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돋움하는 고혹‥바람이 지나간 자리의 파문


▲작품=이미지 숲, 90×60㎝ mixed media on paper, 2012

::: 숲의 향연에 스미는 순례의 발자국
::: 발돋움하는 고혹‥바람이 지나간 자리의 파문

[투데이코리아=문화칼럼리스트 권병준] 숲은 온통 갈잎으로 채워져 있는 듯 했다. 높고 깨끗한 하늘은 더욱 드넓고 백년을 살아 온 나무들은 굵직한 바리톤으로 연가(戀歌)를 흥얼거렸다. 어느 가난한 철학가가 밤새 나뭇잎에 새긴 행복론이 바스락거리며 바람에 날아갔다. 순간 깨 알 같은 마지막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들리는가, 지금 내가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지….’

▲사진=서양화가 윤수보

낭만의 선율처럼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바람에 실려 거무스름한 낙엽위에 내려앉는다. 밤의 관능 혹은 비애를 생명력으로 그리려했을까. 산뜻한 아침의 센스처럼 순간 햇살이 눈부시게 숲으로 쏟아졌다. 그때 더욱 뚜렷하게 각인되는 저 검은 바탕의 진노란 은행잎 하나의, 품격!

숲, 빛의 색채 경건의 시간

자작나무 군락(群落)이 모여 있는 구릉너머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성당의 종소리가 숲으로 스며들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때면 매일, 새들은 청아하고도 아름다운 멜로디로 노래를 하며 종탑으로 모여드는 것이었다. 성당 아래엔 소박한 삶의 평온을 즐기는 사람들의 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새들의 합창이 끝날 즈음 마을 한가운데 대리석으로 조각한 어린이들의 함박웃음 부조(浮彫)가 몹시 수줍은 듯 볼그스름한 색으로 물들었다. 직선과 곡선, 자유자재로 휘어지는 빛이 빚어내는 전경은 경건과 가슴 푸근한 정감의 시간으로 이끌었다.

숲속에 황금빛 석양이 양탄자처럼 보드랍게 드리운다. 이탈리아 작곡가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3~1945)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간주곡’이 우람한 백양나무들 사이 부드러운 저녁햇살에 피어오르는 안개사이로 흐른다. 마치 트럼펫 같은, 가냘픈 코넷(Cornett)이 뿜어내는 소리는 가지의 새들을 숙연하게 둥지로 인도하고 저녁 강물처럼 평화롭게 가슴에 닿았다. 뭐라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 올 듯, 희끗한 노년의 주름진 눈가에 아롱지는 첫사랑의 얼굴이 아른거리며 사뿐히 걸어오는 듯, 애절하게 사랑을 부르는 소리가 숲 속으로 번져갔다.


▲작품=230×305㎝ watercolor on papers, 2010

관용과 여유, 프랑스 뱅센느

서양화가 윤수보 작가는 지난 1993∼1996년까지 프랑스 파리 동쪽근교 뱅센느(Vincennes)에서 숲과 빛과 색채가 빚어내는 눈부신 아름다움의 조형세계를 탐구했다. “자그마한 소도시다. 뱅센느 숲과 그곳 성곽의 풍경에 앉아있으면 명상과 치유의 행복감에 젖었다. 타인에의 관용이 몸에 밴 사람들의 여유와 인간과 숲의 찬란한 일체(一體)의 조화로움을 보았다.

나는 그것을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솜사탕같이 부드럽고 달콤한 진실로 보았다. 조금은 내밀하며 그러면서도 신선한 호흡으로 뿜어내는 참정신의 호흡에 나는, 매료됐다“고 했다.


▲작품=230×305㎝ watercolor on papers, 2010

그러면서 그는 “그곳엔 인상파와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지냈고 그들이 작업했던 작품들을 보고 많은 영감을 얻었던 소중한 체험시기였다. 나는 그곳에서 자연의 색채에 몰입했고 바로 그 하모니를 캔버스에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작가는 다도화랑, 예맥화랑, 유나이티드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29회 가졌다. 상해, 홍콩, 싱가포르, 뉴욕을 비롯해 화랑미술제, 소아프(SOAF), 아트쇼부산 등 다수의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작품=휴식, 110×110㎝ oil on canvas, 2012


▲작품=휴식, 110×100㎝ oil on canvas, 2012

물의 숭고한 儀式

가을 강(江)은 낙엽을 품는다.
평온이 흐르는 솔직한 물의 깊이는 나뭇잎의 일생을 기록한다. 그래서 물은 역사다.

햇살은 강바닥 어둠을 환하게 비추고 물과 잎이 공존의 시간으로 녹아들 때 환상적인 오묘한 색채의 율동이 또 다른 생(生)의 거름이 되는 순환을 맞이한다. 장엄한 의식(儀式)을 준비하고 있는 낙엽은, 찬연하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