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예뻤던 누나이자, 엄마, 여인으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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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서는 세속을 떠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 가서 묵상과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피정(避靜)이라 한다. 일상의 모든 업무를 피(避)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다. 심지어 관(棺)속에 들어가 죽음을 체험하기도 한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캄캄한 관속에서 언젠간 겪을 수밖에 없는 죽음을 체험한다. 죽음에 대한 선행학습이다. 정말 열심히,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는 학습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본인 의사 오츠 슈이치 박사처럼 죽음을 마주한 인간의 모습을 많이 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일본 이바라키 현에서 태어나 기후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사사카와 의학의료연구재단 호스피스 전문의 양성과정을 수료했다. 일본 최연소 호스피스 전문의로 교토에 위치한 일본 뱁티스트병원에서 근무하다가, 2008년부터는 도쿄 마츠바라 얼번클리닉에서 말기 암 환자를 돌보고 있다. 그는 활발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통해 의료계에서 인간의 생(生)과 사(死), 특히 존엄한 죽음에 대한 장을 개척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세상에는 수많은 인생이 있듯 수많은 후회가 있고, 마지막 후회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1000명이 넘는 말기 암 환자들과의 이야기를 소재로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국내에는 지난 2011년에 번역되어 소개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고향을 찾아가보았더라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등등.

슈이치 박사는 그가 만난 수많은 환자들이 죽음을 앞두고 하는 후회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은 후회를 먹고 사는 생물이다. 환자들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회한을 품는다. 누구나 후회한다. 그러나 후회의 정도에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다』

책의 내용들은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절절히 공감하는 내용이다. 어제를 돌이켜 보아도, 최근 한 주를 돌이켜 보아도, 살아온 지난날들을 되돌아봐도 후회가 연속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사람 같이는 살지는 못해도 내게 남겨질 후회의 크기를 최대한 줄여가며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깨우치게 하는 책이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가지는 거꾸로 말하면 ‘살면서 꼭 해봐야하는 것’들이 아닐까도 싶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필독서가 될 것이다.

어느 유명배우의 죽음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데뷔 이후 40여 년간 항상 밝은 모습으로 대중 곁에 머물렀던 김자옥 씨. 그는 지난 일요일 아침에 영원한 피정(避靜)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주요 인터넷 포털과 SNS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었다.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충격과 깊은 슬픔에 빠졌고, 주요 포털사이트는 물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과 방송, 영화와 가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해온 그녀의 사진과 영상을 올리며 그녀를 추억했다. 그를 좋아했던 연령층은 따로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예뻤던 누나이자, 엄마, 여인으로 기억되어 있었고, 공주 드레스를 입고 노래를 부르던 만년 소녀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스타들의 죽음과 자살소식을 많이 접하고 있지만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게 들리는 것은 단지 그가 유명배우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예순이 넘어도 한결같이 유지했던 그의 청초한 모습, 또 배우로서의 열정이 오버랩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물 흐르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며 산다. 그것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그녀는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도 예쁘게 죽으려 애쓴 것 같다.

그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워 안타까움을 더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안방 스크린을 탔었는데. 삶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했을 그가 입원한지 3일 만에 사랑하는 가족에게조차 한마디 말도 없이 가버렸다.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할 죽음이지만 그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허망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그의 화려한 삶 이면에는 나름대로 후회도 켜켜이 쌓여 있었을 터인데 훌훌 털고 갈 시간도 허락하지 도 않는 것이 죽음이다.

『스물다섯가지의 후회』 살면서 후회하는 것이 어찌 스물다섯가지밖에 없을까마는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후회들은 모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책을 읽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것들이다. 필자도 이 책을 접하면서 정말 뻔한 내용이고, 죽기 직전이라면 다들 이런 후회들 쯤은 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우리가 후회하게 될 것들'을 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당연히 후회하게 될 것들'을 너무 쉽게 지나쳐버린다는 것이다. 나중에, 다음에, 한두 번 미루다 보면 결국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 조그마한 ‘큐빅의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기쁨보다 지난 시대의 현인들의 깨우침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러가지 모습을 만나며 나름대로의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에 만족해 하며 살고 있다. 그 지혜는 현재 짊어진 짐을 하나씩 훌훌 벗어 던져버리는 것이다. 버리고 비우는 것이야말로 언젠간 닥쳐올 나의 마지막 날, 후회를 최소화하는 것임을. 까마귀처럼 매일 매일 까먹고 살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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