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연설,힐 발언 모두 6자회담-시리아件 초점

부시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야만정권으로 규정했다. 부시 대통령은 25일 오전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문명국가들은 독재정권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나설 책임이 있다"면서 벨로루시, 북한, 시리아와 이란 등을 '야만정권'들로 적시,비난했다.

이는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25일 일본에서 "북한이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비핵화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27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6자회담 참석에 앞서 일본을 방문한 힐 차관보는 북한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한반도 비핵화에 달려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는 최근 제기된 북한-시리아 핵거래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시리아와의 핵거래설은 미친놈들이 지어낸 것"이라고 강력히 해명한 것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기본 시각은 '표면적으로는' 북한이 한창 핵개발 의혹을 사던 몇 년전과 다르지 않은 수준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부시 미 대통령의 연설을 보면, 미국이 북한을 비난 대상으로 보고 있고 공격을 가하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고 있음이 눈에 띈다. 몇 해 전의 강도 높은비난과 유사하지만 분명 뭔가 다른 구석이 있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공격의도는 정확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북한 인권,시리아 건에 대한 언급,어디에도 없어

이번 유엔 연설을 뜯어보면, 몇몇 국가에 대해서는 인권 사정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서 공격한 바와 달리,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서는 야만 정권이라는 낙인을 찍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인권 유린 상황을 지적하지는 않앗다. 긴장 관계인 것은 분명하지만, '북한 인권법'을 발효시켜 견제하려던 무렵이나 악의 축 운운하던 미북관계 최악의 시점보다는 좀 누그러진 상태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힐 차관보가 경유지인 일본에서 6자 회담 재개 이틀 전에 언론을 통해 상호주의 원칙을 흘린 것은 회담을 좀 더 유리한 지형으로 끌고 가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힐 차관보의 발언에서도 시리아와의 핵거래에 대한 추궁과 비난은 아직 공식화되지 않고 있다.

라이스 국무장관 역시 "북한핵은 해명될 많은 부분이 있다"고만 말했을 뿐, 시리아와의 거래건에 대해서는 구체적 지적을 피하고 있다.외교소식통들은 라이스 장관이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6자 회담 27일 개회 이전 사전조율과정(26일로 예상되는)에서 시리아와의 핵거래 건을 따로 언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부시 대통령의 인권 관련 언급은 북한 인권 상황 개선이라는 액면가보다는 북한에 대한 압박 제스처로 해석할 수 있다. 힐 차관보의 새삼스러운 상호주의 강조와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해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주지시키고, 2.13 합의를 이행하라는 압박을 재차 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리아 커넥션,확실히 그러나 조용히 해체해야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첩보부대의 활약과 영국 언론의 호들갑으로 세상에 드러난 이른바 북한-시리아 핵 커넥션 자체에 대해서 미국은 강도높게 비난하거나 규제를 시도하는 것은 삼가하고 있다. 영국 언론에서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미국은 시리아에 북한산 핵물질이 반입됐음을 입증한 이스라엘측의 증거제시에도 마지못해 시리아 군사시설의 폭격을 묵인했을 뿐, 이후 비난이나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미국이 이달 1~2일 제네바에서 열린 '미북 관계 정상화 회의'에서 나온 "북한의 핵시설을 연내 불능화하고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다"는 합의안을 무위로 돌리지 않기 위해 압박은 하되, 일말의 협상 여지는 열어 두려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대담한 핵거래가 괘씸하기는 하지만, 이번 북한과의 6자 회담 재개에 걸림돌이 될까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6자 회담 테이블에 앉을 북한 외교관들을 통해 북한의 의중과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는지, 2.13 합의를 이행할 의사가 있는지 재차 확인 및 압박을 해야 한다는 과제가 미국에게는 주어진 것이다.

겉으로는 인권과 상호주의 운운하면서 압박을 가하면서, 수면 아래로 핵관련 의혹을 세세히 확인,해체하려는 노력을 이번 6자 회담 내내 미국 외교관들은 펼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이 야만정권인지 아닌지는 중대관심사는 아니었던 셈이다.

◆6자 회담에서 별 성과없으면 내달 정상회담에도 암운 불가피

문제는 6자 회담 및 그에 부속된 많은 이면 회의들을 통해서도 이번 시리아 건으로 불거진 북한의 핵문제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등의 사후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것이란 데 있다.

미국은 지난 시드니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는 한국전쟁 종전협정을 맺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북한의 약속 이행 여부에 따른 상호주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북한-시리아간 핵커넥션이 불거졌으니, 북한의 설명과 태도에 달리긴 했겠지만, 미국의 대북관계 개선 수순은 후퇴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동결 내지 정체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정상회담에서 핵의제를 다루지 않고 넘어갈 가능성이 그만큼 희박해진다는 부분과도 연결된다. 이번 시리아 커넥션이 터지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서 6자 회담이 홀가분하게 어떤 성과를 냈다면 10월 2~4일간의 남북 정상회담에 아무런 부담이 실리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 6자 회담이 무위로 끝난다면, 미국측이 남북정상회담에 아무런 요구조건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는 구도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측의 찬성 입장 표명이 '조건부'라고 보고 있는 시각이 우세한 가운데, 실제로 그 조건을 미국이 우리에게 입 밖으로 내어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6자 회담 기간에 미국과 북한이 핵 처리 문제에 대해 다시금 어떤 합의를 도출할지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이 무거운 짐을 안고 시작하느냐 마느냐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6자 회담이 끝나는 날 베이징에서,이달 초 제네바 미-북 관계정상화회의에서 나왔던 선언 못지 않은 호재가 나올지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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