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본다 하여 화제가 됐던 드라마 '웨스트윙'을 보면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많다. 꾀로 정적을 실각시키거나 야당을 물먹이는 내용도 있기는 하지만, 바틀렛 대통령을 보좌하는 백악관 참모진이 웨스트윙(백악관의 정치기능이 집적되어 있는 곳)의 균형을 잡아 가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또 '포용력'이 드라마 전반을 관통한다.

그 중 대표적인 에피소드 하나. 백악관 공보부국장 샘은 교육정책을 토론하는 1대 1 TV 토론에 참석한다. 상대방은 처음 TV에 출연하는 미모의 금발 공화당원 에인슬리 헤이스다. '초짜'라고 상대방을 얕본 샘은, 그러나, 에인슬리에게 호되게 당한다.

충격적인 일은 그 다음에 벌어지는데, 바로 백악관이 에인슬리를 자신들의 '싱크탱크'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정적임에도 능력을 인정해 에인슬리를 끌어오는 장면은 인재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정치색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바틀렛 행정부의 오픈 마인드를 보여준다.

#2.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나라이자,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던 몽고제국의 기틀을 놓은 이들은 정통 몽고인도 있었지만 이민족도 많았다. 그 중 몽고 제국의 기틀을 놓은 이로 평가받는 이는 야율초재라는 이다. 야율초재는 재상으로 등용돼 몽고에 부와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칸이 농경지의 중요성을 모르고 농부들을 내쫓고 목초지를 만들려고 하자 칸을 설득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그는 몽고족이 아닌 몽고의 숙적 금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던 이였다. 말하자면 한때 몽고군과 치열하게 싸우던 선봉에 서 있던 '브레인'이었던 셈이다. 이런 전력이 있기에 야율초재는 금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히자 자결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몽고의 설득으로 다시 출사하여 정책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나갔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동유럽 일부까지 치달았던 몽고의 세력권은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가 초입부터 삐거덕거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치열한 대결 끝에 한나라당 대선후보 자격을 획득한 이 전 시장은 '탕평 인사'로 양쪽 캠프간 화합을 도모, 대선 승리를 일궈 '잃어버린 10년'을 보상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은 기대와 달리 이런 탕평책을 제대로 행하지 못했다. 이 전 시장 본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참모들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의 가신 중 일부 인사들은 당사에 대통령 후보 참모 자격으로 입성하면서 '점령군'처럼 굴었다 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당사 내의 좋은 자리를 콕 찍어 저 집무실을 내게 달라했느니 말았느니 하는 내용은 듣기에도 유치하다.

이런 참모들이 대다수라면, 논공행상을 기대할 것은 당연하고, 그러다 보니 다른 인재풀(Pool)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쓸 것은 요원하다. 더욱이 얼마 전까지 피튀기게 싸웠던 박근혜 라인의 사람을 발탁해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 캠프측 일부 인사들의 좁은 사고관을 보면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에서 보이는 통 큰 결단력과 넓은 포용력은 찾을 수 없다.

문제는 박근혜 캠프측 인사들에게도 있다. 이 캠프가 탕평인사를 하지 않는다 하여 지리산 워크숍에 불과 몇 사람만 나타난 것도 모양새가 우습거니와, 경선 승복의 미덕을 보인 자신들의 주군 박 전 대표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일이다. 아울러, 자신들이 탕평인사를 할 만큼 전문성이나 덕을 갖추지 못해 발탁되지 못하는 건 혹시 아닌지, 반성하고 수신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박 캠프가 이 캠프를 치열한 검증 네거티브로 괴롭힌 건 누구나 안다. 검증능력은 수준급임이 검증된 셈이다. 그런데, 혹시나 튼튼한 정책 능력은 없이 검증 능력만 발달했던 건 아닌가? 그래서 당내 경선 후 승자측이 패자측 핵심인사들을 탐내어 삼고초려하지 않고 무시당하는 건 아닐까?

요는 이명박 캠프 인사들이나 박근혜 라인 인사들이나, 대략 깊이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인슬리나 야율초재와 같은 인재가 넘쳐나는, 그리고 그런 인사라면 한때 적진에 출사했어도 '재활용'을 흔쾌히 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갖춘 지도부가 있는 한나라당의 모습을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바라지 않을까? 지금의 모습은 지지자들과 국민들에게 실망한 안기는 모습인 것 같다.

임혜현 / 투데이코리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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