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마다 등장해 반전 재미 더하는 멀티맨 ... “원작 힘이 워낙 짱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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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김범태 기자] 이 남자. 극중 캐릭터만 그런 줄 알았더니 실제로도 유쾌하고 화통하다. 2010년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서 칼잡이 ‘자코포’ 역으로 출연할 때만 해도 그저 우락부락하고 험상궂은 인상으로 한 몫 하는 거구의 성격파 배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강한 첫인상과는 달리 대화를 나누다보니 진중하고 담백하다. 그러면서도 거침없다. 그 진솔함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뮤지컬 <완득이>의 배우 이정수 이야기다. 그는 이 작품에서 ‘하느님’ ‘씨불놈’ ‘똥주 아버지’ 등 여러 역할로 번갈아 출연하는 멀티맨이다. 요소요소에 등장해 깨알 같은 반전의 재미를 더한다.

좁은 발코니에 서서 이웃집 ‘똥주 선생’과 육두문자를 써가며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완득이’가 ‘똥주 선생’을 죽여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에선 어느새 ‘하느님’으로 등장해 객석을 웃음으로 초토화시킨다. 커튼콜에선 ‘신(神)나는 댄스교습소’의 주인공이 된다. 흥겹게 몸을 흔들며 속사포 같은 랩을 구사한다. 관객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러고 보니 이정수는 ‘완득이’와 인연이 깊다. 성인극 데뷔도 2009년 연극 였고, 배우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심어준 작품도 이번 뮤지컬 <완득이>다. 연극에선 ‘완득이 옆집 아저씨’ ‘체육관 관장’ ‘동주 선생 아버지’를 맡았다. 이를 두고 그는 ‘운명의 장난 같다’고 표현했다.

“<완득이>는 정말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맡은 캐릭터도 맘에 들고. 날마다 무대에 오르는 게 행복하고 기대돼요. 오죽하면 아버지께서 ‘넌 <완득이> 영화 빼고 다 출연했다’며 농담을 하실 정도예요. 모든 면이 감사하죠”

뮤지컬 <완득이>는 정겨운 선율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 속에 잔잔한 감동을 담아냈다. 특히 주연배우와 조연 그리고 앙상블까지 탄탄하고 끈끈한 ‘팀워크’로 굳게 다져있다. 이들이 내뿜는 에너지가 공연 내내 객석까지 탱탱하게 전달된다. 그렇다면, 이정수가 느끼는 뮤지컬 <완득이>의 ‘힘’은 무얼까.

그는 “원작 자체가 워낙 짱짱하다”며 단연 스토리의 진정성을 꼽았다. 우리와 동떨어진 어느 특별한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 옆에서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니까 거리감이 없다는 게 그의 이유다.

“<완득이>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우리의 사연이고, 때론 자기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어요. 일부러 감동을 주려고 가공하거나 과장하지 않아요. 그런 면이 <완득이>가 많은 분들에게 사랑 받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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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과 함께 펼쳐지는 ‘신(神)나는 댄스교습소’ 신은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원작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뮤지컬이기에 가능한 장점을 가장 잘 살린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정수가 꼽는 뮤지컬 <완득이>의 최고 명장면은 어딜까 궁금했다. 돌아온 답이 신선하다.

“모든 장면을 통틀어 ‘완득이’가 엄마 음식을 먹고 짜다고 말하는 신이 제일 뭉클해요. 사실 책을 읽다보면 큰 감정의 굴곡 없이 술술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인데, 무대 위에선 짠하게 다가와요. 무덤덤하고 표현도 잘 하지 않는 아이가 한 마디 툭 내뱉는 게 ‘짜다’는 말인데, 생각할수록 가슴 한 켠이 아려져요”

이야기를 듣자니 정말 그렇다. 엄마가 해 준 첫 음식을 먹고 힘없이 내뱉는 ‘완득이’의 한 마디는 어쩌면 너무 오랜 세월을 떨어져 지낸 모자의 이질감일수도 있고, 엄마에 대한 원망과 불만일수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엄마와 아들이 마침내 한 공간에 함께 서 있다는 실존의 형상화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완득이’의 애증이 모두 결집되어 복합적으로 녹아있는 이 신이야 말로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가진 ‘숨어 있는’ 명장면이었다.

그는 선배 고창석을 닮고 싶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풀어내는 연기력도 훌륭하지만, 개인의 욕심을 앞세우기보다 작품이나 동료를 먼저 챙기는 마음 씀씀이가 존경스럽다는 설명과 함께. 여기에 주성치나 잭 블랙처럼 훌륭한 희극배우가 되는 게 꿈이라는 바람도 덧붙였다. 그가 빚어내는 코미디는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해졌다.

이정수는 이번 작품으로 평단으로부터 ‘뮤지컬 <완득이>가 탄생시킨 최고의 캐릭터’라는 찬사를 얻었다. <완득이>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주인공으로 다가섰다. 하지만 그의 질주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정수의 거듭되는 반전 매력을 만날 수 있는 뮤지컬 <완득이>는 오는 3월 23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한지상, 정원영, 서영주, 임진웅, 양소민, 임선애 등이 호흡을 맞춘다.

사진: 박민철(스튜디오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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