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입보다 정책대결로 국민들 관심끌어야

죄를 짓고 처벌 받으러 들어온 김경준씨는 웃고 있는데 대통령이 되겠다는 대선 후보들은 속이 타고 있다. 속이 타는 게 아니라 아예 '똥끝이 탄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김경준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꿈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김경준은 검찰에 도착해 한바탕 웃었다.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개선장군처럼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죄인들이 카메라 앞에 설 때 움츠리는 그런 모습은 없었다.

손에 수갑을 차고 있으면서도 웃고, 카메라 후레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얼굴 만 봐서는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사람인지, 수백 억 짜리 복권에 당첨돼 어리둥절하며 기뻐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가 웃고 있는 사이 정치권은 하이에나가 물소를 물어 죽이는 것 같은 기세로 서로 씹고 물어뜯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당과 야당은 물론 무소속 후보들까지 합세해 성명을 내고, 상대의 약점을 건드렸다. 공격은 이명박 후보에게 집중됐다.

정치권과 대선 후보들이 사생결단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BBK 혈투'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다. 최악의 경우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싸움에서 기선을 잡겠다는 것이다. 최대한 강하게 나와 상대방의 정치공세를 차단하고, 검찰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수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를 짚어봐야 한다. 맨 먼저는 김경준이 왜 웃으며 들어왔느냐 하는 점이다. 다음은 김경준이 BBK 주가 조작에 이명박 후보가 관련되어 있다고 말했을 때 정치판이 어떻게 될지를 그려봐야 한다. 반대로 이명박 후보가 주가 조작에 관련이 없음이 밝혀졌을 때도 영향력은 폭발적이다.

김경준이 웃은 것은 대략 3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한다. 첫째는 내가 입을 열면 누군가가 죽는다는 암묵의 위협일 것이다.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것일 것이다. 솔직히 BBK 주가 조작에 이명박 후보가 관련됐다고 하면 이명박은 그것으로 끝이라고 봐야 한다. 반대로 이명박이 관련 없다고 하면 대신 정동영 후보나 이회창 후보, 다른 후보들은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또 대선 후보들이 하이에나처럼 싸우는 모습이 가소롭고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정작 죄를 지어 처벌 받으러 들어온 사람보다 대선 후보들이 싸우고, 떨고 있는 모습이 웃기게 보였을 것이다. 김경준이 볼 때 '나 하나로 온 나라가 법석을 떠는 모습을 보니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처럼 뉴스의 초점이 될 줄 몰랐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카메라맨이 몰려 놀라서 웃었을 수도 있다.

김경준의 귀국으로 가장 날카로워진 곳은 한나라당이다. 오죽하면 여당에 대해 '민란'수준의 저항이라는 말까지 썼을까? 또 17일 오후 이명박 후보가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BBK 사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이명박으로서는 김경준의 입에서 'BBK와 무관하다'는 말이 나와야 한다. 대신 '스스로 벌을 받기 위해 들어왔다'거나 혹은 '정부.여당의 기획입국'이라는 말이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이명박은 대선을 향한 마지막 고비를 잘 넘길 것이다. 대신 정동영 후보나 이회창 후보들의 힘은 더 약화될 것이다.

문제는 BBK 주가 조작에 이명박 후보가 어떤 형태라도 연관되어 있다고 말할 때다. 이명박은 그날로 후보를 사태압력을 받을 것이다. 이 후보는 대선의 꿈을 접어야 할지 모른다. 하나라당도 큰 고통에 직면할 것이다.

이런 사태가 오면 대선 구도가 복잡해진다. 우선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를 대타로 내보내든지, 아니면 껄끄럽지만 이회창 후보와 손을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독 후보를 내봐야 승산이 없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혼수상태에 빠지면 이회창 후보와 정동영 후보는 어부지리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정동영 후보는 범여권을 하나로 묶을 것이고, 이회창 후보는 더 큰 세력을 형성, 결국 정동영과 이회창의 2자 구도로 싸움이 진행될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속이 타는 것은 김경준이 아니다. 대선 후보들이다. 이명박 후보는 'BBK 주가 조작과 관련 없다는 게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고, 정동영 후보나 이회창 후보 등 은 이명박 후보가 총알받이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꿈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풍선 바람 빠지듯 점점 쭈그러들기 때문이다.

죄인은 웃고,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속이 탄다고 하니 우리 정치가 잘 못돼도 한참 잘 못됐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우택 논설위원 chungwootae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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