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강정욱 기자] 작년 여름쯤이었다. 생소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강정욱 고객님, XX 보험 XXX 상담원입니다. 고객님을 위한 보험 상품이 준비돼 있습니다. 시간 괜찮으시면 설명해 드려도 될까요?"

전화를 받은 직후 거절의사를 표현하지 않고 머뭇거렸더니 긴 통화가 이어졌다. 이 통화에 의해 기자의 소중한 시간이 10분에서 15분 정도 날아갔다.

특히 그날은 주요 뉴스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던 날이라 기자는 한 중요한 기사를 붙잡고 씨름 중이었다.

하지만 그 전화를 받고 상담원과 입씨름을 하느라 업무 리듬이 무너져버렸다. 결국, 많은 추가시간을 업무 리듬 정상화에 따로 할당해야 했다.

이러한 가운데 금융당국이 최근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했던 텔레마케팅(TM) 영업 한시적 금지 조치(이하 한시적 금지)를 전면 백지화해 일각에서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된 TM은 텔레폰과 마케팅이 합쳐진 단어인데 종류로는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가 있다.

아웃바운드는 사측이 무작위적으로 잠재고객에게 전화를 돌려 판매 상품을 설명한 후 계약을 유도해내는 방식으로 상당수 금융사가 주요 수익 창출 루트로 삼고 있다. 인바운드는 잠재고객이 사측에 전화를 거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다.

보험회사의 경우 아웃바운드 방식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기자가 만난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회사뿐만 아니라 TM 영업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금융사가 99% 아웃바운드 방식을 사용한다."라며 "초기에는 해당 기업에 가입된 상품의 고객들을 대상으로만 아웃바운드 방식을 사용하다가 수익 창출 한계점에 봉착해 이와는 무관한 개인정보도 수집하게 됐다."라고 털어놨다.

개인정보 수집 경로에 대해서 관계자는 "물론 합법적인 루트도 있긴 있으나 불법의 범주에 속하는 비중이 절대적일 것이다. 정보 유출 시장이 음성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업계에서도 전체적인 규모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 이런 사실이 불문율로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결국 현재 행해지고 있는 TM 영업 중 불법적인 방식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셈이다.

이 때문에 이런 TM 영업의 내막을 아는 당국으로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면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견지했어야만 했다.

경제학의 기본원리와 같이 개인정보에 대한 국내 수요가 줄어든다면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공급이 줄어들 공산이 컸던 탓이다.

그러나 당국은 전면 영업 금지가 아닌 2개월 동안의 한시적 금지만 발표했다. 금융당국의 일방적인 결정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나 관련 업계를 충분히 배려했다고 추측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10만 명에 달하는 TM 영업 종사자들은 '생계유지가 막막해졌다.'라는 원성을 제기했고 미국계 금융회사들이 한미 간 통상문제로 비화시킬 수도 있다는 소문이 떠돌면서 사태가 급변했다. 언론은 이 과정에서 적극 TM 업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된 끝에 결국 박 대통령이 나서서 TM 업계의 고통을 고려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아마도 이번 금융당국의 한시적 금지 조치가 작년에 야심 차게 발표한 '고용 로드맵 70%'에 위배된다는 자체적인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시발점으로 금융당국은 한시적 금지 조치마저 백지화하는 것으로 급선회했다. 사실상 당국이 TM 업계의 요구와 내부의 문제로 인해 '백기 투항'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불법적인 방식으로도 개인정보를 취득해 영업에 활용해 온 TM 업계와 금융사들의 자성론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이번 조치에 TM 업계는 반색함과 동시에 금융당국의 정책이 조석반개라며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는 언론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금융당국의 조치로 인해 피해를 본 TM 업계의 고통에는 대변자 역할을 자처했던 반면 TM 영업 금지로 인해 이익을 받은 국민에 관련된 기사는 적게 보도된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언론의 균형적인 보도의 중요함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유념해야 할 것은 이번 금융당국의 백기 투항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집단은 TM 영업을 이용한 금융사들과 이들에게 개인정보를 유통해준 업자들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보장하려고 하는 것은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발생하는 TM 영업 관계자들과 유통업자들의 이익 보존인가 아니면 TM 영업에 시달리던 국민들의 이익인가?

이번 번복 결정으로 정부의 목적이 어떤 것인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결정으로 대다수 국민이 전자가 대책의 목적이 아니냐는 의혹을 품을 만한 자충수를 제공한 셈이 됐다.

그래도 아직까지 출구전략은 있다. 개인정보 유출을 통한 TM 영업을 근절할 수 없다면 개인정보 유출 시장을 양성적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이때문에 이번 정부의 결정에 실망감을 표현하는 것 못지않게 개인정보 유출 시장의 양성화가 이뤄질지 지켜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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