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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서소영 기자] 서울예술단의 '윤동주, 달을 쏘다'는 뮤지컬이라는 이름으로 대체, 1930~70년 전성기를 누렸으나 최근 명맥이 거의 끊기다시피 한 근현대가무극의 향수로 꽉 들어찬 작품이다.

뮤지컬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화려함보다는 가무극에서 느껴지는 정갈함을 내세운다.

일제 강점기에 유려한 시어를 사용,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편들을 남긴 '서시'의 시인 윤동주(1917~1945)가 주인공이다.

암담한 현실에서 지성인으로서 겪어야 한 정신적 고뇌와 아픔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으로 노래한 작가다. 평생 단 한 권의 시집만을 사후에 남겼지만 가장 친숙한 시인이다. 대표작 '서시'는 20세기 가장 훌륭한 시로 평가받는다.

공연은 독립운동을 중심에 둔 윤동주 일대기가 아닌 역사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한 청년의 고민과 갈등을 다룬다.

윤동주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평평한 편이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어 극전개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약간 고루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이는 단점이 아니다. 다층적인 캐릭터가 있어야만 작품성이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최근의 뮤지컬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뮤지컬 '영웅'과 '왕세자 실종사건' 연극 '청춘, 18대 1' 등에서 이야기의 힘을 잃지 않았던 작가 한아름씨의 뚝심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기교를 부리기보다 윤동주가 어떤 인물이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준다.

이 때문에 '가무극'다운 느낌이 한층 강해졌다. 요즘 시대 고전적으로 취급받는 '시'를 윤동주의 '아우의 인상화' '별 헤는 밤' 등을 들려주며 정면 돌파하는 점도 예스러움을 더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무대다. 다소 휑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의 널찍한 공간을 부러 채우려 하지 않은 점이 절묘했다. 극을 설명하는 데 꼭 필요한 소품만으로 여백의 미를 강조한 무대는 거대한 역사에 이끌려갈 수 없었던 인물들 묘사에 제격이다.

무대디자이너 이인애씨가 "'역사의 틈'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말마따나 다양한 크기의 가림막을 활용, 틈 사이로 인물들을 보여주는 등 효과적인 공간 사용이 눈길을 끈다. 전차, 기차, 배 등 극에 어색하게 놓일 수 있던 대형 소품들도 세세한 묘사로 제자리를 찾았다. 파스텔톤의 그림과 실사 등을 적절하게 사용한 영상과 조명도 제 몫을 했다.

1부는 청년 윤동주가 시와 연인을 사랑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활기차게 그린다. 2부는 일본에 유학 간 윤동주가 일제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애절하게 묘사한다. 이 탓에 극이 전개될수록 다소 처진다는 것이 단점이다. 출연진은 서울예술단의 단원들로 호흡은 좋았으나 몇몇 배우들의 고음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한국적인 소재의 음악극과 무용극을 제작해온 서울예술단이 경제적 논리로 시장에서 배제된 근·현대 가무극을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다.

지난 5월 부임한 정혜진 예술감독이 진두지휘했다. '화려한 휴가' 등의 연출 권오성씨, '영웅' 등의 작편곡가 오상준씨를 비롯해 음악감독 이경화씨와 안무가 노정석씨가 힘을 더했다. 뮤지컬배우 박영수 김형기 이시후 김백현 김혜원 외 서울예술단 단원 36명이 출연한다. 12일까지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볼 수 있다. 2만~8만원. 오픈리뷰 1588-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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