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짝사랑, 순수한 우정, 진한 가족애 공존하는 ‘힐링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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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김범태 기자] 막이 오르기 전, 어둑한 극장의 스피커에선 작품의 모티브가 된 송창식의 노래 ‘담배가게 아가씨’가 주제가처럼 흘러나온다. 양철지붕 구멍가게 ‘행복상회’엔 낡은 진열대 사이로 각양각색의 담배가 죽 늘어서 있고, 80년대 어귀를 지나는 아현동 산동네엔 정겨운 그때 그 풍경이 액자처럼 펼쳐져 있다.

어느 골목길 담벼락에서 본 것 같은 나이트클럽의 볼품없는 포스터와 전신주, 후줄근한 만화방이 소박한 세트의 전부다. 그리 특별해 보일 것 하나 없는 아담한 무대를 마주하고 앉은 관객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노래를 따라 흥얼거린다.

마치 빛바랜 흑백사진 같은 ‘복고지향적’ 작품과는 달리 객석엔 파릇파릇한 젊은 관객이 꽉 들어차 이채롭다. 이들에겐 통기타를 어깨에 둘러메고 인상 좋은 눈웃음을 지으며 세월을 노래하던 송창식의 향수보다 윤도현이나 JK 김동욱 등 젊은 가수들이 열정 넘치는 에너지로 노래한 리바이벌곡이 더 익숙하리라.

관객들의 가벼운 표정만큼이나 작품은 무겁지 않다. 막이 오르기 전, 객석에 간단한 퀴즈를 내 선물을 증정하는 깜짝 이벤트로 엔도르핀을 팡팡 분출시키며 문을 여는 이 작품은 신나는 록의 선율을 더한 오프닝넘버 ‘담배가게 아가씨’로 출발을 알린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가졌지만, 사랑 앞에선 소극적인 ‘지환’이 동네 청년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민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과정을 담백하고 유쾌하게 그려냈다. 여기에 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이 버무려내는 갖가지 에피소드는 얽히고설키며 재미를 더한다.

아버지와 함께 이사 온 ‘민선’ 부녀는 아현동 달동네에서 작은 담배가게를 운영한다. 사건사고 없이 조용하던 동네는 일순 ‘민선’의 외모에 시끄러워지고, 서른 살이 다 되도록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해 본 ‘지환’은 그녀의 미모에 끌려 첫눈에 반한다. 비단 ‘지환’뿐 아니라 ‘병렬’과 ‘진원’ ‘영민’ 등 너도 나도 달려들어 그녀에게 고백하지만 연신 보기 좋게 차이기 일쑤다.

작지만 강한 감동을 지닌 창작뮤지컬 ‘담배가게 아가씨’에는 한 여자를 향한 애틋한 짝사랑과 그를 둘러싼 친구들의 순수한 우정 그리고 진한 가족애가 모두 담겨있다. 그릇된 인스턴트 사랑에 대한 경고까지.

특히 자신과 아빠를 등지고 떠난 엄마를 찾아 방황하는 아빠에게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그거밖에 없는 사람”이라며 원망하면서도, 그게 평생을 책임지려는 남자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민선’이 아빠를 이해하는 장면에서는 객석 여기저기에서 눈물을 훔치는 관객의 모습도 슬쩍슬쩍 엿보인다.

다소 연극적 요소가 강한 이 작품을 뮤지컬로 완성시키는 것은 지현수 음악감독이 빚어낸 음악이다. 밴드 ‘넥스트’의 멤버인 그는 작품의 특색에 맞는 19곡의 넘버를 요소요소에 배치해 자칫 산만하게 전개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음악으로 보강해냈다. 가슴을 짠하게 울리는 감성적인 레퍼토리 외에도 파격적인 비보이 안무와 어우러지는 랩송은 절로 박수를 이끌어낸다.

공연이 막을 내리고 객석에도 조명이 하나둘 켜질 즈음, 문득 언젠가 호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스친 듯 떠오른다.

“너희 엄마가 젊었을 때 말이다. 온 동네 청년들이 너도나도 기웃기웃 대는데, 그중에서 날 택한 이유가 뭔지 아냐?”

스피커에선 다시 송창식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극장을 빠져나가는 관객들의 입술에도 다시 ‘담배가게 아가씨’가 물린다. 박형준, 김보현, 김한나, 이나현, 최근창, 정지혜 등이 출연한다. 오는 28일까지 대학로 뮤디스홀에서 관객을 만나고, 3월부터는 자리를 옮겨 브로드웨이 아트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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