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저격범 ‘프롬’ 역 열연 ... “초연 작품 조승우 상대역 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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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김범태 기자] “배우 황정민은 정말 천진난만해요. 공연하는 내내 ‘어떻게 저렇게 무대를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런데, 연출가 황정민은 작품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마냥 즐기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평소보다 많이 무서워지고 예리하고, 때론 날카로워져요. 아주 철두철미하죠”

김민주는 ‘연출가’ 황정민의 모습을 보고 그가 보통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단다. 그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아마 배우 황정민만 알았더라면 원래 연기를 잘하는 분 정도로만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연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신 하나하나를 매우 계획적으로, 디테일하게 짜는 것을 봤어요. 배우가 연출을 맡으니까 연기의 라인을 잡는 데도 큰 도움이 됐죠”

그런 면에서 ‘어쌔신’은 김민주에게 이전의 어떤 작품보다 많은 공부가 된 뮤지컬이다. 특히 ‘프롬’이라는 인물이 사실과 동떨어질까봐 캐릭터 접근에 고민을 많이 했다. 단순히 미친 사람을 넘어, 그가 왜 대통령을 향해 총을 쐈는지 저격의 이유를 성립시켜야 했다. 그래야 관객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는 곧 ‘누가 누굴 살해했는지 보다 그들이 왜 암살범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는 연출의 의도와 괘를 같이하는 것이기도 했다.

“‘프롬’은 겉으로 보기엔 희대의 살인마이자 사이비교주인 찰리 맨슨을 추종하는 구제불능의 마약중독자예요. 하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버림받은 ‘프롬’에게 손을 내밀어준 건 찰리였죠. 어쩌면 그에게 찰리는 한줄기 빛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찰리를 바라봐 주지 않으니까 그를 알리기 위해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거죠”

‘프롬’의 불행했던 성장과정이나 배경을 알면 조금은 그가 측은해지고, 연민이 가는 인물이라는 게 김민주의 설명이다. 마약에 찌든 ‘프롬’이 치킨박스에 저주를 거는 신기어린 모습이나 찰리를 위해 부르는 애절한 발라드는 이런 캐릭터 분석을 통해 탄생했다. 관객에게 공감은 아니어도, ‘프롬’의 심리나 처지가 조금은 이해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그렇다면 김민주 자신이 꼽는 이 작품 최고의 명장면은 어딜까. 그는 ‘사라 제인 무어(이정은 분)’와 마약을 나눠 피우는 신을 꼽았다. ‘프롬’의 아픔이 전면에 드러나는 부분이다. 대통령 암살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는 이유와 이들 모두 외로운 사람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한꺼번에 노출한다.

자칫 우스꽝스럽게 풀어질 수 있는 이 장면에서 김민주는 관객의 동정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힘을 발휘한다. 찰리를 향해 부르는 뮤직넘버는 그의 목소리를 타고 ‘프롬’의 순수한 마음을 읽게 한다. 김민주가 이 작품을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했음을 확인시키는 장면이다.

이런 성장에는 뮤지컬 ‘어쌔신’에 함께 출연한 선배들의 도움이 컸다. 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공부가 됐다.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열흘 간 거리에서 노숙을 하거나, 한 달 동안 지방에서 사투리 연습을 하고 온 ‘세뮤엘 비크’ 역의 남문철, 정상훈 배우는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수십 년의 연기 ‘내공’을 갖고 있는 대선배들도 무대 뒤에선 이처럼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았다.

무엇보다 ‘무어’ 역의 이정은 배우가 큰 힘이 됐다. ‘무어’ 역시 제럴드 포드 대통령 암살범이기에 그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많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이들의 호흡은 작품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선배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사실 후배 입장에서는 선배의 한숨 한 번이 자신감을 위축시킬 수 있는데, 이정은 선배는 제 연기가 궤도에 올라올 때까지 믿고 기다려 주셨어요. 연습 초기, 캐릭터를 못잡고 힘들어 할 때도 오히려 저에게 맞춰주셨죠. ‘그 인물이 되기만 하면 연기는 저절로 나온다’는 마인드를 배웠어요”

이제 뮤지컬 ‘어쌔신’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캐릭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도 있게 연결해가는 ‘임팩트’ 있는 배우로 기억됐다. 그가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을 듯 했다.

“간간이 ‘어쌔신’이라는 작품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화려한 브로드웨이 쇼뮤지컬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지만, 손드하임 작품의 특색을 알고 본다면 오히려 더 재밌을 거예요. 무엇보다 배우들의 살아 있는 연기를 만날 수 있잖아요!”

마주한 이의 기분까지도 밝게 만드는 그의 환한 미소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문득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조승우의 상대역을 해보고 싶다’던 그의 바람이 떠올랐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 궁금했다.

“물론이죠. 제가 데뷔 초 앙상블을 하면서 늘 숨죽이며 바라보던 주인공 오빠에요. 천재적인 배우 같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죠.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매번 뭔가 다르게 연기하는 모습이 정말 멋져요. 그러면서도 기복이 없다는 게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내친 김에 ‘만약 조승우 배우의 상대역을 한다면 어떤 작품의, 누구로 만나고 싶냐’고 물었다. 그가 다시 배시시 웃는다.

“기존 작품에서는 어울릴 만한 캐릭터가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초연하는 공연에서 만나고 싶어요. 오빠의 상대역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상상만으로도 벌써부터 행복한지 그의 미소가 더욱 환해졌다. ‘미녀 암살범’ 김민주를 만날 수 있는 뮤지컬 ‘어쌔신’은 오는 2월 3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다.

* 사진제공 = (주)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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