학적 재능을 가진 트로츠키의 문학론이 386세대 문학도에게는 패자의 미학(美學)으로서 인기가 있었을 법 하다.

유치한 발언 남발해 정신적 공해

공지영이 요즘 들어 시쳇말로 망가지고 있다. 그가 과거에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 했으며 성이 다른 세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이 굳이 알자고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 공공 영역인 언론과 저서를 통해 공공연히 밝힌 사실이다. 가정사를 스스로 들추며 화제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오락 프로그램에 나온 연예인들과 같은 수준의 자기노출이다. 그의 출세작이라는 ‘봉순이 언니’는 따지고 보면 어릴 적 집안 이야기라는 틀로 식모 봉순이 언니의 인격권을 침해한 작품이다. 공지영에게는 일찍부터 자기를 노출하는 성향이 내재해 있었던 것 같다.

사생활은 비난꺼리가 아니라고 접어두자. 문제는 공지영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자 공공 영역에서 의도적으로 벌이는 행태들이다. 공지영이 젊은 시절 몰입했던 트로츠키는 레닌처럼 조직력으로 혁명을 이끈 게 아니라 현란한 언어의 마력으로 민중을 끌어당겼다. 공지영도 혁명의 도구가 된 트위터를 통해 언어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선거마다 자신과 동일한 정치적 선택을 따르도록 유도하고, 이슈마다 얄팍하기는 해도 신랄한 트윗을 날리고 있다. ‘친하고 부지런한 지영씨’다.

그러나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진다고 했다. 실수가 없을 수 없다. 일등석 없는 항공노선에서 ‘일등석 아줌마’를 비난했고, 메고 다니는 백이 진보 작가답지 않게 명품 샤넬 같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부인했을 뿐 실물을 공개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자 “이상해, 후져!”라고 했다. 전여옥이 말한 ‘베이비 토크(baby talk)’가 바로 이런 것이다. 공공의 소음(騷音)이다.

정신적 성장을 거부한 386세대

대학생 시절 체제변혁을 꿈꾸던 386세대는 이제 사회 요소요소에 진출하여 골간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인 만큼 나라와 사회를 보는 눈이 성숙해졌어야 할 이들 중 아직도 철부지로 남아 있는 이들이 많다. 국회에서 툭하면 3단 고음을 지르면서도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자가 자칭 진보정당의 대표가 되었다. 사회의 중심을 잡는 추 역할을 해야 할 중견 재판관들이 ‘빅 엿’이니 ‘가카새끼’니 하며 저질 언어를 구사하며 저희들끼리 장단을 맞춘다. 방송의 광우병 보도에 선동당한 촛불시위대를 보며 PD는 작가에게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보여?”라며 흐믓해 했다.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처럼 스스로 성장을 거부한 사람들이다.

정계, 법조계, 문화계 곳곳에 포진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낸다는 경제이론은 인간 심성에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법복을 입고 피고 앞에서 거드름빼던 이들이 제 방에 돌아가서는 인터넷을 켜고 ‘나꼼수’를 보며 키득댄다. 사회의 목탁임을 자부하던 기자 사회에서도 기자 훈련은커녕 언론의 기능에 대한 이해조차 결락되어 있는 ‘나꼼수’의 ‘아니면 말고’식 특종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다. 사회가 갈수록 천박해지는 데는 이들 좌파 명망가, 정치인, 법관, 언론의 기여가 참으로 크다. 이들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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