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으로 번질 가능성 배제 못해

정우택 논설위원
삼성그룹의 전 법무팀장으로 그룹 내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변호사는 29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이름을 빌려 삼성그룹이 자신명의의 차명계좌를 통해 비자금 50억원을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천주교 사제단은 김 변호사는 2006년 A은행 계좌에서 1억8천만원의 이자소득이 발생했는데 이를 연이율 4.5%로 계산하면 금액은 50억원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사제단은 이 계좌는 보안계좌로 분류돼 조회가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천주교 사제단은 50억원이 예치돼 있다는 김 변호사 명의의 A은행 계좌 1개와 관련 증권계좌 등 모두 4개의 은행계좌 번호를 제시했다.

김씨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삼성측은 해당 계좌의 돈이 삼성과 관계없는 돈이라고 밝혔다. 김씨의 통장에 50억원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돈은 삼성의 회사자금도 아니고 오너 일가의 돈이 아닌 제3자의 돈이라는 게 삼성의 주장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지난 8월과 9월경 그룹 전략기획실 고위 관계자에게 김 변호사 부인이 3차례에 걸쳐 협박성 편지를 보내왔고, 편지에는 삼성의 내부 비리를 알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 신문에게 밝혔다.

정치권의 핵폭탄으로 번질지도 모를 민감한 문제를 제기한 김 변호사는 58년 광주 생으로 광주일고와 고대 법대를 나왔다. 83년 25기로 사시에 합격했고 인천지검 검사, 부천지청 부부장검사로 일하다 97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 이사로 삼성에 영입됐다. 98년 재무팀 상무로 승진했고 2002년에 법무팀장을 맡았다. 그는 사장단 회의 등에도 참석해 에버랜드 문제 등 그룹의 큰일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삼성을 떠났다.

대선을 앞두고 여당인 통합신당의 정동영 후보와 야당인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혈투'를 벌이고 있는 시점에 왜 김 변호사가 삼성에 대해 포문을 열었는지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구구하다. 있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라는 사람도 있고, 뭔가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것도 삼성에 7년간 근무하면서 연봉과 스톡옵션 등으로 102억원을 받고, 2004년 퇴직한 후 지금까지 3년간 고문료로 매달 2천2백만원씩 받은 김씨 (삼성의 주장)라서 의문이 더 커진다. 돈과 관련해서는 혜택을 받을 만큼 받은 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 변호사가 돈 때문에 삼성에 포문을 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김 변호사의 주장대로 삼성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면 삼성을 떠난 직후에 세상에 알렸어도 될 것을 굳이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끄집에 냈느냐 하는 점이다. 의아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김 변호사의 말대로 자신이 삼성에서 법무와 관련된 일을 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이 조성되고 회계상의 비리가 있었다면 김 변호사 자신도 이번 폭로로 인해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의문이 남는다.

비자금 폭로 파문은 사실 여부를 떠나 삼성에게 큰 타격을 줄게 분명하다. 에버랜드 사건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삼성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하다. 비자금이 사실이라면 삼성이 국민적 지탄을 받고 법적인 조치를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비자금이 없음이 밝혀진다고 하더라고 삼성은 언론과 정치권, 국민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려야 한다. 삼성으로서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 변호사의 주장은 자칫 정치권으로 불똥이 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은 열린우리당이나 통합신당 등 진보 성향의 정당보다는 한나라당과 같은 보수 성향에 가까운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따진다면 한나라당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검찰이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수사에 나선다면 한때 한나라당과 삼성 간에 문제가 됐었던 오래된 거넥션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한나라당과 삼성이 싸잡아 욕을 먹을 수도 있고, 큰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다른 정당이라고 해서 이 문제로부터 100% 자유스러울 수는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 변호사의 주장은 삼성 자신에게 타격이 되겠지만 정치권에는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만일 어느 정당, 더 나아가 대선주자의 이름이 조금이라도 거론된다면 정치적인 치명상을 입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삼성에서 아쉬운 것 없이 돈과 힘을 행사하던 김 변호사가 왜 이 시점에서 비자금을 폭로했는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김 변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나 세력이 있는 것인지, 김 변호사가 이번 폭로를 통해 자신의 직업적, 정치적 입지를 세우려 한 것인지, 정말로 비자금과 분식회계가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삼성과 정치권은 필자가 던진 의문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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