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올리고 지급연령 높이는 단순 정책 외 제도적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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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도별 급여수급자 현황 (2012년 11월 기준)

기금 규모 세계 4위에도 고갈 위기
"내 국민연금 깡통될라" 걱정이 불신으로
고소득 계층, 보험료↑ 급여↓ 파격 주장도

[투데이코리아=정단비 기자]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에 세금이 아닌 국민연금 보험료를 전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이 퍼지자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 17일 '한국일보'는 보건복지부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기초연금 도입 관련 인수위 최종안 개요'에 매년 10조원가량 소요될 기초연금 재원의 12% 또는 22%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충당하고, 387조원가량 쌓여있는 현재의 국민연금 기금에는 손대지 않겠지만 내년부터 걷히는 보험료 일부를 기초연금 재원으로 쓰겠다는 방안이 사실상 확정됐다는 보도를 했다.

이에 인수위는 "현재까지 결정된 바 없다"고 부인했지만, 언제 고갈될지도 모르는 국민연금을 기초연금에 전용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국민연금폐지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강력한 거부감을 표하고 있으며,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겉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에서는 국민들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타계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몸집을 줄이고, 기금고갈 해법을 찾아야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앞서 '2011 국민연금 가입기간별 가입자 장기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기금소진이 예상되는 해는 2060년으로, 이 때 2008 추계에 따르면 214조원 적자로 예상됐으나, 2011 추계에선 이보다 68조원이 더 많은 282조원의 적자가 발생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중순 국회예산정책처는 "예상보다 7년 빠른 2053년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현재 일본의 경우, 연금재정 악화로 20대는 낸 돈보다 적은 연금을 받는 상황에 부딪혔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취임을 앞둔 박근혜 정부는 근로자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늦추는 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납부시기 및 향후 받을 연금액을 늘려 2060년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 고갈시기를 오히려 앞당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5년간 국민연금 납부를 더하게 되면 납부액은 많아지지만 그만큼 향후 받을 수령액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현 세대가 미래 세대가 받을 몫을 미리 당겨 받고 있는 혜택을 누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현재 수급자들이 낸 보험료의 수백 배를 받는 불합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구조로는 연금의 존립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기금 규모 380조원로 세계 4대..GDP 30% 이상 '고인 돈'
계속적인 목표수익률 달성 실패 vs 전 이사장 "투자대상 다변화 필요"

지난해의 경우 국민연금이 걷어들인 보험료는 27조5000억원 중 급여가 3분의1인 9조8000억원이 소비됐다. 실질적으로 금액은 17여조원이 새로 적립된 셈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현재 기금 규모 380조원이 넘는 세계 4대 연기금으로 성장했지만, 너무 많은 돈을 굴려야 하는 탓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도 어려워졌다. 웬만한 한국의 우량기업치고 1, 2대 주주 명단에 국민연금이 안 올라 있는 곳이 드물어,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몸집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하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넘는 돈이 경제활동에 쓰이지 않고 기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18일 발표한 '2012년도 국민연금기금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민연금 자산은 392조9244억원, 부채는 9567억원으로 나타났다. 순자산은 391조9677억원으로 지난해 말 348조8677억원에 비해 43조1000억원(12.4%) 증가했다.

이와 함께 예상 수익률 '뻥튀기' 등 해마다 목표수익률 달성에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급속한 고령화로 오는 2060년에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우려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10월까지 1년 누적 수익률이 6.26%로 목표치(6.50%)를 하회하고 있어 7년 연속 미달이 유력하다.

지난해 10월4일 이학영 민주통합당 의원이 공개한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은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와 스페인, 아일랜드, 이탈리아에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3728억원에 달하는 대체투자를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다 전통적 투자상품인 주식과 채권까지 더하면 국민연금의 유럽 재정위기국가 투자 잔고는 1조1000억원에 달한다.

앞서 국민연금이 국회에 보고한 유럽 재정위기국투자 내역에 따르면, 이른바 PI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에 대한 주식·채권 투자액은 7200억원이며, 이같은 투자 규모는 6월말 기준 장부 잔고로, 원금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나 국민연금공단은 원금 규모 공개를 거부했다.

지난 2011년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이 은행에 돈을 맡겨 놓은 것보다도 수익률이 낮은 2.31%에 그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수익률 하락의 주원인으로는 주식을 투자를 꼽을 수 있으며, 국민연금의 주식은 유럽재정위기 등에 따른 주가 하락으로 국내주식 투자에서는 -10.15%, 해외주식 투자에서는 -6.97%의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8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헤지펀드와 상품 등 다양한 곳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제한이 풀려야 한다고 밝혔다. 위험성이 높다는 인식 때문에 국민연금의 투자가 제한돼 있다는 것.

전 이사장은 "투자 대상을 다변화해야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며 "기금운용 수익률이 1% 올라가면 기금고갈 시기를 10년가량 늦출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수익률을 목표치를 하회한 국민연금에 전 이사장의 말처럼 위험성 높은 투자의 제한을 해제한다면, 국민들은 더욱 거센 반발을 하며 불안에 떨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방법이 아니라도 고여있는 엄청난 금액을 굴릴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부과 대상 소득 상향 조정", "세원의 다양화" 주장
미래세대에 부담 가중시키는 구조적 해결 필요

지난 2011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40년 한국의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9.38세로 90세 턱 아래까지 치닿게 된다. 2011년 현재 81.2세보다도 8살가량 더 늘어난 초고령 사회가 된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3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국민연금 제도 개선을 주제로 경제정의실천연합이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고소득 계층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높이고 급여는 깎아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날 김진수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소득비례 연금의 성격에서 벗어나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행 보험료율을 유지하면서 부과 대상 소득의 상한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해 연금 수입을 늘려야 한다"고 국민연금 도입시기보다 4배 높아진 평균 소득에 맞춘 개정을 주장했다. 월 389만원에 불과한 소득 상한을 월 8719만원까지 끌어올리자는 말이다.

지난 2007년 법 개정 이후부터 국민연금은 실제 소득금액(하한선 22만원, 상한선 360만원)의 9%를 보험료로 부과하였고,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여 보험료 하한선과 상한선을 조정한 결과 현재 하한선은 24만원이고, 상한선은 389만원이다.

하지만 이는 월수입이 1000만원인 사람과 월수입이 389만원인 사람이 같은 금액의 세금을 내고 있어,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또 국민연금이 연금수급 연령을 단계적으로 늦출 것이라 발표한 가운데, 김 교수는 "보험료를 올리거나 급여를 깎고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늦추는 등의 단순한 정책적 접근보다는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해 최저연금제와 연금액 상한제를 도입해 재정 안정화를 이루도록 하는 방안이 가능하다"며 "장기적으로는 최대 급여를 최저 급여의 2배 수준으로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고 연금고갈을 늦출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국민 반발 등을 고려할 때 정부가 이제 추가적으로 연금 수령 시기를 더 늦추거나 소득대체율을 떨어뜨리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월소득의 9%인 국민연금 납부액을 13% 이상으로 높이는 추가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논의 과정에서 세대간의 진통이 예상된다.

지난 11일 국민연금연구원이 펴낸 '국민연금 세대 간 회계, 방법론 및 모형개발' 보고서에서는 2008년 이후 태어나는 미래 세대 전체를 한 명의 개인으로 가정해 계산한 결과 이들의 생애순부담률은 해마다 높아져 2025년 10%를 넘어 2055년 최고 23%까지 치솟고 이후 19% 수준을 이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애순부담률은 순소득 대비 국민연금 보험료 비율을 말한다.

이어 2008년기준 18세 가입자는 평균 2570만원 정도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었으며 계산상으로 현재 세대는 모든 연령이 낸 연금보험료보다 2~10배 많은 급여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미래세대는 평생 소득의 약 5분의 1을 세금이나 보험료로 내야하는 등 막대한 부담을 떠 안게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최기홍 연구원은 "국민연금의 기금소진 이후 일반재정으로 국민연금의 당기 수지차를 지원할 여지는 크지 않다"며 "국민연금 보험료는 일종의 노동소득세이므로 국민연금에 대한 재정지원에는 소득과세 보다는 소비과세와 소득과세의 조합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는 등 세원의 다양화가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올해는 5년마다 돌아오는 국민연금 개편을 결정하는 해다. 이렇듯 서로간의 입장차가 분명한 상황에서 새정부는 현 세대와 미래 세대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국민연금 딜레마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이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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