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국희도 칼럼] 운전면허증을 따갖고 온 딸아이에게 도로주행 연습을 시켜줄 때의 일이다.
초보운전인 만큼 이 도로에서는 통상적으로 어느 차로를 타고 운행하는 게 편안한지, 좌회전을 하려고 할 때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차선을 바꾸는 게 안전한지, 신호등 앞에서 정차할 때 앞차의 어디가 보이는 정도로 유지하면 적당한 차간 거리가 되는지 등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딸아이가 ‘앞에 외제차가 나타났다!’면서 갑자기 슬금슬금 차속도를 늦추었다. 운전면허학원 강사로부터 외제차를 보면 무조건 피하라는 얘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는 것이다.
초보운전자가 처음 도로로 나갔을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첫번째 주의사항이 신호등도, 차간거리도, 속도제한도 아닌, 그저 ‘외제차가 보이면 무조건 피하라’였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다. 차량 추돌사고 때 비싼 외제차와 접촉사고가 나면 자기 잘못이 없더라도 바가지를 쓰게 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수입차 가격의 거품 등을 빼기 위한 조사에 착수해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MBK), BMW코리아, 아우디-폴크스바겐 코리아, 한국토요타 등을 서면조사했다. 공정위는 4개 수입법인의 신차 가격과 가격 결정 과정, 국내외의 차량 및 부품 가격 차이, 딜러망 등 유통 구조 전반을 서명조사한 후 관계사와 수입차 딜러 등을 상대로 현장조사도 벌일 계획이다.

이번 조사는 수입차업체의 턱없이 비싼 차값, 엄청난 바가지 수리비 등 만성적인 불공정 거래 관행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누적된 데 따른 것이다.

국내 수입차 소비자들은 지난해 7월 발효된 한·유럽연합(EU) FTA로 인해 유럽산 자동차의 국내 판매 가격이 상당히 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가격 인하 효과는커녕 일부 업체는 되레 가격을 올리기까지 했다.

게다가 턱없이 비싼 부품값과 수리비도 한국의 승용차문화를 왜곡시키는 문제이기도 하다.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에 따르면 수입차의 평균 수리비는 1456만원으로 국산차(275만원)의 5.3배에 달한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국내 수입차 등록대수는 59만6280대로,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1837만대)의 3%를 웃돌고 있다. 지난해에만 신규 등록대수가 10만5037대에 달할 정도로 수입차는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입차의 비싼 수리비는 수입차 운전자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잘못 없이 피해를 당한 상대 운전자에게도 큰 부담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자동차 사고가 나면 가해 차량의 책임을 100% 인정하는 사례는 드물고, 대개의 경우 피해 차량과 가해 차량의 책임을 일정 비율로 나눈다.

예를 들어 국산차 운전자 A씨의 책임이 30%, 수입차 운전자 B씨의 책임이 70%로 나오면 A씨는 과실 정도가 적은 데도 상대차량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수리비를 내야 한다. 때문에 보험료도 크게 할증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비싼 수입차 가격과 부품 가격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이뿐 아니다. 또 외제차의 가격 인상은 비슷한 배기량과 성능을 갖고 있는 국산차 가격 인상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가격을 더 올릴 요인이 없는데도 수입차와의 가격 경쟁에 있어서 ‘싼게 비지떡은 아닐까’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각종 옵션을 붙여서 가격을 올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등 국내 승용차 시장 전반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앞서 지적한 바 대로 수입차 수리비 횡포를 국산차 운전자들까지 떠안는 격이 됨에 따라 국내 자동차 보험료의 가파른 인상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 자명하다.

공정위와 소비자단체의 수입차값, 부품값의 거품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수시로 조사가 이뤄졌고, 그에 대해 지금과 똑같은 비판도 있어 왔다. 똑같은 기종의 수입차가 미국이나 일본에서의 가격에 비해 2배가 넘는다는 조사도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런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입차 업체들과 딜러들은 국내 소비자들의 고급 외제차 선호 심리에 따른 고가 마케팅 전략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고 시장에서는 아무 문제없이 먹혀 들어갔다.

이번 조사를 통해 계기로 수입차 업계의 불공정 거래 관행이 뿌리뽑혀질지, 그래서 수입차시장, 더 나아가 국내 자동차 시장의 가격 왜곡 현상을 과연 어느 정도까지 바로잡을 수 있을지, 서민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눈을 뜨고 지켜볼 일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