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지나친 집중은 많은 부작용을 양산해왔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양날의 칼과 같기 때문이다. 특히 양날의 칼을 쥐는 절대자가 방종을 일삼는 통제 불가능한 부류라면 부작용의 규모가 대폭 확대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인류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운하 건설 등과 같은 잦은 토목 공사와 무리한 대외 원정을 일삼았던 중국 수나라의 폭군 양제가 대표적일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절대자의 방종을 견제할 소신 있는 견제자가 필요하다. 견제자는 직언을 망설임 없이 제기해 절대자의 궤도이탈을 방지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소신을 갖춘 견제자가 있는 상황에서 절대자가 유능까지 하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이런 긍정적인 상황이 국가의 황금기를 연 동력으로 작용한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3세기, 유라시아 원정에 나선 몽골족은 영웅 테무친에 의해 짧은 기간에 정복민의 위치로 도달했으나 넓은 영토를 다스릴만한 통치기술도 능력도 없었다. 이에 충신 야율초재는 칭기즈 칸(테무친)에 이어 제2대 칸으로 취임한 오고타이에게 "천하를 말 위에서 얻을 수는 있지만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없습니다." 라고 직언했다.

이는 말에서 주로 생활하는 유목민족의 특성을 유지하는 한 피정복민인 농경 민족들을 다스릴 수 없고 광대한 영토를 다스릴 수도 없다는 뼈아픈 일침이었다. 즉, 야율초재의 발언은 유목 민족의 정체성을 버리라는 매우 급진적인 발언에 속한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발언은 오고타이의 아버지인 테무친이 생전에 남긴 말과도 상반되는 것이었다. 테무친은 평생에 걸쳐 유목민족의 특성을 몽골족이 버리는 순간 몰락이 올 것이라 말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고타이는 야율초재의 급진적인 직언을 수용해 적극적인 한화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이렇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신하 야율초재의 존재 덕분에 몽골족은 자신들보다 훨씬 많은 피정복민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이후 야율초해는 여러 차례 오고타이에게 직언을 제기해 원제국의 태평성대에 이바지했다.

이러한 견제 원리의 중요성은 현대 대한민국의 정치 체제에서도 통용된다. 과거의 정치체제와 현대의 정치체제는 전제정치와 민주주의로 표면적으로는 다르다고 볼 수 있으나 권력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 유능한 견제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一脈相通)하기 때문이다.

현대 대한민국은 대통령 중심제를 정치체제로 채택해 행정부의 수장 대통령에게 막대한 권력이 집중된 구조다. 대한민국은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삼권분립(입법부-사법부-행접부)를 도입했으나 점차 삼권의 담합 가능성에 의심 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삼권들이 서로 견제한다는 본래 의도가 퇴색돼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임기가 단 5년뿐이고 중임이 불가한 것은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대통령이 취임해 추진하는 정책의 연속성이 담보되지 않는 까닭이다. 실제로도 우리는 이러한 전례들을 많이 봐왔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삼권들의 보이지 않는 담합과 정권에 따라 물갈이되는 정책들을 견제할 공중파 방송사들이라는 장치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공중파 방송사들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따르는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 공중파 방송사들이 최근 공정하고 균형적인 시각으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탓이다. 국민 대부분이 공중파 방송들을 통해 정치·경제·사회 등과 관련된 주요 뉴스들을 습득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특히 공중파 방송 중 KBS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KBS는 수신료 인상 조치를 ‘현실화’라는 프레임으로 포장해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물론 2,500원인 현재의 수신료가 33년 전에 책정돼 인상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는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이에 KBS는 수신료 현실화가 새로운 공영방송의 시작‘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KBS의 수신료 인상 조치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KBS가 그간 언론의 본 역할인 권력 견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 진정한 공영방송의 역할을 해왔다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수신료 인상을 제안하거나 이번 수신료 인상 조치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여타 선진국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양질의 컨텐츠에 대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분위기가 점차 조성되고 있다,

그러므로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인과응보(因果應報)라 볼 수 있다. KBS가 오고타이에게 직언을 제기한 야율초재와 같은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국민들은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고려해 KBS는 민의에 반하는 ‘수신료 현실화’보다 민의에 부합되는 ‘공영방송의 현실화’를 먼저 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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