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블린트 득점 시발점 롱패스 배급…빅리그 진출 '청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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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네덜란드에 충격적 대패를 당한 스페인

[투데이코리아=박한결 기자]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이 충격의 5:1 대패를 당했다. 네덜란드의 전력도 녹록치 않으나 그동안 스페인이 보여준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감안하면 이번 대회 최초의 이변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로벤과 반 페르시라는 세계 정상급 선수와 스네이더라는 훌륭한 꼭지점을 지닌 네덜란드는 이 막강한 삼각편대를 효율적으로 운용했다. 네덜란드의 삼각편대는 전형적인 골게터와 플레이메이커, 크랙형 드리블러라는 다양한 스타일의 유기적인 조합으로 파괴적인 공격 기회를 창출했다. 이는 사실 지난 남아공 월드컵때도 공격컬러를 없앤 실리축구적인 면모를 네덜란드는 드러난 바 있으나 이번 대표팀에서 신성 대일리 블린트라는 후방에서 삼각편대의 비상을 도왔다.

수비진영에서 대니 블린트가 효율적인 롱패스를 배급해주면서 네덜란드 선수들은 많은 숫자가 공격에 가담할 이유가 없어졌다. 배급이 끝난 후는 반 페르시와 로벤, 스네이더의 개인전술과 개인기량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삼각 편대 중에서 로벤의 활약은 기대이상이었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 때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로벤은 이날 경기에서 펄펄 날았다.

이날 스페인의 패착은 롱패스가 탑재된 네덜란드를 상대로 지나치게 수비 뒷공간을 올린 것이다.

전방압박과 원활한 공격작업을 위해 올라간 스페인 수비진들의 뒷공간은 로벤의 몫이었다. 로벤은 이날 경기 내내 스페인의 넓은 뒷공간을 안방삼아 절정의 경기력을 보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순간스피드와 드리블 능력을 자랑하는 그에게 스페인 수비진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갔다.

또한 원샷원킬의 반 페르시의 존재도 스페인 수비진에게 부담이 됐다. 반페르시는 이날 경기에서 별다른 찬스를 잡지 못했으나 유효슈팅 3번을 시도해 2골을 기록하는 절정의 골결정력을 보여줬다.

스페인 델 보스케 감독은 네덜란드 삼각편대에 수비 뒷공간이 철저히 공략당하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패배를 지켜만 봤다. 이미 판세가 늘리고 역전을 허용한 상황에서 내놓은 그의 교체카드는 측면 공격 강화와 부진했던 공격수 교체일 뿐이었다.

스페인으로써는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건재했던 푸욜의 부재가 아쉬울 법했다. 그는 잦은 부상과 노쇠화 여파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강력한 맨마킹과 투쟁적인 모습이 실종된 스페인 수비는 예전의 철벽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기대를 모았던 브라질 출신 귀화 공격수 디에고 코스타는 스페인 축구와는 안 맞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에 그는 후반전에 토레스로 교체됐다. 코스타는 경기 중 공을 잡을 때마다 브라질 팬들의 야유에 시달려야 했다.

푸욜의 공백은 전반 7분 네덜란드의 역습 기회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스페인 선수가 가슴 트래핑을 한 공을 그대로 낚아챈 로벤이 침투해 들어가는 스네이더에게 패스를 연결해 1대1찬스를 만들었다. 스네이더를 마크하던 피케는 순간 스피드에서 약점을 보이며 스네이더를 놓쳐버렸다.

이후 스네이더는 슈팅에 성공했으나 골키퍼 카시야스의 손에 걸렸다. 이 상황에서는 카시야스의 노련미가 돋보였다. 스네이더의 쇄도에도 그는 침착하게 자리를 지키며 슛팅 각도를 좁히는데만 집중했다.

전반 17분의 스페인 공격 찬스에서는 네덜란드 수비진의 경험 부족이 드러났다. 이밖에 네덜란드 수비진은 전반전에 여러번의 패스 미스를 했기에 찬스를 스페인 공격수들이 살렸다면 경기의 양상이 달랐을 가능성도 있었다.

전반 25분 쯤 스페인은 pk로 선제골을 뽑았다. 사비의 절묘한 침투패스를 받은 디에고 코스타가 몸을 접어 들어가며 상대 수비를 제치려다가 수비 발을 맞고 넘어졌고 주심은 휘슬을 불었다.

이를 사비 알론소가 낮게 왼쪽으로 깔아차 골망을 흔들었다. 이 장면은 사실 네덜란드에서는 아쉬울 법했다. 비디오 판독결과 네덜란드 수비수가 태클을 하다 미끄러진 것에 코스타가 걸려 보였기 때문이다.

실점을 허용한 후 네덜란드는 공세 쪽에 비중을 뒀고 스페인 수비의 실책도 이어져 공방전이 이어졌다.

네덜란드의 동점골 기회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스페인의 공격 찬스 이후 공을 잡은 블린트가 전방에 쇄도하던 반 페르시에게 롱패스를 날렸다.

실점상황 이전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라모스는 쇄도해 들어가는 반 페르시를 완전히 놓쳐버려 그에게 노마크 찬스를 허용했다. 반 페르시는 침착하게 전방으로 점프하면서 헤딩 로빙슛으로 스페인 골망을 갈랐다.

양발잡이에 헤딩까지 잘하는 반 페르시의 장점이 돋보인 장면이었다.

후반전부터는 네덜란드의 페이스였다. 기세가 오른 젊은 수비진들의 수비력은 더욱 탄탄해졌다. 니겔 데용은 젊은 수비진들의 앞에 서서 스페인 공격의 예봉을 차단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어 터진 네덜란드의 역전골도 블린트의 롱패스로 시작됐다.

블린트가 롱패스를 할 시점에 스페인 중앙 수비인 피케와 라모스는 로벤을 거의 프리상태로 방치했다. 로벤은 점프하면서 높은 공을 트래핑해 소유권을 지킨 후 간결한 동작으로 스페인 수비 2명을 제치며 슛팅을 날려 골을 기록했다.

이후 간헐적인 역습상황에서도 네덜란드의 월드클래스 삼각편대는 명불허전의 모습을 보였다. 로벤의 파괴적인 전진드리블에 스페인의 수비진은 허물어졌다.

이어 네덜란드는 세트피스에서 추가골을 뽑아내 3:1로 달아났다. 4번째 골은 카시야스 골키퍼의 완벽한 실책이었다. 3번째 골에서 반 페르시와 공중볼 경합 끝에 골을 허용한 그는 이후 스페인 수비수가 패스한 공을 그대로 상대 공격수 반 페르시에게 헌납했다.

이날 스페인 주전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는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월드컵 최다경기 무실점 타이 기록을 앞둔 그는 네덜란드의 효율적인 공격에 5골을 허용했다.

스코어가 4:1이 되자 스페인 선수들은 의욕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뒤늦게 다비드 실바를 빼고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투입했으나 이미 스코어는 크게 벌어진 상황이었다.

네덜란드 루이스 반 할 감독은 이후 경고를 받은 데 구즈만과 반 페르시, 스테판 데 브라이를 빼며 다음 경기를 대비하는 여유도 보여줬다.

5번째 골은 로벤의 몫이었다. 이번에도 스페인 뒷공간을 통해 찔러준 롱패스로 로벤은 골키퍼와 2명의 수비수를 완벽히 농락하며 2번째 골을 기록했다.

한편, 이번 대패로 스페인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으나 아직 16강 진출 가능성은 예단할 수 없어 보인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 때도 스위스에 1:0으로 졌으나 다음 경기부터 연승을 기록해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반전의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패배는 성격이 달라 보인다.

수많은 역습 위기를 통해 스페인 수비에 균열에 생겼음을 보여준 탓이다.

강호 칠레만 넘어서면 아시아 국가인 호주만이 있어 16강 진출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력과 테크닉이 좋은 알렉시스 산체스를 느린 피케와 공격능력이 더 좋은 라모스가 어찌 막아설지가 관건이다.

칠레는 테크니션 알렉시스 산체스, 세계 정상급 중앙미드필더 아투로 비달, 남미에서 이름값이 높은 호르헤 발디비아, 세리에 a에서 뛰고 있는 마우리시오 피니야 등이 공격작업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클라우디오 브라보가 버티는 문전은 무게감이 있으나 게리 메델이 있는 수비진은 단신으로 구성돼 있어 공중볼에 약하다. 칠레 수비의 약점을 어떤 방식으로 공략하는 지에 따라 유럽의 강호 스페인의 16강 진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스페인이 이날 경기처럼 수비라인을 대폭 올릴 경우 주력과 테크닉이 좋은 산체스에게 뒷공간을 공략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칠레에는 훌륭한 패서인 비달도 있고 발디비아라는 또다른 테크니션도 있다.

게다가 스페인 수비수 엔트리에 포함된 라울 알비올과 하비 마르티네스도 주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이때문에 델 보스케 감독은 칠레전을 맞아 수비 라인을 내리고 중원을 강화한 뒤 조심스런 경기 운영을 할 가능성도 있다.

스페인 델 보스케 감독의 대응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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