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제품의 마케팅전략에 우리도 모르게 친숙하게 되어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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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1일에 눈을 뜨니 지인의 문자가 와있었다. 1이 4개니까 1등 네 번째 하는 날'이라고 하더라." 프로야구 4년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삼성라이온즈 류중일 감독의 우승소감이다. 아마도 류 감독 뿐 아니라 삼성라이온즈와 한국 야구는 2014년 11월 11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나름대로 기념일이 있다.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이자 ‘가래떡데이’다. 눈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정한 '눈의 날'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지체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생각하자는 의미의 '지체장애인의 날' 이기도 하다. 그중에서 ‘빼빼로데이’가 가장 낯익을 것이다. 특정제품의 마케팅전략에 우리도 모르게 친숙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매월 특정일을 '00데이' '△△데이' 로 정하고 요란을 떨기 시작했다. 국적도 기원도 불분명한 데이도 많다. 모두가 원조격인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모방한 아류들이다. 최근에는 매년 10월31일 영국 등 북유럽과 미국에서 즐기는 ‘할로윈데이’도 국내에 들어와 각종 이벤트들이 벌어지고 있다. 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의 세시풍속이나 각종 기념일들이 들어온 것도 있다. 외국산 ‘데이’나 ‘축제’가 국경 없이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날짜와 상품을 연계해 판매를 촉진하는 '데이 마케팅'이 일상화 되고 있다. 이런 데이는 매월 14일의 12개를 비롯해 20여 개를 훌쩍 넘는다. 기업체의 상술로 비난하기에는 이미 우리생활에 깊숙이 파고든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좋은 취지로 시작한 것도 있어 대놓고 비난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빼빼로 데이도 마찬가지다. 80년대 영남 지역의 여고생들이 빼빼로를 먹고 친구가 빼빼하게(날씬하게) 되길 바란다는 의미로 이 과자를 주고받으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것을 이 제품을 만든 제과 업체가 1997년부터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200원이었던 과자가 현재 1200원에 판매되고 있고, 그 종류만도 3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빼빼로 데이는 실제 매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롯데마트가 10일 내놓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동안 빼빼로데이와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의 대표 품목인 빼빼로, 초콜릿, 사탕의 매출 변화를 살펴봤다. 각각의 데이 1주일 전부터 당일까지의 매출과 2주 전 매출을 비교해보니 빼빼로는 8308%, 초콜릿은 919.1%, 사탕은 720.5% 매출이 늘었다고 한다.

‘데이 마케팅’이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하자 너도나도 ‘데이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다. 삼겹살 데이(3월 3일)는 구제역 파동으로 수출길이 끊겨 어려움을 겪던 양돈 농가를 위해 목포무안신안축협이 2003년 3월3일 삼겹살 시식회를 열면서 시작됐다. 삼치ㆍ참치데이(3월 7일)는 3ㆍ7 발음이 삼치ㆍ참치와 비슷하다는 데 착안해 2006년 해양수산부와 한국원양어업회가 참치ㆍ삼치 소비 확대를 위해 지정한 날이다.

오리ㆍ오이데이도 농협이 2006년 5월 2일을 ‘오이데이, 오리데이’로 규정하면서 시작됐고, 6월 2일과 9일은 각각 유기농데이, 육우데이다. 한우데이(11월1일)도 소비활성화를 위해 관련 단체들이 만들어낸 날이다. ‘치킨데이(9월 9일)’는 농촌진흥청 축산기술연구소가 닭을 불러 모을 때 내는 ‘구구’ 소리에 힌트를 얻어 제안한 것이다.

마케팅과 상관없는 ‘데이’도 있다. 10월 4일은 ‘천사데이’, 10월 24일은 학교폭력대책 국민협의회가 제안한 ‘사과데이’다. 사과 향기가 그윽한 10월에 둘(2)이 사과(4)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12월 12일은 허니데이(벌꿀데이), 허그데이(12월 14일)도 애당초 ‘프리 허그 코리아’에서 매월 11일을 허그데이로 정하고 프리허그 운동을 벌인 데서 시작됐다가 기념일이 많은 14일로 옮겨졌고, 그 중에서도 추위 때문에 사람의 온기가 필요한 12월 14일이 대표적인 날로 굳어졌다.

사랑과 관련된 기념일은 매월 14일(fourteen day)에 몰려있다. 매달 14일마다 돌아오는 ‘믿거나 말거나’한 기념일들인데, 상술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보인다. 1월 14일: 다이어리데이(다이어리를 주며 사랑계획을 하는 날), 2월14일: 발렌타인데이(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 3월 14일: 화이트데이(여성에게 사탕을 주는 날), 4월 14일: 블랙데이(솔로들끼리 자장면 먹는 날), 5월 14일: 로즈데이(연인에게 장미를 주는 날), 6월 14일: 키스데이(연인과 가볍게 키스하는 날), 7월 14일: 실버데이(은반지를 주며 미래를 약속하는 날), 8월 14일: 뮤직데이(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날), 9월 14일: 포토데이(기념사진 찍는 날), 10월 14일: 와인데이(분위기 좋은 곳에서 가볍게 와인 마시는 날), 11월 14일: 무비데이(조금은 야한 영화를 손만 꼭 잡고 같이 보는 날), 12월 14일: 머니데이(남자가 여자를 위해 돈을 팍팍 쓰는 날).

일각에서는 유통업체들의 ‘데이마케팅’을 저급한 상술이라 비난한다. 억지로 만든 데이(day)도 많은데다 문화적 트렌드에서 탄생된 날도 업체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층에의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한다는 우려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경기불황으로 소비가 위축된 상황에서 데이마케팅은 유통업계의 하나의 마케팅전략으로 볼 수 있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무분별한 상술은 철저히 배격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이 아니다. 외국의 것은 우리의 것으로 소화하고, 또 우리만의 것을 찾아내어 독특한 문화로 창조해내면 되는 것이다. 사랑과 우정을 주고받는 본래의 데이정신의 공간적 범위를 확대시켜 이웃이나 단체, 지역이나 국가간에도 기념일로 공유할 수 있는 데이(day)를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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