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일단 종전의 시각대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주장이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일각에선 여러가지 면에서 그렇게 볼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우선 그룹 회장이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빼돌렸는데도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은 명백히 재벌총수 봐주기란 주장이 여기저기서 대두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 2월 대법원이 사법사상 최초로 전국 5개 고법과 18개 지법의 형사항소심 재판장 23명이 참석한 가운데 항소심 재판장 회의를 열고 "2심에서 1심의 선고 형량을 감형해주는 온정주의 관행을 없애겠다"고 발표한 뒤여서 이같은 비판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여러가지 면에서 이번 판결이 기존의 재벌총수 봐주기 판결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선 재판장이 판결을 위해 100명이상의 여론을 참작한후 내린 판결이라는데서 종전의 재벌총수 봐주기와 구별된다. 그리고 이 조사에서는 의외로 서민층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원했다는게 재판장의 설명이었다.

지금까지의 재벌총수 봐주기 판결에서는 최소한 여론은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니었으며 이런 측면에서 이번 정회장에 대한 집행유예는 어느 정도는 도의적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볼수 있다.

두번째로 재판장이 다른 외적인 사유가 아닌 순수하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심각하게 고려해서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사실 모든 범죄에 대해 법조문 대로만 양형을 내린다면 법원 재판에는 재판장이 필요한게 아니라 판결 로봇만 있어도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법조문에도 명시돼있듯이 양형 참작사유라 해서 재판장이 판결을 내릴때 모든 것을 고려하도록 돼있으며 이번 정회장 항소심 재판장도 그런면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리고 경제적인 측면을 심각하게 고려해서 판결을 내렸기에 단순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식의 시각은 본질을 왜곡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세번째는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면서도 사회봉사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8400억원이 넘는 돈을 기부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부분에서 재판부의 고민을 엿볼수 있었고 따라서 재판부에 대해 재벌봐주기 판결이라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일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종전에도 법원의 판결을 보면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관대하다는 것이 수일전 보도에서도 밝혀졌다. 금액 고하를 막론하고 집행유예 판결이 많은 것이다.

이는 화이트칼라의 지위나 생리로 볼때 재범 위험성이 낮다는 법원의 고려가 들어간 것인데 그룹회장이라고 해서 이 고려가 배제된다면 이는 또 다른 역차별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룹회장이라고 해서 봐주기식 판결은 안되겠지만 법원이 경제상황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여론도 심도있게 참작한후 내린 판단이라면 이 역시 존중해야 하며 이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재벌총수란 이유로 다른 화이트칼라와 또 다르게 판결하라고 요구한다면 이 역시 또 다른 면에서 차별이 된다는 것이다.

경실련도 이런 점을 감안해 이번 판결과 관련 "사회공헌을 감안해 집행을 유예한 것으로 과거에 유야무야 판결했던 것에 비해 진일보했으며 일각에선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하지만 여러 측면을 골고루 감안해 적절하게 조절한 것이라 본다"는 의견을 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정당한 부를 이룬 사람들에 대한 박한 평가는 거두어 들여야 될 때다.

임경오/투데이코리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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