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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정렬 판사, '부러진 화살' 한 장면, 그리고 서기호 판사

[투데이코리아=임요산 칼럼] ‘가카에게 빅 엿’, ‘가카새끼 짬뽕’. 중견 판사들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 저질 유행어를 내뱉는 일은 왜 일어날까.

사회적 지위만으로는 허전한 법관들

판사라고 세상사에 대해 발언권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게 사회적 합의다. 특정 판사가 재판 밖의 영역에서 법리 이외의 논리로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공공연히 표방할 경우 재판의 중립성과 판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최근 사법부의 불공정한 재판을 주제로 한 영화 ‘부러진 화살’에 관객이 몰리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감이 국민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 영화는 판사와 사학재단 등 기득권 세력의 짬짜미를 비판해 일견 좌파적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해 12월18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가카새끼 짬뽕’이라고 야유한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가 영화의 소재가 된 재판에 관여했다. 그 역시 기득권 세력으로 매도당한 셈이다. 좌우 판별이 모호해진다. 정치적으로는 좌, 사회적으로는 우. 이것이 튀는 판사들의 이념적 정체성 아닐까.

386세대 정치적 발언 욕망 강해

이들은 이른바 ‘386세대’에 속하지만 대학 시절 운동권 학생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한 고시생 출신이다. 자리가 안정되고 법원 조직 내에서 말발이 서는 위치에 이르자 왕따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적 존경과 일반 공무원에 비해 여유 있는 수입, 퇴직 후의 전관예우, 등 특권의 욕조(浴槽)에서 심신의 쾌락을 누린다. 그러나 이는 법조(法曹)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사회적으로는 단순한 법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 재판정에 갈 일이 없는 국민 다수에게는 무명의 존재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들이 법을 공부하며 얻은 면도칼 논리와 지식을 법정 안에 가두기에는 입이 너무도 간지럽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판사들이 사법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면서 연판장을 돌린 일도 그런 예다. 국가 간 법률 분쟁은 유엔 산하 국제사법기구가 다루자는 게 국제사회의 합의다. 사법주권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앞세워 FTA 반대 투쟁에 가담하려는 속뜻을 국민들도 안다. 판사의 출신지역을 따지는 관행이 왜 생겼을까.

‘고시생 따돌림’ 보상심리 측면도

지난해 12월 7일 ‘가카에게 빅 엿’을 날린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는 지난 10년간 근무평정에서 평균 최하위급 평가를 받았다. 2010년의 한 재판에서는 주문 10자에 이유 72자, 모두 82자로 트위터 길이 140자보다도 짧은 판결문을 남겼다. ‘가카새끼 짬뽕’ 사진을 올린 이 판사는 재판을 지연시키기로 지역사회에서 원성이 자자하다고 한다. 그는 사법부의 사조직으로 노무현 정부 때 기승을 부린 ‘우리법연구회’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의 낮은 근무평정과 영화 ‘부러진 화살’이 사회의 도마 위에 오르자 변명하느라 안간 힘을 썼다. 비리가 드러날 경우 대체로 우파 인사들은 거짓말부터 하고 보고, 좌파 인사들은 궤변(詭辯)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서 판사는 자신의 근무평가를 공개했고, 재임용에서 탈락하면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했다. 이 판사는 법원조직법을 어기고 관련 재판의 합의 내용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렸다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일벌백계로 사법 신뢰 회복해야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을 감싼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물러나고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하자 사법부 분위기 쇄신에 대한 기대가 컸다. 지난해 11월22일 이명박 대통령을 “뼛속까지 친미”라고 야유한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에 대해 솜방망이 경고에 그침으로써 대법원장이 ‘다음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일었다. 대법원은 10일 ‘빅 엿’ 서 판사를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이로써 양 대법원장에 대한 우려가 일부나마 해소되었다. 앞으로 분수를 모르고 설치는 여타 일탈 판사들에 대해서도 중징계가 약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영영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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