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는 보통 격식을 갖추어 마셔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어쩐지 즐기기 위해서는 상당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복잡한 라벨을 읽는 법 하며, 빈티지나 와인의 생산지나 기타 등등 기본 지식으로 한 자락 깔고 있어야 하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닌 듯 하다. 가격도 상당히 '센'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쩐지 명칭마저 포도주가 아닌 와인이라고 해 줘야 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러나 그런 반면, 가격이 저렴하고 가격 대비 맛이 훌륭한 품목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싸니까 좀 덜 격식을 갖춘 자리에서도 마실 수 있고, 더러 자주 마실 수도 있는 술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와인을 '데일리 와인'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학술어처럼 딱 개념이 잡힌 단어는 아니지만, 대략 한 병에 7,000원에서 20,000원선의 부담없는 가격대의 포도주를 말하는 것이다. 이 정도 급에서 마음에 드는(입맛에 맞는) 포도주를 발견한다 치자. 거의 매일 마셔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매일 마셔도 되는 포도주라 하여 데일리 와인이라 애칭을 붙인 것이라 한다.

괜찮은 빈티지를 자랑하는 고가의 포도주도 물론 가치가 있겠으나, 이런 '데일리 와인'의 경우 평생 가 봐야 몇 번 마실 일 없는 '전설 속의' 고가 포도주를 능가하는 장점이 여럿 있다. 가격 대비 훌륭한 성능이 주는 만족감에다가, 항상 가까이 접할 수 있다. 또 딱딱하게 격식을 갖추거나, 공부까지 해 가며 마셔야 하지 않으니 이 또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어느 날 싼 가격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골라 봤거나 혹은 입소문에 골라 봤건만, 의외로 괜찮은 포도주를 발견했다는 횡재한 듯한 기분을 주는 것도 데일리 와인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평소에는 여의도에 몰려 뭘 하고 있는지 별세계 사람들 같던 선량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펴는 계절이다. 더러는 승천하는 꿈을 안고 출사표를 던지기도 하고, 더러는 그 아래 줄을 서기도 한다. 특정인은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다른 캠프로 줄을 대기도 하고, 입맛엔 맞는데 세가 약해 할 수 없이 합종연횡들을 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대통령감으로 언급되는 거물급 몇 분 외에도,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혹은 전직 장관들이, 혹은 지역 사회 일꾼들이 그 아래 헤쳤다가 모였다가를 반복한다.

그러니까, '잠룡'으로 불리는 불과 10명이 안 되는 높으신 분들 외에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나름대로 역사의 한 장에서 한 자락 포부를 펼 기회를 노리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는 얘기다. 마치 매년 보졸레 누보(햇포도주)가 쏟아져 나오는 형국과 유사하다.

대선이 가까워 오고, 각당이 자체 대선후보를 세우기 위한 경선을 치렀거나 치르는 중이다. 그 와중에 수많은 말이 오가고, 수많은 정치적 계산과 게임, 혹은 아이디어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대부분 정치적 모략이나 권모술수라 몰아세운다면 또 그만이겠으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퍽이나 괜찮은 경세지략이나 구국의 결단이나 촌철살인의 발언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 작품을 쏟아낸 정치인을 또 유심히 되짚어 보면, 또 의외로 중진 인사가 아닌 변방의 이름없는 정치인이거나 작은 정당의 대변인이거나 혹은 경력이 일천한 지망생인 경우도 본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가 물론 대선의 가장 기초적인 대목이겠지만, 대선의 한켠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란 이런 의외의 정치인들을 발견해 내는 부분에도 있는 것이다.더욱이 이런 사람들을 발견하는 데엔 큰 돈이 들지 않는다. 또 여건상 어렵지도 않다. 다른 때 같으면 정치인들이 어렵게 느껴지거나 혹은 그들의 정보를 접할 기회나 계기가 적거나 했겠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아닌가. 공중파 방송만 수신할 수 있으면 정보가 거의 무료로 쏟아져 들어오는 터이다.

대선 주자들과 그 아랫 사람들, 그 아랫 사람의 아랫 사람들이 서로 말과 생각을 쏟아내느라 분주하다. 그 중에 뭐 썩 괜찮아 보이는 게 없는지 골라 보면, 그랬는데 또 이 기대를 크게 걸지 않은 정치인이 의외로 또랑또랑하다면, 그래서 마음에 들면 내일은 또 이 정치인이 무슨 소리와 아이디어를 내놓는지, 내일의 정치 현안엔 또 무슨 방편으로 맞받아칠 건지 매일같이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더러 그 반한 정도가 심해지면, 그 정치인의 주군이 되는 잠룡급 정치인은 또 누군지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대선이 가까운 지금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수많은 포도주 중에 매일 같이 마셔도 늘 새로울 '데일리 와인'을 발견해 나가는 것처럼, '데일리 스테이츠맨'을 찾아보고 그 덕에 정치를 가까이 즐겨볼 기회가 바로 대선 정국이 아닐까 한다.그러나 현재 정치판은 각당끼리, 혹은 각당 내의 후보군과 그 아래 늘어선 정치인들마다 싸움으로 해가 뜨고 달이 지고 서로 물고 뜯느라 정신이 없으니, '좋은 뜻에서' 매일 같이 근황이 궁금하거나, 매일 같이 들여다 보아도 정신 건강에 이로울 만한 '데일리 스테이츠맨'을 발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임혜현 /투데이코리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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