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 전도사’ 정운찬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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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어내기식’ 제품공급으로 논란이 된 남양유업 사태와 대기업 임원이 기내식을 트집잡아 항공사 여 승무원을 폭행한 ‘포스코 라면 상무’ 사태는 별개의 사건이지만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사진/인터뷰중인 정운찬 전국무총리]

[투데이코리아= 이정우 기자] 30대 영업사원이 50대 대리점 점주에게 욕설과 폭언을 일삼고 이른바 ‘밀어내기식’ 제품공급으로 논란이 된 남양유업 사태와 대기업 임원이 기내식을 트집잡아 항공사 여 승무원을 폭행한 ‘포스코 라면 상무’ 사태는 별개의 사건이지만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로 전형적인 갑을관계로 인해 생긴 사건이라는 점이다. 이런 갑을관계와 관련된 각종 부작용들이 남양유업 사태와 라면상무 사태를 거치면서 소위 대기업이라 불리는 갑의 횡포에 대한 실체적 증언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13년 대한민국은 갑을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비정상적인 갑과 을의 관계를 정부가 나서서 청산시켜야 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모두가 공평하게 성장할 수 있는 동반성장만이 갑과 을의 불편한 관계를 청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정운찬 전 국무총리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제 40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정 전 총리는 2010년 8월 총리직을 내려놓고 그해 12월부터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동반성장에 대한 홍보는 물론 현실적인 동반성장을 이끌어내고자 부단한 노력을 했다. 또한 지난해 3월에는 위원회를 그만두고 대신 직접 사비를 들여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해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갑과 을의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고 있는 대한민국을 동반성장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을 만났다.

갑을관계,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구조...“재벌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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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이사장은 갑을관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갑을관계는 오래전부터 양극화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힘이 있는 갑이 힘없는 을에게 무엇인가를 강제한다면 을은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근본적으로 갑과 을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고 지적한 정 이사장은 “대한민국의 갑을 관계는 어떻게 보면 불공정거래 자체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에게 서면으로 주문하지 않고 구두로 주문을 하며, 납품가 후려치기는 기본이고 대금 결제시 어음 결제를 하는 등 불공정거래에 해당하는 행위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위원장 재임시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의 기술력을 교묘하게 빼앗는 행위 즉 기술탈취를 할 수 없게 ‘기술임치제도’를 만들어 중소기업들이 힘들여 개발한 소중한 기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정 이사장은 남양유업 사태와 라면상무 파문은 전형적인 갑을관계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며 갑을관계가 없어져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갑을관계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이 일거리를 줄 때 최소 2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안정적으로 줘야하고, 을이 갑한테 물건을 제공할 때 원자재 값이 오르면 자동적으로 올려주는 시스템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갑을관계의 부작용이 사라질 것이라 밝힌 정 이사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에는 격차가 크지 않아야 하는데 한국은 너무 격차가 크다며 이를 바로 잡는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동반성장, 투자가 필요하다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을 위해 투자가 필요하다는 투자론을 제시했다. “한국 경제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직시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투자가 부족한데 투자가 안되면 성장을 할 수 없다”며 “이를 위해서는 투자 부진 요인을 찾아내서 살려야 하는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나눠서 볼 때 대기업은 돈이 많으나 투자대상이 부족하고 중소기업은 투자대상은 많으나 돈이 없다. 그렇다면 대기업한테는 첨단·핵심 기술을 제공하고 중소기업한테는 돈을 제공하면 되는 것”이라 밝혔다.

또한 창의적인 교육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기적으로 한국의 교육을 혁신해서 온 국민이 지금보다 훨씬 더 창의적으로 돼야 한다. 창의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장은 이와 관련해 유대인의 사례를 들었다. 유대인들은 질문을 많이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세계 최강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질문은 호기심이 있어야 하는데 호기심은 독서하고 여행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교육혁신을 통해서 전 국민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한편 새로운 일을 했을 때 성공하면 크게 칭찬하고 실패하면 페널티는 적게 주는 패턴으로 바뀌어야 창조 경제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갑을관계 청산을 위한 전제조건..중소기업 육성해야

갑을관계 청산을 위해서는 갑과 을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정 이사장은 관계 재설정을 위해서는 을의 위치에 있는 중소기업에 돈이 흐르게 해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법은 많지만 무턱대고 자금을 투입하게 되면 인플레이션 유발 위험이 있고 세금으로 충당하고자 하면 조세저항이 있을 수 있다”며 그 해법으로 초과이익공유제와 중소기업 적합업종선정, 정부발주 사업 80% 이상 중소기업 직접 발주 등을 내놓았다.

이중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과 마찰의 원인이 됐던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정 이사장은 “한국은 수출을 해야 사는 나라인데 수출하려면 물건이 좋거나 값이 싸다는 장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물건을 잘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때문에 기업들이 수출을 하기 위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원가절감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가져 가는 것인데 손쉬운 원가 절감은 결국 납품가를 비정상적으로 후려치는 것”이라며 “여기서 크게 남는 이익이 바로 초과이익인데 이것을 협력중소기업에게 나눠주는 개념이 초과이익공유제”라고 설명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한국 경제 성장의 ‘마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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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이사장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이미 1920년대부터 초과이익공유제가 시행되고 있다. 영화를 제작하는 할리우드 에서는 배우들에게 일반적으로 개런티를 주는데 이 개념은 작품의 성공 여부를 미리 알 수 없으므로 적은 돈으로 계약을 하고 작품이 성공하게 되면 그만큼의 이익을 나눠준다는 개념이다.

또한 세계적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와 롤스로이스 사례를 든 정 이사장은 “이들 역시 초과이익공유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또 최근에는 미국의 자동차노조에서 자발적으로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했는데 임금인상을 요구해 임금이 올라가면 당장은 좋지만 향후 미국 자동차 기업들이 도요타와 현대에 밀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대신 경영 성과가 좋으면 보너스를 달라고 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즉,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들의 이익을 빼앗아 나누자는게 아니라 회사와 구성원들이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게 되면 그 이익 중 일부를 회사와 구성원이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으로 정 이사장은 “대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시행하고 있는 성과급 제도의 대상을 협력회사인 중소기업으로 확장하자는 것”이라며 “그렇게 된다면 상당한 자금이 중소기업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그게 투자가 되고 투자가 늘면 생산으로 이어지고 생산이 늘면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이것이 성장의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경제의 성장 촉진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는 동반성장의 지름길...
최고 지도자의 확고한 의지가 중요
“재벌들 빨리 정신차려야 한다”

재벌개혁 역시 경제민주화라는 정 이사장은 “경제는 하나의 교환체계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회사와 근로자는 서로에게 돈과 노동력을 교환하는 것 처럼 교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교환 조건이 나왔을때 별 손해없이 받을까 말까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경제민주화”라고 말했다.

반면 동반성장에 대해서는 경제민주화가 좁은 개념이라면 동반성장은 좀더 큰 개념이라고 했다. 즉, 경제민주화는 경제적인 부분에 한정돼 있다면 동반성장은 빈부격차 해소, 도농간, 지역간, 수도권과 비수도권간, 남녀간, 세대간, 남북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반성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동반성장에 대해 더불어 함께 잘 사는 것, 경제성장을 해치지 않으면서 분배를 공정하게 하는 것, 경제 전체의 파이를 크게 하되 분배를 공정하게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정 이사장은 “경제민주화와 동반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재벌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며 빌 게이츠나 워렌버핏 같은 외국 재벌들의 기부나 사회환원 사례처럼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재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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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이사장은 이어 “재벌들은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특히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우리나라 사회가 사회주의는 아니지 않느냐며 비판하고 있지만 자신들만을 생각하는 자세이다. 특히 외국 재벌들은 자신들이 더 살기 위해서라도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실천하는데 우리나라 재벌들은 세계적인 흐름을 읽지 못한다. 재벌들이 정신을 빨리 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벌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지만 우리나라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이와함께 “동반성장은 최고 지도자의 의지도 중요하다”며 “대통령과 대통령 측근들의 확고한 의지와 정확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며 정부의 역할론도 강조했다.

동방성장 위해선 무엇이든지 할 것...

정 이사장은 정치 복귀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동반성장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든지 할 것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신당 창당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안철수 의원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는 “지난 대선 당시 안 의원을 지지하고 심지어는 구애한다는 기사들조차 나왔었는데 이는 오해다.

안 의원과는 딱 두 번인가 30초 정도 잠깐 인사한 것이 전부”라면서도 “안 의원이 삼성과 LG 등 재벌들을 비판하고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등의 일련의 행동들을 보고 대중소기업간의 문제를 비교적 잘 인식하고 있어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정도의 생각과 표현은 꼭 개인적으로 지지하거나 좋아한다는 게 아니어도 할 수 있는 표현이지 않은가”라며 선을 그었다.

이와 함께 정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 방미 수행 중 성추행 혐의로 사퇴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자신을 거칠게 비판한 것과 관련, “지난해 대선 당시 문재인 전 후보를 지지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나를 비판했으나 나는 문 전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나서서 부인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어서 해명하지 않았다”고 짤막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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