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모임에서 한때 유행했던 말이다. 세상에서 끊을 수 없는 세 가지 ‘연’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혈연(血緣)이고, 두 번째는 학연(學緣), 세 번째가 금연(禁煙)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연’보다 더 끊기 힘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연(因緣)이라고 한다.

또 건배사 중에도 선창자가 ‘우리가’ 라고 말하면 복창자들이 ‘남이가’라고 화답하는 것도 있다. 이 건배사는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 입구에 걸려있는 입간판('우리가 어데 남인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단군할아버지를 한 조상으로 섬기는 단일민족이라 그런지 유난히 인연을 강조하며 살고 있다.

우리의 어르신들은 사람을 처음 만나면 본관을 묻고 아버지의 함자를 물었다. 중년을 살고 있는 우리도 나이와 고향, 출신학교를 곧잘 묻고 따진다. 한국 사람은 한 두 사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고, 또 한 두 사람 건너면 일가친척이란 말이 있다. 우리도 모르게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풍습에 길들여져 왔다.

하지만 요즘 인연이라는 말은 남녀 간의 만남과 헤어짐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별보다 만남에서 인연이 특별히 강조되는 듯하다. 수십 년 베테랑 결혼중개 컨설턴트들도 마지막으로 ‘찰떡궁합’ 즉 ‘인연’이란 카드를 써먹는다고 한다. ‘짚신도 짝이 있다’라는 속담도 인연을 강조한 말이다.

그래서인지 ‘인연’을 주제로 한 시와 소설, 대중가요도 참 많다. 고교시절 국어책에 수록된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도 문학소녀 아사코(朝子)와의 만남과 이별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인연은 남녀 간 만남과 이별에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불교에서는 인연을 참 소중하게 생각한다. 인연을 불가사상의 큰 흐름으로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불자들은 모든 것이 생기(生起)하거나 소멸(消滅)하는 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보고, 생멸(生滅)에 직접 관계하는 것을 인(因)이라고 하며, 인을 도와서 결과를 낳는 간접적인 조건을 연(緣)으로 구별한다. 삼라만상, 우주만물이 모두 인연이란 상관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도 주변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라고 한다. 자기주변사람들과의 좋은 인연을 맺어 놓으면 하나님이 그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고 한다.

굳이 종교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의 삶을 조용히 들여다보면 정말 인연처럼 소중한 것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각자가 안고 있는 삶의 쳇바퀴 속에서 허둥대며 바쁘게 살고 있지만, 인연이란 큰 테두리 속에서 1차, 2차, 3차, 아니면 고차방정식을 맺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부부와 부자간의 인연, 학교에서는 학우들과의 인연, 군대에 가면 전우들과의 인연, 직장에 가면 동료 선후배들과의 인연, 종교에서는 신자들과의 인연, 단체에 가면 소속회원들과의 인연 등으로 종횡으로 얽히고설킨 인연들을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인간은 인연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처럼 보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인연으로 시작하여 인연으로 끝난다. 따라서 인연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 좋은 인연은 확대발전시켜 성공의 문으로, 좋지 못한 인연은 예기치 못한 실패의 문으로 이끈다.

지난 2000년에 나온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나오는 대사이다. 《2학년 국어선생은 호주머니 속의 바늘하나를 꺼내들고 느닷없이 학생들에게 묻는다. “얘들아, 이 바늘을 지구상 어느 한곳에 딱 꽂고, 저 높은 하늘꼭대기에서 밀씨(밀가루만큼 고운 가루)를 떨어뜨렸을 때 그 밀씨 하나가 나풀나풀 날아서 이 바늘위에 꽂힐 확률! 바로 그 계산도 안 되는 기가 막힌 확률로 너희가 이곳, 지구상의 하고많은 나라 중에서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서울, ○○동, ○○고등학교, 그중에서도 2학년 그 걸로도 모자라서 5반에서 만난거다. 지금 너희들 앞에, 옆에 앉아 있는 친구들도 다 그렇게 엄청난 확률로 만난거고, 또 나하고도 그렇게 만난거다. 그걸 인연이라고 부르는 거다”》

인연의 소중함을 자각한 사람은 동시대의 다른 사람을 존귀하게 여긴다. 반면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가 만나는 사람을 하찮게 여긴다. 그 인연이 우연이든, 악연이든, 필연이든, 우리는 동시대의 모든 인연들, 억만 겁(劫)에도 다시 못 만날 그 인연을 진심으로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설령 시간적, 공간적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아직 옷소매를 스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는 지금 이 시대의 공기를 함께 마시며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호흡하는 인연으로 살고 있다. 천둥치는 운명 같은 열정적인 만남, 조그만 골목길 가로등과 나방과의 본능적 만남은 아닐지라도 지친 삶을 서로 토닥이는 그런 인연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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