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역 맡아 섹시하면서도 소녀적 감성매력 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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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8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그날의 감동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생애 처음으로 본 뮤지컬이 ‘지킬앤하이드’였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지만,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첫 장면부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이때부터 뮤지컬배우의 꿈을 키웠다.

당시 ‘루시’ 역을 맡아 열연하던 김선영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파워풀한 가창력과 완벽한 연기로 ‘Someone like you’ ‘Once upon a dream’ 등 뮤직넘버를 부르던 김선영은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관객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기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나도 언젠간 저 무대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토록 바랐던 ‘루시’가 되어 매일 저녁 무대에 선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히로인 신의정 이야기다. 그는 기대이상의 연기와 폭발적인 가창력,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역대 어느 캐스트에도 밀리지 않는다는 평을 얻고 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시원한 성량은 ‘제2의 정선아’라는 닉네임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연기에 ‘배가 고프다’. 쏟아지는 관객의 갈채와 평단의 기대를 즐길 만도 한데, 그는 꿈을 이루었다는 성취감마저 잠시 뒤로 물러두었다. 그의 목소리에선 오히려 진지한 긴장이 느껴졌다.

“어떤 목표를 이루었다는 큰 느낌은 아직 없어요. 사실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껴볼 겨를도 없이 작품에 임하게 됐거든요. 솔직히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요. 하나의 결점을 해결하면, 곧 또 다른 문제가 보이고. 이걸 넘어서면 다른 점이 미흡하고... 그래서 요즘은 날마다 저 자신과 싸우느라 바빠요”

그러나 그는 섹시하면서도 청순하고, 당차면서도 소녀적 감성이 묻어나는 새로운 ‘루시’를 창조해냈다. 특히 ‘루시’가 ‘지킬’의 집으로 찾아가 치료를 받는 장면에선 사랑에 빠진 여인의 진심이 그대로 객석까지 전달된다. 그는 관객이 ‘루시’에게 연민을 느낄 만큼 호소력 있는 연기를 펼쳐낸다. 많은 이들이 이번 시즌 ‘지킬앤하이드’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이 신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흠모하는 ‘지킬’에게 치료를 받고 넘버 ‘Someone like you’를 부르는 장면이 관객에게 ‘루시’의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담아 연기했다.

“행복해 하면서 부르지만, 가슴은 절절하죠. 슬픈 노래도 아니고, 기쁜 노래도 아니에요. 상상이기 때문에 설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마냥 설레어 할 수도 없죠. 지금도 그 부분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져요. 그래서 감정선을 조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사랑하면서도 사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떠올리자 그의 커다란 눈망울이 갑자기 그렁그렁해졌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루시’ 그 자체였다. 이런 열정 때문이었을까. 그는 이전에 없던 ‘루시’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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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정은 앞서 이 역할을 연기했던 배우들이 ‘루시’에 채색한 색깔을 빼려 의도적으로 노력하거나, 각각의 특성을 살려 장점만 부각시키려 계산하지 않았다. 마치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대본에 충실하려 집중했다. 다행히 데이비드 스완 연출이나 원미솔 음악감독 등 어느 누구도 그에게 이전의 누구를 따라할 것을 주문하지 않았다.

그것이 적중했다. 신의정은 주어진 상황에 자신의 ‘필’을 대입했고, 원하는 대로 해석해 연기했다. 역대 배우들과 신의정의 ‘루시’가 차별화되는 시점이었다. 그는 마치 짝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처럼 순수한 감정을 옷 입혔다. 비록 거칠고 천한 ‘거리의 여자’지만, ‘지킬’ 앞에서는 한없이 여려지는 감성을 그려냈다.

그렇다면 신의정의 평소 모습과 ‘루시’는 얼마나 닮았을까. 그가 대답 대신 까르르 웃는다.

“저 역시 조신한 성격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거친 것도 아니지만. 평소에는 장난도 많이 치고, 별일 아닌 일에도 잘 웃고 그래요. 굳이 ‘루시’와 비슷한 점이라면 순수함이랄까요?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 좋아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애틋한 마음을 갖는... 그런 모습이 닮은 것 같아요”

그는 함께 ‘루시’ 역에 캐스팅된 동료배우 선민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블 캐스팅이라는 특성상 주변의 ‘비교 아닌 비교’가 자칫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아예 라이벌의식 같은 건 없단다.

“선민이는 듣는 사람의 귀가 번쩍 뜨일 만큼 노래를 정말 잘해요. 가녀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창력이 놀라울 정도죠. 선민이가 노래 부를 때는 마치 무대에서 반짝반짝 불이 하나둘씩 켜지는 느낌이에요. 나이도 저보다 어리니까 좀 더 앳되고 순수한 ‘루시’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신의정은 그동안 ‘궁’ ‘카페인’ 등의 작품에 오르며 유노윤호, 김형준 등 아이돌 가수의 상대역으로 많이 출연했다. ‘페임’에 출연했을 때는 트랙스 멤버 정모와의 키스신이 소녀시대 티파니와 오인되는 소동도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같이 뮤지컬 무대에 오르고 싶은 아이돌 가수가 있을까? 궁금했다. - 계 속 -

사진: 박민철(스튜디오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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