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구 리틀 야구단 감독, "유소년 양성으로 지속적인 야구사랑 실천"


"황무지나 다름없던 공터, 사비 털어 직접 일구어 유소년 야구장으로"
"부족한 생활체육 인프라에 대해 침이 마를정도로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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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정세한 기자] 한국 야구가 국제무대에서 신화를 써내려갈 무렵에도 야구인들은 그저 감격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한국 야구의 젖줄에 해당하는 야구 꿈나무들의 수가 적어 유소년 야구가 고사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바로 불과 몇 년 전 얘기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야구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동네 주변에서 야구를 보고 즐기는 아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며 유소년 야구단의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현재 초등학생이 뛰는 야구 팀은 초등학교 100개, 리틀야구 140개, 전국적으로 약 240개에 이를 정도이다.

6월 1일, 부산 광안리에는 강렬한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오후 4시쯤 광안리 수변공원에 위치한 조그마한 야구장에서는 방과 후 야구에 흠뻑 빠진 아이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 찼다. 마치 물을 한바가지 뒤집어쓴 듯 땀을 뻘뻘 흘리며 캐치볼을 하고 배트를 돌리는 이들은 야구가 그저 좋아서 리틀야구단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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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

체구만큼이나 우렁찬 목소리로 이들을 일사분란하게 불러 모으는 이가 있었다. 아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이는 바로 프로야구 출신 배정훈 감독이다. 까맣게 탄 얼굴을 한 그는 기본기 하나하나를 아이들에게 전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배 감독은 1997년 롯데에 입단해 이른 나이에 은퇴한 이후 부산중, 부산공고, 부산고 등 아마추어 팀 코치와 감독으로 야구와 인연을 이어오다 1년 전 부산 수영 리틀야구단을 직접 창단해 지역 꿈나무 양성에 힘써오고 있다.

배 감독은 오래 전부터 유소년 육성 계획에 대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중학교서부터 대학까지 차례로 지도자 생활을 경험하면서 그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중학교에서 대학까지 코치나 감독을 두루 거쳐보니, 어린 시절부터 선수들의 기량 차이가 확연히 벌어지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처음 야구를 배울 때부터 기본기를 착실히 다져나가지 못한 게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기본부터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육성하고자 수영 리틀야구단을 만들었어요.”

수영 리틀야구단은 창단한지 이제 막 1년이 넘어섰다. 지난해 5월 창단한 수영 야구단에는 현재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20여명의 아이들이 선수반과 육성반에 소속돼 방과 후나 주말을 이용해 운동을 한다. 배 감독은 아이들을 지도할 때 기본기에 주안점을 두고 훈련시킨다. 좋은 자세를 어릴 때부터 몸에 자연스럽게 베일 수 있도록 그의 경험들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학창 시절의 야구 인생

배 감독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님의 권유가 계기가 되어 야구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렇게 시작한 야구가 어느 덧 그의 인생이 됐다.

“어린 시절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남달리 운동을 좋아하셨던 아버님의 권유로 대연초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4학년 때 처음 시작했는데, 체격이 같은 반 친구들에 비해 유난히 컸어요. 그래서 아버님이 시키시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대연초, 대천중, 부산고를 나온 그는 소위 말하는 명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원래 포지션은 포수가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투수였어요. 대천중학교 시절 동래고 감독님께서 새로 부임하면서 포수로 전향했어요. 사실 포수를 하게 된 건 동기 중에 포수가 아무도 없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대학교 2학년 때까지는 주로 외야수나 지명타자로 나가다가 3학년 때 포수 마스크를 다시 썼어요“

배 감독은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경기로 부산고 1학년 시절, 대통령배 우승을 떠올렸다. 그 해 부산고는 돌풍의 주역 경주고를 4-2로 힘겹게 이기고 우승기를 들었다.

“부산고 1학년 시절 대통령배 우승했을 때가 제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동계훈련을 정말 힘들게 했는데 땀 흘린 보상을 받는 것 같았어요. 본선에서 매 게임이 치열했어요. 결승에서 경주고와 맞붙었는데 2점차로 정말 힘들게 이겼어요. 준결승전에서도 지고 있다가 역전승을 했어요.”

우여곡절의 프로 생활

사람은 시(時)를 잘 타고나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펼칠 무대가 없으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배 감독도 신인 드래프트 당시 그랬다. 당시 롯데에는 걸출한 포수들이 즐비했다.

“신인 드래프트 당시에 롯데가 저를 지명할 줄은 몰랐어요. 이미 김선일, 강성우, 임수혁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안보였거든요. 그래서 타 팀으로 가게 될지 알았어요. 실제로 타 팀에서 영입 제의도 있었고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슬픈 예감(?)은 빗겨가질 않았다. “롯데에 지명 되고 사실 지나간 일이라 하는 말이지만 실업 팀으로 갈까도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 한일은행이 실업팀을 재창단해서 여러 방면으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결국 고민 끝에 롯데와 계약을 하게 됐죠.”

순조롭게 풀리기만 하던 그의 야구 인생은 롯데에 입단하면서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다. '96년 2차 4순위로 프로야구에 발을 들이게 된 배 감독은 야구 선수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동기들과 달리 그는 현역 선수시절 대부분을 무명에 가까운 힘든 나날을 보냈다.

“입단 2년째까지만 해도 기존 선배님들 곁에서 많이 배우며 경기에도 자주 출장했어요. 특히 2년차 때는 5-60게임 정도 나갈 정도로 성장도 하고 자신감도 붙었어요. 하지만 기존에 계시던 감독님이 바뀌시면서 2군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98년 후반부터는 주로 2군에서만 보냈어요. 2군에서는 사실 투수로도 2번 정도 출장한 적이 있어요. 윤학길 투수코치님께서 경기에 출장을 못하니 저더러 투수로라도 나가서 경기 감각을 찾으라고 하셨어요. 나중에 다시 1군에 올라가긴 했지만 불펜 포수 역할에만 그쳤어요.”

자리를 잡지 못하던 배 감독은 이 시기 선수 시절의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다. 팀 내 입지가 약해진 배 감독은 2000년 동계 훈련 도중 결심을 내렸다. 복합적으로 얽힌 실타래를 결국 풀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프로야구계를 떠났다.

“정말 내리기 힘든 결정이였지만 당시 그 좋아하던 야구에 대해 환멸이 느껴졌어요.” 얽히고 얽힌 사연을 풀어놓던 배 감독이 회한에 잠긴 듯 잠시 말문을 잇지 못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은퇴라는 결정을 내린 게 점점 후회가 되었어요. 그래서 개인 훈련하며 꾸준히 몸을 만들었어요. 여러 구단에서 테스트도 받았어요. 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 도중 어깨 부상을 당했고, 거기다 선수협의회 창단까지 맞물리면서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죠.”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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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조성옥 감독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은퇴 후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그에게 지도자로서 새로운 길을 걷게 해준 사람이 바로 조성옥 감독이기 때문이다.

“선수 생활이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이 드니 후회도 밀려오고 갈피를 못 잡기도 했어요. 야구를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했었는데 그것마저 실패하니 막막했어요. 아마 이 시기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절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그때 당시 부산고 조성옥 감독님께서 저에게 코치를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셨어요. 지도자로서 새 길을 알려주신 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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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로 새 길을 달려온 배 감독은 짧다면 짧은 10년이란 기간 동안 많은 팀을 옮겨다니며 숨 쉴틈 없이 달려왔다. 부산에서 강원도 횡성, 경기도 부천까지 전국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어린 선수들을 지도했다.

'즐기는 야구' 확고한 지도 철학

야구 선수가 되고 싶어서 배정훈의 야구 교실로 찾아오는 아이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한 눈에 특성까지 다 읽어진다.

"아이마다 체격과 기량이 제각각이어서 시간, 강도에 차별을 두어서 훈련을 시행하고 있어요.“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한 가지 확고한 철칙이 있었다. 바로 ‘즐기는 야구’, 성적 지상주의가 아닌 어릴 때부터 신명나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인식을 심어줘 평생의 취미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단순히 야구만을 배우러 오기 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여기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소극적이고 의기소침했던 아이들이 이젠 다들 적극적이고 명랑해졌어요. 야구의 기량 습득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작은 변화에서 보람을 느껴요.”

프로야구 선수로서 못다 이룬 꿈을 유소년 육성을 통해 펼치고 있는 그는 시종일관 유소년 야구 인프라와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았다. 그의 진심어린 걱정과 당부의 말에서 한국 야구의 밝은 미래는 의심되지 않았다.




배정훈 (대연초-대천중-부산고-동아대)
생년월일 1973년 12월 20일
체격 : 181cm / 90kg
프로입단 : 1996년
프로성적 : 타자 개인통산 93경기 출전, 타율 0.210, 162타수 34안타, 2홈런, 10타점
지도자 약력 : 부산중 코치 - 부산공고 코치 - 부산고 코치 - 송호대학 코치 - 부천고 코치 - 송호대학 감독 - 現 수영구 리틀 야구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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