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을 보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기사가 하루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거의 모든 일간지는 마치 이 후보의 '전위부대'가 된 듯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다. 이 후보가 이태원의 환경미화원들과 만날 때도, 대구의 지역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도, 그가 수해 지역을 찾을 때도 기자들의 눈과 귀는 어김없이 그의 뒤를 쫓는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한나라당 경선 이후 더욱 두드러진다. 대통합신당의 경선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50%를 웃도는 이 후보의 지지율 탓일까. 우리 언론은 어느새 '이명박 대세론'에 취해 있다.

이러한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3월 2일에서 15일까지의 14일동안 6개국 7개 도시를 강행군하는 해외순방길에 올랐다. 당시 유럽에 특파된 <신동아> 김기만 기자는 김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을 지켜보며 이같이 술회했다.

"방불 업무 본부인 뫼리스 호텔 1층에 회의실 세칸을 튼 프레스센터가 꾸며졌고 펜기자실, 사신기자실, 방송기자실로 각각 쓰였다. 이 방을 만 이틀간 쓰는 경비만도 1만여 달러였고 그 경비는 정부 측이 부담했다. 한국 취재진의 엄청난 규모는 코펜하겐의 '유엔 사회개발 정상회의'에서도 화제가 됐다. 140여 명의 한국 취재진은 주최국인 덴마크의 취재기자보다 많았으며 미국의 30여 명, 일본의 20여 명, 프랑스의 10여 명과도 잘 비교가 됐다고 한다."

문제는 보도진의 숫자가 아니라 이들이 쏟아내는 '천편일률적'인 기사들이었다.

다시 김 기자의 말을 들어보자.

"많은 기자가 몰려왔지만 정상 순방 때는 그 특성상 대부분 '풀' 방식 취재가 될 수밖에 없다. 행사 위주이다 보니 발표문이나 스케치 정도를 할 수 있을 뿐 미리 준비한 기획이 아니고는 특별한 취재를 하기 어렵게 돼 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파리 시내 공원에서 조깅하는 장면부터 하루의 크고 작은 일정 하나 하나가 묘사되듯 번번이 뉴스가 돼 전달된다."

얼마전 한나라당의 경선이 끝난 후 의원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조촐한(?) 의원 연찬회가 지리산에서 열렸다.

당시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된 연찬회에 동행한 기자는 줄잡아 100여 명이었다. 이튿날 이 후보와 함께 산행을 한 기자들은 산을 오르는 내내 이 후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놓치지 않기 위해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심지어 중간에 뒤쳐진 기자들을 위해 특정 언론사 기자가 이 후보의 '워딩(말)'을 '풀(공유)'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보도된 기사는 모두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똑같은 내용의 기사보다 더 큰 문제는 정작 보도해야 할 것은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나를 포함해 다수의 언론사 기자들이 이 후보의 '마사지걸' 발언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 과거 이 후보의 도곡동땅 의혹 등이 불거졌을 때 맨 앞에서 비판의 칼날을 세우던 언론들도 이 후보의 '실언'에는 굳게 입을 닫는다.

혹, 이 사건이 '뉴스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하지만 아무래도 이 후보의 봉사활동이나 산행이 '마사지걸' 발언에 비해 뉴스 가치가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앞으로 대선까지 3달 남짓의 시간이 남았다. 정치부 기자들의 '침묵의 카르텔'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김민자/투데이코리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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