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대통령 저격범 ‘프롬’ 역 맡아 개성 연기 한껏
[투데이코리아=김범태 기자] 배우 황정민의 첫 연출작으로 화제를 모은 뮤지컬 ‘어쌔신’은 미국 대통령 암살범 9명의 인물에 관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저격범의 내적 동기에 중점을 두어 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부분을 무대로 옮겨왔다.
역사와 판타지를 적절하게 혼합해 마치 퍼즐을 맞추듯 흥미롭게 스토리를 펼쳐가는 이 작품에는 황정민을 비롯해 남문철, 이상준, 최성원, 정상훈, 이정은 등 이름만 들어도 믿음 가는 쟁쟁한 실력파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배우가 있다. 바로 ‘리네트 스퀴기 프롬’ 역의 김민주다. 그는 ‘연극보다 더 연극 같다’는 평을 듣는 이 뮤지컬에서 개성 넘치는 연기와 거침없는 가창력으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그가 맡은 ‘프롬’은 1975년 9월 캘리포니아 세크라멘토에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한 인물. 사이비교주 찰리 멘슨의 석방을 요구하며 대통령을 향해 총을 겨눈다. 큰 키에 늘씬한 체구, 금방이라도 왈칵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유난히 큰 눈망울은 청순한 외모와 함께 ‘미녀 암살범’을 빚어냈다.
그동안 ‘환상의 커플’ ‘모차르트 오페라 락’ ‘싱글즈’ ‘웨딩펀드’ 등에 출연하며 탄탄한 실력을 입증한 그는 이 작품에서 귀여우면서도 백치미 있는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여기에 때론 광기어린 모습과 상반되는 한 남자를 향한 지고지순함까지 더해지며 ‘프롬’이란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그간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작품을 주로 선택했던 그가 이 어둡고 음침한 주제의 뮤지컬에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함께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이 너무 좋아서. 언젠간 꼭 함께 작품을 해 보고 싶었던 얼굴들이었기 때문에 캐스트 명단을 보고 두말할 나위 없이 택했다.
여기에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이라는 말에 욕심을 냈다. 손드하임은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을 작곡한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브로드웨이 최고의 뮤지컬 작곡가. 링컨 대통령 암살자인 존 윌크스 부스부터 레이컨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존 힝클리까지 100여년의 미국 시대를 반영하듯 각각의 인물이 부르는 뮤직넘버에 해당 시대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을 구성함으로써 탄탄한 예술성까지 가미시켰다.
김민주는 이에 대해 “손드하임은 멜로디 하나하나에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작곡가”라며 “때론 관객의 거부감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불협화음을 쓰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멜로디 라인이 치밀하고 예민하다. 처음에 언뜻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손드하임의 매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찰리의 연인이자 노예”라고 말하는 ‘프롬’이란 캐릭터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는 어려움도 있었다. 실존인물이면서도 우리에겐 알려진 게 거의 없는 사람인데다 ‘왜 그가 대통령을 향해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 관객의 이해를 끌어내야 했다.
그는 자신을 ‘프롬’에 대입했다. 찰리가 석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인도 감옥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주장할 만큼 고집이 센 인물이었던 ‘프롬’을 연기하기 위해 과거 자신이 누구에게 ‘꽂혀’ 있었는지 떠올렸다. 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주인공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 양현석!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양현석 오빠에게 꽂혀 지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를 향한 열정으로 청소년기를 보냈지요. 당시의 제 심정을 ‘프롬’이란 캐릭터에 담아 연기하려고 노력하니까 몰입이 좀 더 쉬웠어요. 그녀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도 되고...”
하지만 평소 담배는 물론, 술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그녀가 마약중독자를 표현하기엔 버거운 부분도 많았다. 방법은 연습 밖에 없었다. 긴장을 놓은 채 몽롱하게 취해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일상을 무조건 풀어져” 지냈다. 노력을 하다 보니 이젠 지나가던 사람마저 “너 마약했니?”라고 물을 만큼 자연스런 연기가 가능해졌다.
이 작품에 ‘오스왈드’ 역으로 출연 중인 최재림은 프레스콜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황정민과 ‘연출가’ 황정민에 대해 “어떻게 저렇게 감정을 한순간에 끌어올리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가 탁월하다. 연출을 할 때는 감정시범을 직접 보여 배우가 디테일한 감정선을 잡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 바 있다. 김민주에게도 ‘배우’ 황정민과 ‘연출가’ 황정민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계 속 -
* 사진제공 = (주)샘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