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 대처 미숙 문제점 지목…北 이례적인 행보도 한몫

[투데이코리아=김용환 기자] 라오스에서 추방된 꽃제비 출신 탈북자 9명이 이미 북송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부의 무성의한 대응에 대해 비판이 일고 있다.

이들의 탈북을 도왔던 인사들이 각종 언론을 통해 그간의 행적을 밝히면서 정부의 미숙하고 잘못된 대처를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이들이 북송된 사실조차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아무런 정보가 없었고 이에 어떤 대응도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5월 29일 오전까지만 해도 탈북자 9명의 북송여부에 대해 알지 못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미 탈북자들은 28일 평양으로 북송됐음에도 불구, 탈북자들이 이미 베이징을 떠나 평양으로 들어가 있던 시각까지 우리 정부는 이들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29일 오후 5시가 되자 “여러 방법으로 사실관계를 점검해본 결과 탈북자들이 북송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지난 27일 정부가 이번 사건 대응을 위해 외교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 24시간 가동에 들어갔다고 했지만 아무런 해답을 찾지도 못했던 것이다.

정부, TF 구성 24시간 가동 돌입했지만 무용지물
“라오스 한국 대사관, 18일간 한 차례 면회도 없어”

외교부와 라오스 한국 대사관의 초동 대처가 미숙했던 점도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 북한 인권단체는 29일 외교부 청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현지 선교사가 두 차례에 걸쳐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에 긴급개입 요청을 했으나 한국대사관은 이들이 이민국에 18일간 수용돼 있는 동안 단 한 차례 면회도 없었다”며 “탈북 고아들을 내버려둔 대사관을 조사하고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대사관은 “인계가 가능할 듯하다” “조금 더 기다려달라”는 라오스 당국의 말만 믿는 미숙함을 보이기도 했다.

외교부는 5시간이 지난 오후 6시 라오스로부터 중국 추방 사실을 통보받고 나서야 부랴부랴 장관 주재 대책회의를 여는 등 졸속·늑장대응에 나섰다. 29일 항의 집회에 나온 선교사 어머니 김연순(66)씨는 “그동안 영사관 측이 전화를 제대로 안 받아 아들이 나를 통해 3자 연락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했다.

반면, 정부가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던 18일간 북한 당국은 한국 정부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북한은 라오스가 우리 정부에 “기다려달라”며 시간을 버는 동안 여행통과증을 준비하고 보위부 요원을 급파하는 등 철저한 사전 준비를 했다. 여행통과증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10일짜리 단체비자를 발급받으며 중국의 개입 여지도 차단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북한은 육로 대신 당당히 비행기를 타고 중국 쿤밍과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향했다.

北, 다수 요원 투입 및 항공편까지 동원
일부 언론 “납북 일본 여성 아들 포함됐을 가능성”

북한은 이번 사건과 관련, 그간의 행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한 당국자들이 호송해 27일 비행기 편으로 라오스에서 중국 윈난성 쿤밍(昆明)으로 이동한 탈북자 9명은 27일 오후 11시쯤 베이징에 도착한 뒤 28일 낮 평양행 고려항공 편으로 북송됐다. 비행기를 이용한 호송 과정에는 9명 의 북한 당국자가 라오스에서 베이징까지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다수의 요원과 항공편까지 동원해 탈북자를 북송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같은 북한의 모습에 외교가에선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적으로 나오고 있는 주장이 이번 탈북 청소년들 가운데 한국이나 제3국에 넘겨지면 안 되는 인물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탈북자 9명 가운데 납북된 일본인 여성의 아들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에 정부는 “외교루트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일보는 30일 납북 일본인 마쓰모토 교코(松本京子)씨의 아들인 문철(23)씨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 인터뷰를 전하면서 “북송된 9명 중 23세의 청년은 일본인 마쓰모토 교코가 납치된 뒤 북한에서 낳은 아들”이라며 “이 사실이 알려지면 국제적인 외교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매우 정교하고 전략적으로 북송을 추진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본 현지 언론들도 “강제 북송 탈북 청소년 중 1명이 마쓰모토씨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산케이 신문은 30일 라오스에서 북한으로 강제 추방된 탈북고아들 가운데 일본인 납북자의 아들이 있다는 한국 일부 언론의 보도를 전하면서 “그 당사자는 1977년 일본 정부에 납치피해자로 인정받은 마쓰모토씨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도 “북송된 탈북 청소년이 마쓰모토씨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또 다른 분석으로는 김정은 집권 후 정권 차원에서 ‘동남아 루트’를 손보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간 가장 안전하고 빈번하게 이용됐던 탈북 경로를 차단하려 했다는 것. 이 때문에 이번에 적발된 9명에 대해서는 북한이 압송 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하거나 본보기로 처형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를 엄중 조치해야”
정부, 현지 대사관 대처 및 근무태도 전면조사 돌입

현재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면서 변명만을 늘여놓고 있다. 정부는 “우리 대사관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북측이 이례적으로 라오스 정부를 강하게 압박한 특수 사례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번 문제는 북한의 치밀한 전략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라오스, 중국 정부 모두 함부로 손을 쓸 수 없었던 상황을 보면 정부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는 주장도 있다. 우선, 북한은 이들의 신병 인도를 라오스 측에 강하게 압박해 라오스가 거부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북한은 이들이 라오스에서 추방되기 전 중국행 단체 비자를 받아 중국에 입국했다. 이들의 자격이 불법 월경자가 아닌 합법적인 여행자 신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중국 역시 이들에 대한 신병을 확보할 방안이 없었다. 한국 정부가 라오스, 중국 정부의 조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라오스 현지 대사관이 보인 무사안일한 근무태도는 지탄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정치권에선 여야가 한목소리로 진상조사와 제대로 된 사태 수습을 촉구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더욱 외교적 노력 강화해서 다시는 이런 일 나오지 않도록 하고, 외교전선에 소홀한 점이 있었으면 관계자를 엄중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 역시 “(탈북민의) 통상적인 루트인 동남아지역의 대사관에서 전혀 훈련되거나 준비되지 않은 매뉴얼로 대응했다는 것은 우리 외교에 여러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 라오스 현지 대사관의 대처와 근무태도에 대해 전면조사에 돌입했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를 현지 대사관의 전형적인 무사안일로 판단하고 강력한 대책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는 이번 사건을 유엔난민기구(UNHCR) 등 국제기구에 제기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